▣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덕유산의 아름다운 설경에 없는 파란 하늘

영광도서 0 1,813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림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그린 그림이 아름답습니다. 때문에 아름다운 풍경이나 잘생긴 사람을 보면 그림 같다고 말들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건 얼마든 있으니까요. 어떤 그림이 아름다우려면 그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무엇을 본 적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림이 아름답다기로서니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 있습니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풍경, 그런 풍경 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은 그 자체로만 아름다운 면도 분명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받쳐주는 배경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풍경이란 그 무엇과 그 무엇을 둘러싼 주변의 것들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요, 아름다운 풍경이란 말은 아름다운 그 무엇과 그 무엇을 둘러싼 주변의 것들을 이르는 말이 아닐까요?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어둠이 있어서 더 밝게 느껴지는 빛처럼, 홀로 아람답다고 해도 그것을 더 아름답게 받쳐주는, 대비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더 아름답다 할 수 있을 테지요. 겨울이면 눈 내리는 풍경, 눈 내린 후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하여 눈 소식이 있고 나면 그 풍경을 보러 나서곤 합니다.

 

 

 

지난주에 덕유산에 다녀왔습니다. 전주에 고전 읽기 강의를 내려가는 길에 들렸습니다. 강의 시간은 저녁이라, 좀 부지런을 떨기로 했습니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아침 첫차인 7시 40분발 차를 타면 무주에는 10:20분이면 도착합니다. 거기서는 무주리조트로 가는 버스로 바꾸어 탑니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면 그 버스를 타고 그냥 끝까지 가면 구천동이니까, 거기서 내려 산행을 시작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면 열한시에 도착하니까요. 반면 리조트행은 10:30분에 출발합니다. 겨울이면 스키시즌이라 리조트에서는 등산로가 없습니다. 여름이면 스키로로 올라갈 수 있고요. 이번에는 리조트로 가서 곤돌라로 올라갑니다.

 

 

 

아름다운 풍경, 상고대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그러하니까 곤돌라를 탔습니다. 오르면서 올려다보니 정상 부근이 하얗기에 눈이 쌓여 있구나 싶었습니다. 날씨도 따뜻하다는 예보가 있었으니, 상고대 핀 풍경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설천봉 정상에 내려보니 온통 상고대가 피었습니다. 건물 지붕에도, 나뭇가지에도 어디에든 상고대였습니다. 날씨가 온화한 덕분에 아랫마을엔 비가 살짝 내릴 때, 산정상에는 살짝 눈이 내린 데다 쌓여 있던 눈들이 바람에 날려 지극히 아름다운 상고대를 피워 온통 멋진 풍경을 연출해 낸 것이었습니다.

 

 

 

그림이 아무리 아름답다지만 자연이 만들어 놓은 이 풍경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요. 그림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설천봉을 수 놓았습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 사이 사이를 자연은, 아니 조물주라고 할까요. 조물주는 아주 정교하고 아주 세밀하게 공간공간마다 아름답게 채워 넣었습니다. 그리 급할 것도 없기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옷차림 뒤를 따라 거북이처럼 걸었습니다. 하얀 눈이 그려 놓은 아름다운 풍경, 그 풍경을 구경 온 사람들의 옷 색깔이 조화를 이룬 눈길 풍경,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들의 입가에 핀 아름다운 미소들, 그려낼 수 없지만 저절로 나오는 듯한 사람들의 입가에서 피오 얼라 하늘을 진공하는 아름다운 감탄사들, 이 모두가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의 틈을 벗어나 좀 걸으면 향적봉 대피소를 지나고, 그쯤에서 부터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거기서부터 중봉으로 걸으면 걷는 즐거움과 함께 아름다운 길이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온화한 날씨 탓에 곱던 상고대들이 속절 없이 무너져 내리는 풍경을 만나기도 하는데, 무너져 내리면서 일으키는 눈보라도 볼만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동자 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걷노라면 이내 중봉입니다. 여기 중봉에서 동엽령 가는 길을 내려다보면 아주 멋진 운치를 자아냅니다. 마치 순례의 길처럼 낭만적으로 펼쳐져 있으니까요. 그 길은 걷는 즐거움보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 느긋하니 마치 구도라도하는 듯, 멀리서 보면  느릿느릿 여유를 즐기면서 걷는 듯한 나그네들을 눈으로 따라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 길을 이번엔 내가 지나갑니다. 바라보면 길고 긴 길이지만, 걸어보면 잠시 지나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지나 좌로 꺾인 길로 들어서면 그 길은 응달이라 눈이 유난히 많습니다. 그 덕분에 상고대가 아주 멋진 터널을 이루고 있습니다. 눈길 터널, 정상부근과는 다른 풍경입니다. 아주 멋진 눈꽃세상이요, 아주 아름다운 눈꽃터널로 이어집니다. 굵직굵직한 참나무 숲이라, 뒤틀리며 자란 나뭇가지들이 오히려 아주 멋진 파격으로 상고대 숲의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아니 더 운치 있고, 더 멋지게 풍경을 장식합니다. 하얀 숲길을 꽃 터널 삼아 걷다가, 다시 몸이 드러나는 능선으로 나섰다가를 반복하는 멋진 반복을 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동엽령에 이릅니다.

 

 

 

향적봉 정상 근처에는 그리 많던 사람들, 이쯤에는 사람이 뜸합니다. 동엽령에서 직진해서 삿갓재로 가면 거의 사람을 만날 수 없을 만큼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으련만, 저녁 강의 시간에 여유 있도록 동엽령에서 하산합니다. 4키로 좀 넘는 길, 안성통제소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내내 내리막입니다. 눈꽃 풍경 중 상고대는 7부능선까지 이어집니다. 그 아래로는 5부능선까지 눈꽃 세상입니다. 상고대와 다른 아름다움입니다. 그 아래로는 더 이상 눈꽃이 없습니다. 바닥엔 온통 눈이어도 나뭇가지에는 눈이 없습니다.

 

 

 

가벼운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폰에 담은 사진들을 봅니다. 한 컷 한 컷에 아름다운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쉽습니다. 상고대가 핀 풍경이나 눈꽃이 핀 풍경은 지극히 아름다운데, 황사와 미세먼지로 고운 하늘이 배경으로 들어와 있지 않은 탓입니다. 그 자체로는 지고의 아름다움이어도 그것을 받쳐주어야 할 파란 하늘이 풍경에서 빠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는 겁니다.

 

 

 

홀로 아리랑은 있을 수 있어도 홀로 아름다운 풍경은 없나 싶습니다. 그 무엇이 있고, 그 무엇을 둘러싼 그 무엇들을 합쳐 풍경이라 부르듯,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자체와 이를 둘러싼 것들의 조화라는 걸 다시 생각합니다. 홀로 아름답거나 홀로 멋지기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 내 삶의 아름다움을 위해 나 역시 조화를 생각하며 이른 하산을 합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 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기 위해, 그 생각으로 미소짓습니다. 당신을 중심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어떤 풍경을 이루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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