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어머니의 배웅, 고도를 기다리듯이

영광도서 0 1,854

"이제 가면 언제 또 오나?"

 

어머니의 그 말씀이 슬펐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말씀일지 몰라 그랬습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암심 아닐까 싶어서, 염려가 되었고, 두려웠습니다. 사람의 떠남이 서러웠습니다. 그런 말씀이 그냥 인사처럼 익숙해지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자식에게 자주 왔으면 하는 원초적인 바람, 그냥 딱히 뭐라 하면 좋을 인사 대신에 하는 인삿말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가늘하면 자주 찾아가고 안부를 여쭈어야겠다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런 반복의 반복이 모여 시간을 이루고, 시간이 모이고 모여 세월을 이루고, 그 세월과 나이로 연세로 바꾸었습니다.

 

 

 

여러 번의 반복, 수년의 반복, 언어도 언젠가부터 슬쩍 바뀌었습니다. "바쁜데 뭘 왔어."로 재회는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주 앉으면 새로운 이야기는 아주 조금,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은 당신의 살아온 이야기들로 가득 찼습니다. 기억에 남은 이야기를, 그 수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하나 하나, 희미한 기억마저 열어서 다 풀어놓으시려는 듯 참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끝없는 이야기를 다 풀기도 전에 다시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면, 전과 달리 인사의 말도 달라졌습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오나?" 그 말씀이 아팠는데, "오긴 뭘와, 왔다 갔다 힘든데....." 하시며 "도착하면 전화나 해." 그렇게 인삿말로 바꾸어 말씀하셨습니다.

 

 

 

인삿말이 바뀌는 것처럼 배웅 형식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대문 밖에까지 나오셔서 내가 뒤돌아서서 손을 흔들 때마다 같이 손을 흔드셨고, 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서서 손을 흔들어주셨드랬습니다. 대문이 안 보일 때쯤 슬쩍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거기 서 계셨으니, 내가 떠난 후에도 그대로 얼마 동안 서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는데, '이제 가면 언제 또 오나'에서, '바쁜데 뭘 와'로, '와 줘서 고맙다. 외삼촌한테도 가끔 전화라도 해 드려'로 인삿말이 바꾸면서 거동도 불편해지셨습니다. 그러니까 간신히 거실문 밖에 나오셔셔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나를 배웅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동안 서 계시거나 웅크리고 앉아 계셨을 테지요.

 

 

 

"먹는 건 잘 먹어. 돼지처럼 먹고 누워 있고 자고 먹고."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허탈한 웃음을 주셨습니다. 활동 공간이 아주 좁아졌습니다. 대문 안에 작은 채마밭을 일궈 놓고, 거기에 야채랑 토마토랑 이런 저런 채소들을 가꾸시며 소일하던 공간에서 거실 안으로 활동공간을 줄이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간신히 식사시간이라야 거실에 있는 식탁까지 나오시는 활동이 거의 전부인 하루 하루를 지내시노라니, 이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방안도 충분히 누릴 수 없을 만큼 극도로 좁아진 활동공간이 전부셨습니다. 그러면서 배웅도 문턱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의 배웅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급기야 병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볼일 보러 움직이다 넘어지셨고, 일어나시려다 또 넘어지셨다는데, 그게 상황의 전부인 것 같았으나 그건 그냥 전조였나 봅니다. 조금씩 좀먹어 헤어지는 헝겊처럼, 아주 조금씩 안이 파여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벌레 먹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쓰러지는 듯 보이는 고목처럼, 세월의 도둑질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세상 그 무엇도, 사람도, 사람의 일도 세월 앞엔 장사 없다는 진실 앞에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게 좀 서글펐드랬습니다.

 

 

 

낮 내내ㅡ, 밤 내내 병상을 지켰으나 어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냥 끝 없이 숨을 토하시면서 잠에 빠져 지내셨습니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움찔할 뿐 푸우 푸우 잠만 부르셨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고 저런 기도를 드려도 아무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마음으로는 기도로는 통하려나요. 병상 지키기 교대를 하고 돌아서는 마당에, 이제는 누구도 나를 배웅허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 무심코 지나다닙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영향을 미칠, 다른 아무런 방법도 없습니다.

 

 

 

사무엘 배케트가 창조한 사람들은 여전히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가 누군지 밝히지는 않지만 잠재적으로는 아주 확실히 알면서도 몰른 척하면서 고도라 이름 지어놓고 기다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형수에 불과하다. 다만 언제 집행당할지 모르는 사형수일 뿐이다."라는 까뮈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설움이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의 몫이겠지요. "인제 가면 언제 또 오나?" 그 인사가 왜 이리도 그립지요? "오긴 뭘 와 바쁜데" 다시 그 인사를 들을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을 담담함으로 바꾸려는데 왜 이리 어렵지요. 근원적인 부조리 앞에서 배웅의 말들을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로 바꾸어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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