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왕거미처럼
"야! 우리 엄마 잘 날아간다."
거미, 조금은 징그러운 거미, 왕거미를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랑 밭에서 김을 매다가 그런 왕거미를 보았습니다. 그 거미는 온통 몸에 새끼들을 업고 있었습니다. 아니 업고 있다기보다 새끼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온몸을 덮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거미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새끼들, 좁살개미만한 새끼들, 알보다 조금 큰, 어쩌면 막 알에서 나온 듯한 새끼들이 몸에 온통 다닥다닥 매달리 새끼들이 어미 거미 몸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 갓난 거미새끼들은 아마도 엄마 몸을 파먹고 있었나 봅니다. 그 거미 새끼들이 그런다고, 그렇게 엄마 몸을 파 먹고 자라면서 엄마 몸은 껍질만 남고, 그러면 새끼들이 엄마의 빈껍데기를 공중으로 날아 올리며 이렇게 말한다고 엄마가 알려주었어요.
"야! 우리 엄마 잘 날아간다."
꽤 오래 전에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 시를 읽었습니다. 내 마음을 콕 집어 살린 듯한 시라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많이 공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물론 그중에 예외적인 어머니도 없지 않지만, 보편적인 어머니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겠지요. 때문에 여성은 위대합니다. 물론 여성이 어머니가 된다는 전제에서 그러하겠지요. 오늘은 이 시로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 그냥 지나갈 수 없다면, 거기 머물고, 거기 언제까지 머물 수 없으니, 거기서 나와야 다시 길을 갈 수 있듯이 이제는 진정으로 어른답게 내 길을 가야지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덕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싶으시다고
외할머니가 보고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로만 알았던 나
한 밤중 자다 깨어 방 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희생, 봉사, 고독, 어머니를 대신하는 단어들, 그걸 슬픔으로만 기억하기보다 숭고함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러하듯, 진정한 신이라면 신 역시 인간들을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겠지요. 어머니의 마음에서 신의 모습을, 아름다운 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지나고 나면, 한 사람 떠나고 나면 그에게 잘한 일보다 못한 일만 기억나지만, 지나고 나면 무엇이든 되돌릴 수 없잖아요. 그러니 '있을 때 잘해'란 말을 되새김하며 마음 모두 내려놓아야지요.
어둠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 이제 어둠에서 나아가렵니다. 마음의 어둠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렵니다. 생각에 침잠하면 침잠할수록 그 생각의 늪은 깊어만 가서 마음의 방향을 돌려 앞을 보며 걸어가렵니다. 어머니의 늪에서 벗어나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 완전한 마음의 독립으로 내 길을 가렵니다. 이제 책장을 덮습니다. 엄마의 병실을 지키며 읽은 책, 제목과 내용이 딱 안 어울리지만 제목이 그렇습니다. 하룻밤은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고, 그 다음엔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습니다. 그 책들을 책장에 다시 꼽듯이 엄마 생각도 마음에 깊이 꼽습니다. 내 생각 밖으로 엄마는 훨훨 잘 날아가시겠지요.
"우리 엄마 잘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