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몽환적인 산수화를 보는 듯한 도봉산 능선들

영광도서 0 2,013

셋도 아닌, 둘도 아닌, 단 한 가지 색 세상인데, 이렇게 아름다울까요. 좌측으로 서울에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북한산 백운대가 있다면, 우측으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곳은 신선대입니다.  백운대에 앞에는  전문등산인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인수봉이 있듯이, 신선대 앞에는 도봉산 최고봉 자운봉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신선대에서는 바로 앞에 하얀 모자를 살포시 쓴 자운봉이 오늘은 더 아름다운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신선대에서 이리 저리 둘러보는 하얀 세상은 아름답다, 환상적이다, 황홀하다, 그런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이런 표현이 아니라면 몽환적이다 그 한 마디 덧붙입니다.

 

 

 

도를 완성했건 도를 통했든 몽환적인 아름다움에 나를 비추어 새로운 나를 발견한 그런 마음으로, 신선이라도 된 듯 들뜬 마음으로 신선대를 내려옵니다. 잡으면 미끄러지는 눈 묻은 쇠줄을 애써 잡으며 바윗덩이를 내려옵니다. 내려와 좌로 길을 잡으면 와이계곡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평소에는 흙을 밟기 어렵고 온통 바위만 밟고 가는 길입니다. 하얀 눈이불을 쓰고 가만 잠든 와이계곡의 시작점 앞에 섭니다. 마치 성스러운 지대에 들어서듯 마음을 다잡습니다. 북한산보다 도봉산이 100미터 낮지만 오르면서 느끼는 아찔함은 더합니다. 특히 와이계곡은 뾰족한 칼바위 등성이를 지나고, 깊은 계곡을 오르내리듯 가파른 바위지대를 깊게 내려갔다가 다시 그만큼 올라가야 합니다.

 

 

 

평소에도 이 곳을 오르내리려면 조금은 아찔합니다. 그런데 눈이 쌓여 있으니 조금 더 조심스럽습니다. 그렇게 험한 지대이자 위험지대이지만 눈이 덮힌 와이계곡은 그런 위험한 느낌은커녕 무척이나 아름답기만 합니다. 어쩌면 이토록 고운 분말일까요. 평소의 눈가루와는 달리 살짝 싸락눈이 섞인 덕분에 백설가루 마냥 참 곱습니다. 이초록 고운 하얀 분말가루로 덮힌 외이계곡을 내가 연다고생각하니, 아찔함보다 설렘이 더 앞섭니다. 물론 평소보다 무척 조심합니다. 눈이 덮혀 있는 이유도 있지만 아무도 없는데다가 등성이를 지나 내리막으로 발을 디뎌보니 눈 밑은 무척 미끄럽습니다. 하얀 눈이 아이젠도 박히지 않는 굳은 얼음을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산 백운대에선 가끔 러셀할 기회가 있었으나 도봉산 와이계곡 러셀은 처음입니다. 용기를 내어 조심조심 접근합니다.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더 위험스럽습니다. 겉엔 눈이 제법 쌓여 있고 밟아 보면 눈 아래 아주 굳은 빙판이 내리막 내내 있어서 주욱 미끄러집니다. 게다가 안전용 쇠줄에 눈이 쌓여선지 잡아보니 미끄러집나다. 내리막에선 곧게 박힌 파이프를 잡아야 미끄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서 생각합니다. 삶의 욕망이 아직은 제법 있나 싶습니다. 좀 겁이 나는 걸 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진행하면서 멋진 풍경이 눈에 띄면 풍경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풍경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깊게 패이고 경사가 심한 바위 사이로 길게 내려왔다가 다시 오르기의 와이계곡, 팔힘깨나 쓰고, 제법 긴장하고 나서,  무사히 와이계곡을 건넙니다.  이제 포대능선입니다. 포대능선에서 보는 세상은 또 다른 아름다움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내 발자국만 찍으며 걷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앞서 길을 안내합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서 아무렇게나 카메라에 담아도 그냥 예술입니다. 포대능선에서 사패산을 ,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눈쌓인 능선을 두루두루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고 다락능선으로 하산합니다.  다락능선 역시 상단부분, 만월암으로 하산하는 계단 앞까지는 조심스럽습니다. 줄이 미끄러워서 힘을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위험지대를 벗어나고 보니 한 사람 올라온 발자국이 보입니다.  내려오면서 만나지 못한 걸 보니 이 능선을 우회하여 올라간 듯 합니다.

 

 

 

방금 전엔 아름다운 겨울왕국이었으나 이제는 봄이 오나 봅니다. 벌써 사방으로 퍼진 햇살의 온기로 세상이 녹고 있습니다. 툭툭 소릴르 내며 나뭇가지에 쌓여 있던 눈들이 덩이 덩이 떨어져 내 머리를 때리거나 어깨를 두드립니다. 물론 내려오면서 올려다보는 정상 능선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잠깐 사이에 무너져내리는 아름다운 겨울왕국을 뒤로 하고 서둘러 하산합니다. 무너져 내리는 눈덩이들, 그럼에도 아직 아름다움을 간직하려는 눈 세상, 듬직듬직한 바윗덩이들의 아름다움, 건너다 보이는 동양화 같은 망월사,  바위틈에서 용케 살아나 고고한 멋을 보여주는 소나무들, 풍경 하나 하나 하얀 아름다움을 보태주어 아주 멋진 풍경으로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어지러운 사람들의 세상으로 나섭니다. 이때쯤 산 입구에는 입산하는 사람들로 생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벌써 겨울은 저만치 가고 봄이 세상을 엿보는 듯합니다. 질퍽거리는 바닥을 덜푸덕거리며 걷습니다. 참 잘했다 싶습니다. 졸음을 이기고, 번거로움을 마다않고 도봉산에 올라갔다 오기를 잘했습니다. 어쩌면 올겨울 마지막으로 볼 수도 잇을 아름다운 겨울왕국을 이렇게 만끽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싶습니다. 조금만 남다른 부지런함이랄까, 극성스러움이랄까, 아니면 용기랄까, 이런 시도를 한 내가 나는 고맙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세상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세상으로 나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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