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밀정, 혼돈의 시대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일까?

영광도서 0 1,907

이미 나라가 망한 지 오래, 모든 이들이 이제는 희망이 없다, 이제 우리나라는 사라진 나라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때문에 모두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다. 그럼에도 아주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다. 하루하루를 그들은 긴장으로 살아간다.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그들은 그럼에도 망한 나라를 다시 살리겠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희망으로 온갖 고초를 이겨낸다. 죽음을 넘나드는, 아니 차라리 죽음이 더 좋을 만큼 극심한 고문을 당한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넘어 끔찍한 고문 앞에서 그럼에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 나라면 그 상황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 나라가 다시 일어설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생각되던 시절, 아니 바람직한 삶의 문제보다 어떻게 살아야 생존할 수 있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처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일말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대신에 끔찍한 고문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나는?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내가 참 다행스럽다는 말밖에 자신이 없다. 아주 끔찍한 고문 앞에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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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출, 그가 변하리란 암시는 시놉시스 부분에 있다.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나라의 독립을 믿는 독립군 친구에게 그는 "어차피 기울어진 배야. 기울어진 배에선 쥐새끼가 먼저 빠져나가는 거야. 목숨은 부지해야지?"라고 충고한다. 그런 그에게 그 친구는 일갈한다. "나라 팔아 먹고, 동포 팔아 먹는 놈들....."

 

결국 그는 죽지만 이정출은 그의 잘려진 발톱을 챙겨든다. 그리고는 그 독립군과 연결되어 있을 인물들을 추적한다. 이정출은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이다. 그는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을 받는다. 여러 정보를 캔 결과 그 리더가 김우진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렇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또한 의열단 조직을 한방에 와해시키기 위하여 조직의 끄나풀 하나하나를 알아내야 한다. 때문에 이정출은 친구 김우진의 뒤를 캔다. 치밀한 정보를 찾는다. 서로 피를 말리는 정체를 알아내기와 숨기기, 서로를 이용하려는 머리싸움, 그 싸움에서 김우진이 한수 위라고 할까?

 

김우진은 일단 이정출과 친하게 지낸다. 때문에 이들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내준 것은 아니지만 표면상으로는 서로 친하다. 서로 목적이 다르다.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의 행동대장 김우진, 그 의열단을 일망타진하려는 이정출, 둘은 서로 첩보전과 두뇌전을 펼친다. 그 와중에 동지이면서 이성인 김우진과 연계순은 남다른 연정을 품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들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한가한 사랑을 나눌 수 없다. 연계순은 사진관 주인으로 행세하는 김우진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밀정들의 시대,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시대에, 그렇게 찍은 사진 한 장 때문에 적에게 그 사진은 정체를 밟히는 자료가 된다. 그럴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정체가 들통 난 것을 알아차린 김우진은 미처 정리할 새도 없이 경성을 떠나 국경을 넘는다. 이정출은 포기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김우진의 정체를 모르는 척하면서 그를 추적한다. 그가 조선인이라서 믿지 못하는 일본총독부는 그와 한편이면서 묘한 라이벌 관계의 하시모토를 딸려 보낸다. 그들은 김우진의 배후인물을 찾으려고 김우진의 뒤를 캐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정출은 같은 동포라서든, 아니면 미끼이든 김우진이 잡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그는 하시모토 몰래 김우진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주면서 그를 벗어나게 한다.

 

반면 이정출을 미끼로 삼기로 결정한 김우진의 배후이자 전설적인 독립군의 거두 정채산, 그는 김우진을 통해 이정출을 만난다. 둘은 진하게 술을 마시며,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이정출의 마음을 움직인다. 정채산의 진득한 말에, 그의 당당함에, 이정출의 마음이 움직인다. 악질 친일 경찰인 그가 마음의 변화를 시작한다. 그 역시 조선인인 까닭이다. 그의 마음이 움직인 것을 간파한 정채산이 그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이정출은 그에게 자신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한다.

 

"나는 사람을 안 믿소. 이형, 난 내 말도 안 믿소. 다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믿을 뿐, 어느 순간 이름을 올릴 곳을 결정할 때가 오게 마련이오. 그 때에 이형은 어느 역사에 이름을 기록하고 싶소."

 

그러면서 정채산은 이정출의 변심을 믿고 작전을 시작한다. 소속은 일본경찰인 이정출이 이번 작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가 한꺼번에 그들을 일망타진하려고 그들을 돕는 척한다면 작전의 성공은커녕 그야마로 일망타진 당한다. 그럼에도 독립군은 이정출을 믿고 작전을 시작한다. 국내로 폭탄을 반입하여 일본인들의 잔치 석상에 폭탄을 던지려는 작전이다. 그럼에도 정보는 교묘하게 새어나간다. 내부에 적이 있음에도 우진 쪽에선 그걸 모른다. 역정보를 흘렸으나 진정한 정보를 하시모토가 그 정보를 알아차린 것이다. 이정출은 이미 작전을 시작한 상태다. 이미 이정출은 엮였음을 안다. 더구나 자신의 상사도 그를 배제하고 하시모토와만 의열단 와해작전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어쩌면 그는 양쪽의 미끼인 셈이다. 그는 아직 완전한 의열단원도 아니다.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일본경찰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조선인이란 가슴이 벌렁거린다.

 

열차 안에서 그는 의열단의 정보가 드러났음을 김우진에게 슬쩍 알려준다. 분명 의열단 단원 내에 이중첩자가 숨어 있음이 확실하다. 김우진이 각자에게 경성에서 집결장소를 다르게 알려준다. 그러면 그들 중에 한 명은 첩자임이 드러날 테니까. 이렇게 엮이고 저렇게 엮인 이정출, 하시모토 그리고 김우진, 그런데 이정출은 김우진과 함께 있다가 꼼짝 없이 발각 당한다. 어차피 일은 망쳐진 것, 이정출은 김우진을 도와 하시모토 일당을 해치운다. 이정출은 의열단과 싸우다 총을 맞은 걸로 위장하기 위해 중간에 열차에서 뛰어내린다.

 

정채산의 의도대로 폭탄은 무사히 경성으로 들여온다. 완벽하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그들은 무사통과하는 데 성공한 듯싶었으나 연계순의 정체가 들통 난다. 하필 전에 찍었으나 치우지 못하고 떠난 사진 때문이었던 것이다. 폭탄 던지기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연계순을 어쩔 수 없이 희생시켜야 한다.

 

중간에 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신도 적과 싸우다 부상 당한 것으로 위장한 이정출도 이때쯤 돌아온다. 대신 그는 의심 받는다. 그걸 확인하려는 일본경찰 당국은 그에게 연계순을 고문하라고 명령한다. 마음은 아리지만 그는 거부할 수 없다. 그에게 나타난 김우진의 동료, 그가 김우진의 편지라면서 전한다. 사실 그놈은 이중첩자로 변심한 것인데, 그것을 모르는 이정출은 김우진이 있다는 산속으로 들어간다. 이정출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이들의 간계를 모르고 이정출은 은신 중인 김우진을 만난다. 그를 만난 김우진, 그는 편지를 전달하라고 보낸 적이 없다. 공작에 걸려든 것을 직감한 김우진은 급하게 작전을 변경하지만 이미 포위당한 그들은 체포당하여 재판을 받는다.

 

이정출은 자신은 의열단원이 아니며 경찰로서 임무를 충실히 다했을 뿐이라면서 최후 변론을 한다. 그 덕분에 그는 수개월 형을 산 후 , 옥문을 나온다. 그가 출소하던 날, 연계순은 고끼를 끊었다가 죽어서 나온다. 의열단 폭탄 투척은 이대로 끝날 것인가? 그 역할을 변심한 일경 이정출이 맡는다. 이정출과 김우진, 둘이 잡힐 수밖에 없었던 순간, 두 사람은 작전을 짰던 것이다. 이정출이 살아나가는 것으로. 그래야 그 작전이 성공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멋지게 둘의 작전은 성공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정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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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악질 일본 앞잡이로 출발했으나 회심하여 누구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처음엔 애국자로, 당당한 의열단원으로 출발했으나 승산 없는 싸움, 끔찍한 고문에 지쳐 동지를 배신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고문을 이기며라도, 목숨을 던져서라도, 조국 독립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김우진 같은 이들도 있다. 또한 이정출처럼 회심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당당한 조선의 독립군으로 살아간 이도 있다.


어느 순간 이름을 올릴 곳을 결정할 때가 오면, 그때에 어느 역사에 이름을 기록할 것인가? 그 물음에 그는 행동으로 답한 것이다. 아무리 희망이 없다 해도,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패를 닫고 앞으로 전진하면, 그 실패들이 쌓이고 쌓여 더 높은 곳에 올라설 수 있을 테니까." 그 위대한 정신으로 살았던 난세의 영웅들이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지금은 그에 비하면 평화로운 시대, 그때에 내가 살았다면 나는 김우진이나 이정출처럼 살 수 있었을까? 아니면 동료를 팔아먹는 변심한 밀정으로 살아남았을까? 반면 이제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행동에 나선들 그다지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끔찍한 고문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운 이 시대에 진정한 애국자들은 얼마나 될까? 누구나 애국자인 양, 나라를 생각하는 양 나서기는 한다만, 영화를 보며 잠깐 나 자신을 돌아본다. 비열할 수 있는, 위선자일 수 있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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