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 아가씨, 그리스신화의 여인족 아마존을 떠오르게 한 영화

영광도서 0 1,636

그리스신화에 아마존 족이 있다. 세상의 모든 분쟁과 불행의 원인은 남자 때문이라고 생각한 여인들이 여인들만의 왕국을 세운다. 이 나라에서 남자들은 모두 죽거나 쫓겨난다. 여인들만이 산다. 문제는 여자들끼리 살려니, 힘이 여인들보다 센 남자들이 주도하는 이웃 나라들의 위협에 대한 걱정이다. 그래서 아마존 여인들은 전투력을 기른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전쟁훈련을 한다. 주로 활쏘기 훈련이다. 그런데 활을 쏘려니 남자와 달리 볼록 솟은 가슴이 거추장스럽다. 거추장스러운 가슴, 시위를 당길 때 닿는 가슴 한 쪽을 어렸을 때 불로 지져서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들 여인들은 한쪽 가슴이 없다. 가슴이란 말이 아마존인데, 아마조네스는 가슴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마존이다.

 

자나 깨나 훈련을 한 덕분에 아마존 여인들은 어느 남자들로 이룬 군사들도 능히 물리칠 만큼 강한 전투력을 갖춘다. 오히려 남녀가 어우러져 사는 나라들도 이 여인들의 나라 아마존을 두려워한다. 아마존 족은 방어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 이웃나라를 침범하기 때문이다. 여인들끼리 살려니 종족을 늘릴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이웃 나라로 쳐들어가 남자들 중에서 강한 남자들을 포로로 잡는다. 남자들을 데려다가 씨를 받는다. 하룻밤에 목표를 이루고는 가차 없이 남자를 죽여 없앤다. 만일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살해하거나 내다버린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재난의 불씨를 애초에 제거한다. 그 바람에 아마존족에겐 남자는 없다. 때문에 주변 나라들은 언제 이 여인들의 타깃이 될까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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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라는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이 이 아마존 족에 얹힌 듯하다. 우선 주요인물은 남자 둘, 여자 둘이다. 이들 모두 조선인이다. 조선인이면서 조선인을 지우고 진정한 일본인이 되려는 인물도 있고, 일본인인 척하려는 인물도 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여자 1은 아가씨, 어릴 적에 부모를 잃은 고아 히데코이다. 때문에 그녀의 이모부 코우즈키가 그녀의 후견인을 맡는다. 이모부이지만 그는 그녀에게 남겨진 많은 재산을 차지하려고 히데코와 결혼할 계획이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적부터 히데코를 공포 분위기 속으로 몰아가며 세상물정을 모르게 하며 아주 엄격하게 키운다. 그러한 이모부 코우즈키의 지나친 욕심에 질린 히데코의 이모는 끝내 자살한다. 이모마저 없는 상황에 던져진 히데코는 이모부의 서재에서 이모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전부인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이모부가 원하는 아주 잡다한 에로틱 소설을 이모부에게 읽어주는 일을 한다. 이모부는 상상으로 성을 즐기는 변태이기 때문이다. 히데코가 읽어주는 소설을 들으며 상상력으로 성욕을 충족한다. 그는 히데코를 사랑한다기보다 그녀의 재산 때문에 자신의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혼인할 계획이다. 그러나 히데코는 그의 흉중을 모른다.

 

여자 2는 숙희, 그녀의 어머니는 아주 유명한 여자 도둑이었다. 그녀에게 역시 어머니가 없다. 그녀의 아버지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장물아비 밑에서 성장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얼굴은 본 적도, 어머니의 사랑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그녀를 낳고 죽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죽었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주요인물 히데코와 숙희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남자 둘이 있으니, 우선 히데코의 이모부 코우즈키와 귀족인 척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오직 재산에만 관심이 있다. 희대의 사기꾼으로 그는 어느 누구도 속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언변과 잘 돌아가는 두뇌를 자랑한다. 그에겐 돈이 삶이요 삶이 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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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히데코의 많은 재산을 노리는 귀족이 계략을 꾸민다. 동지이자 한 패거리인 숙희를 아가씨에 붙여준다. 그의 목적은 숙희를 이용하여, 숙희에게 접근한 다음 히데코의 사랑을 얻고, 그녀와 위장결혼을 하려 한다. 그의 숙희 침투작전은 성공이다. 귀족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려간다. 그런데 숙희와 아가씨는 만날수록 서로에게 애틋한 사랑을 느낀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얻지 못한 희열을 여자끼리 느끼면서 둘은 서로 깊이 사랑에 빠진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백작은 숙희와 짜고 아가씨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한다. 어느 정도 아가씨의 마음을 얻었다고 판단한 백작은 이제 숙희를 떼어내려는 계획을 아가씨인 히데코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작전대로 백작은 그녀와 도망하여, 결혼을 하고, 그녀는 이모부로부터 자유를 얻게 한다는 계획이다. 그의 프러포즈, 그녀는 그에게 조건을 내건다. 하녀 숙희도 함께 간다면 허락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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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계획대로 세 사람은 탈출에 성공한다. 백작은 계획대로 히데코와 결혼을 한다. 그녀의 모든 재산은 그의 손으로 들어온다. 얼마 후 백작은 숙희에게 이제 아가씨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면 모든 일은 일단락된다고 한다. 드디어 그날, 그런데 정신병원 앞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정신병원에 들어갈 대상은 다름 아닌 숙희다. 울부짖는 숙희, 그럼 숙희는 이들에게 속은 것일까?

 

2부는 1부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의 재판이다. 새롭다면 정신병원에 들어갈 대상이 아가씨가 아닌 숙희였다는 것뿐이다. 숙희는 백작과 아가씨 히데코의 농간에 그대로 넘어간 것이다. 백작에게 숙희는 속고, 아가씨에게 숙희는 속은 것 같은 분위기, 3부에 나올 힌트를 중간 중간 슬쩍 보여준다. 두 여인의 진실한 사랑, 서로를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 그 사랑이 진실임을 알게 하는 눈물,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것마저도 연극이었나 싶을 정도로, 아가씨는 순박하거나 순진한 여자가 아니라 나쁜 여자였다라는 식이다. 이모부가 그토록 정성들여 사들이고, 채운 서재의 음란서들을 두 여인은 모두 찢어서 물에 던져버린다.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만드는 음란서들, 그야말로 "책 팔아서 금을 사지, 금 팔아서 책 사는 놈들"에게 한 방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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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보기 좋게 성공했다고 생각한 백작은 기쁨에 취한다. 장래 계획을 세운다. 그토록 차가운 아가씨를 공략할 마음도 함께. 그가 묵는 호텔에 아가씨가 찾아온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백작을 곤경에 빠뜨리고 숙희를 구해낼 방법을 어떻게 세울까. 아가씨와 숙희의 아주 멋진 작전을 백작은 전혀 눈치 못 챈다. 그러나 경계심이 강한 그는 아가씨가 가져온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 그것까지 계산한 아가씨는 그의 음료수를 대신 마시는 척하며 그와 키스한다. 입에 문 음료를 그녀는 그와 키스하면서 그의 목구멍으로 한 차례, 두 차례, 세 차례에 걸쳐 음료수를 목구멍으로 넘기게 만든다. 그녀를 공략하려는 백작의 물건이 드디어 그녀의 옥문을 열고 들어올 찰나 그는 픽 쓰러진다.

 

쓰러진 백작, 히데코의 이모부는 히데코를 꼬드겨서 도망쳤다가 벌거벗은 채로 쓰러져 있는 백작을 잡아간다. 백작은 그 앞에서 손가락을 잘리는 수모를 겪는다. 여자들에게 속은 두 사람, 그러나 히데코의 이모부는 그녀들을 잡을 자신감이 있다. 그는 두 여자가 여행을 떠난다는 정보를 얻고, 사람을 풀어 두 여자를 잡아오게 한다. 그러나 두 여인은 이미, 그걸 계산해 두었다. 그래서 히데코는 남장을 하고, 숙희는 여자 그대로 부부로 꾸미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다. 둘은 이미 백작이 만든 여권의 행선지를 이모부가 알 것으로 판단하고, 히데코가 여행지를 상하이로 바꾼 때문이다.

 

그녀들이 도망을 치는 바람에 백작은 히데코의 이모부에게 성기까지 잘릴 참이다. 백작은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허락을 얻은 그는 준비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담배에서 연기가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담배연기는 히데코 이모부의 코를 자극한다. 독이 든 담배 연기의 위력으로 히데코의 이모부와 백작, 두 남자는 최후를 맞는다. 한편 무사히 남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아가씨인 히데코와 숙희는 진정한 쾌락의 최고의 절정을 맛본다. 자유를 얻은 두 여인은 서로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두 여자의 성적인 유희와 두 여자의 관능미가 화면을 가득 메우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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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우선 남자들의 폭력을 그린다.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두 남자는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그 억압의 힘은 재산과 성이다. 모든 경제의 주도권은 남자가 갖는다. 성도 남성의 것이다. 남성 만족을 위한 도구는 재산이자 성욕을 충족하는 책이란 도구다. 정당한 재산이 아닌 부당하게 얻는 재산, 인간교육을 위한 책이 아니라 변태적인 성욕을 충족하기 위한 음란서적, 이처럼 남성중심의 사회는 비인간적이다. 이러한 잔인한 남자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이 영화는 그리고 있다.

 

폭력의 성격이 무엇이든 여자를 억압하는 힘이다. 한 마디로 줄이면 두 남자의 억압에서 벗어나기이다. 남자들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위선이 없는 사랑, 강요 없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시기나 질투가 없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 한다.

 

그 사랑이란 것이 동성애라는 것이다. 동성애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무얼까? 동성애 안에는 그리스신화의 아마존 족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여성 혼자서는 남자들이 요구하는 희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성들이 서로 진정한 사랑을 하며, 서로 믿고 힘을 합한다면, 남성들의 이러 저러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페미니즘이류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남자들의 억압에서 벗어나 여성들만의 세계를 건설하고, 남녀가 얽히고설켜 서로 충분히 쾌락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남녀 간에 할 수 있는 적나라한 성도 성이지만, 남자 없이 여자들끼리도 충분히 성의 유희를 즐길 수 있다,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남자들의 폭력이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여성들만의 나라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조선인 백작과 일본인 코우즈키의 상징이 문제다. 조선은 추하나 일본은 아름답다는 것이라면, 조선이 추한 이유는 약자이기 때문이고, 일본이 아름다운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조선을 억압하는 일본은 약자인 여성에게 억압을 가하는 남성들과 같으며, 거기 억압당하며 이용당하는 여성은 조선인과 같다. 그럼에도 전랙적으로 하나로 뭉친 남자들은 연기 속에서 죽어간다. 차가우면서 부드럽고, 흐릿하기도 한 연기 속에서, 그래도 끝까지 여성을 노리개로 삼는 힘의 원천이라 할 성기를 잘리지 않은 채 죽는 것이 다행이라며 그는 죽어간다.

 

어리석은 남자, 여자의 지혜에 당하고 만 남자들의 어리석음이 연기 속으로 지워져간다. 여자들의 지혜에 당하고 만 남자들의 어리석음은 연기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지고, 아주 행복한 두 여자, 죽어서는 행복한 여자들의 배의 노를 젓는 존재로 분한 남자들은 흐릿하게 멀어져 간다. 여자의 지배자인 양 폭력을 휘둘렀던 남자 하지만 실제로는 성의 노예이자, 돈의 노예에 불과한 어리석은 존재, 너의 이름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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