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6- 마션, 콧등 시큰한 감동을 주는 휴머니즘의 정수
<마션>은 우주과학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흑백으로 처리된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무엇인가를 암시한다. 복선인 것이다. 영화가 거의 마무리 될 즈음에 정말로 주인공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 영화는 우선 휴머니즘이다. 화성에 남겨진 주인공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제 목숨을 기꺼이 담보하는 동료들의 결정의 순간 콧등이 시큰하다. 두 번째는 한 인간의 삶의 의지가 위대한 기적을 낳는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영화 그대로 화성에서 인간은 살아갈 수 있을까다. 네 번째는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논리가 아니라 휴머니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소 설정은 그리스신화에서 비롯되었던 이름처럼, 화성은 전쟁의 신 아레스의 이름을 따서 아레스 기지로 설정했다. 나사는 지구니까 가이아다. 이들이 타고 있는 우주선은 헤르메스로, 제우스의 전령신이다. 그런 설정도 의미 부여를 했을 것이다.
헤르메스호로 화성에 착륙한 마크 와트니를 비롯한 6명의 대원, 그런데 갑작스러운 바람이 일어나면서 와트니의 행방이 묘연하다. 더는 견딜 수 없다. 그대로 있다간 모든 대원이 죽을 판이다. 와트니의 사망이 틀림없다고 판단한 동료들은 헤르메스호로 탈출한다. 이들은 임무수행으로 우주를 떠돌다가 지구로 귀환할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다. 마크 와트니는 살아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아날 확률은 거의 0프로다. 그에게 남은 음식은 일주일 치가 전부다. 이렇게 저렇게 아껴도 한 달 남짓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다 얼마간 살아남는다 한들, 지구에서 그를 구하러 오려면 4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마크 와트니는 기어코 살아 돌아가라고 다짐한다. 그의 강한 의지가 그의 기지를 깨운다. 식물에 관해 해박한 그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배설물에서 씨를 추출하고, 그 불모의 땅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그는 우주선을 떠나 화성 탐사에 나선다. 그는 무모한 외출을 감행한다. 그러다 이전에 화성탐사에 나선 이들은 모두 죽고, 그들이 남긴 잔해를 발견한다. 그 잔해 속에서 그는 태양열을 이용한 전지 충전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걸 이용하여 그는 지구와의 교신에 성공한다. 그와 지구와의 교신으로, 지구에선 그를 살리느냐 포기하느냐의 문제로 토의한다. 그를 살린다는 건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화성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느냐의 문제의 열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숭고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그의 생존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를 구하러 가려면 시간이 걸려도 너무 걸린다. 그때까지 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구하러 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 해도 그 시간은 한두 달이 아니다. 적어도 일 년 이상이다. 그러니 그 계획 자체가 의미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사정을 모르는 와트니는 살아남으리란 확신으로 하루하루를 구상하며 지낸다. 지구와의 교신은 점점 발전하여 이젠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은 있다. 게다가 문제가 생긴다. 그의 식물농장이 그가 고전압 설치를 잘못하는 바람에 완전히 망친 것이다. 그렇다고 살아 있는 한 포기할 수는 없다. 그는 다시 재기한다. 그러나 그가 할 일이라곤 먼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구닥다리 음악을 듣는 것 두 가지뿐이다. 그리고는 전지를 충전하는 동안 잠드는 일뿐이다.
그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나마 희망은 중국의 도움이다. 정치적으로는 해결이 안 되지만 중국 우주탐사 담당은 이건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라며, 나사를 돕기로 한다.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보급품을 전달하는 방식은 해결한다 해도 이젠 시간과의 싸움이다. 방법은 헤르메스호가 지구로의 귀환을 연기하고 다시 화성으로 가서 그를 데려오기이다. 남은 연료라든가 여건상으로 헤르메스호가 화성에 착륙할 수는 없다. 우주 공간에서 도킹해야 한다. 문제는 헤르메스호를 다시 화성으로 보내는 것을 나사는 허락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결국 편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헤르메스호에 탄 다섯 명의 동료는 만장일치로 그를 구하기로 한다,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들은 그를 구한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들의 모험, 다섯 명 모두 죽을 가능성이 살아 돌아올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 그럼에도 그들은 불법이지만, 죽을 수도 있지만, 그를 구하러 간다는 결정을 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정, 모두 죽을 수 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지구에 돌아가는 일이 2년 가까이 늦춰질 수 있다, 그들은 와트니를 구하러 간다.
온 세계인들이 그를 구출하는 과정을 브라운관으로 지켜본다. 세계시민들은 역사적인 구출작전 성공을 간절히 기원한다. 동료를 구한다는 자기희생 정신으로 그들은 위험을 자초하면서 무리한 시도를 한다. 와트니에게도 위험한 도박이다. 도킹이 어렵다. 공중에서 하늘을 날듯이 우주복에 구멍을 내어 가속도를 내어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힌다. 드디어 공중에서 와트니와 대장이 서로를 포옹한다.
그들이 지구로 귀환에 성공한다. 그들은 각자 우주사업과 관련한 업무를 계속한다. 전설적인 영웅 와트니는 우주인을 양성하는 교관으로 활동한다. 우주인 훈련병들의 물음에 그는 "나는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주에서 뜻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끝이구나 생각할 때 포기하려 말고 살아나려고 노력하다 보면 살아 돌아가게 된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말란다.
휴머니즘, 헬레니즘의 정신적 토양이라 할 그리스신화는 휴머니즘의 시원이다. 이 영화는 그 상징에서 출발한다. 아레스 기지가 그러하고, 헤르메스호의 이름이 그러하다. 헤르메스호를 타고 아레스 기지, 다섯 명의 동료는 모두 죽을 가능성이 살아 돌아올 가능성보다 높다는 것, 살아난다 해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2년 가까이 늦춰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 예스다. 그들의 회의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한 생명을 구하려는 노력,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불러올 수 있음에도 목숨을 담보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 서로 돕는 지구인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그의 동료들, 그리고 관계 업무를 맡은 이들의 마음자세에는 진한 인류애가 배어 있다.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다.
삶에의 의지, 살겠다는 의지는 얼마나 위대한가를 영화는 말한다. 와트니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라. 단지 할 일이라곤 전지 충전, 수평선 바라보기, 구닥다리 음악듣기, 지구와의 교신, 잠자기, 컴퓨터하기가 전부임에도 그는 긍정적이다. 화성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신이 무엇을 하든 최초라며 자신을 긍정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살아 돌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그는 다진다. 그럼에도 희망은 점차 그에게서 떠나려 한다. 그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안 헤르메스 호의 대장과의 교신에서 그는 이렇게 부탁한다. "제가 죽으면 부모님을 찾아가 주세요. 제가 화성에서 있었던 일을 대장님이 대신 전해 주세요. 전 제 일을 사랑했고, 아주 뛰어났다고, 저 자신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을 가지기 위하여 죽었다고, 후회는 없었다고, 그리고 부모임이 제 부모님이었다는 게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서로의 안타까움,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헤르메스호가 그를 구하러 가기로 결정하고는 그의 동료들은 기꺼이 기뻐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자부심, 자신의 동료를 구하러 간다는 마음 하나로 즐거워하는 그들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그렇게 마음 하나로 여럿이 그를 구하러 나섰으나 위험천만이다. 그럴수록 그들의 모험은 위대하긴 하다. 대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무모하게 그를 데리러 우주로 나간다. 거리는 좁힐 수도 없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장의 무모한 시도, 와트니의 무모한 공중 날기로 드디어 모두 살아남는다.
한 생명을, 한 동료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 살아 돌아오겠다는 의지가 만난 이룬 기적, 모두들의 긴장이 그대로 영화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전율. 인간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숭고함을 느낀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다.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 잔인하다는 점, 감정을 속인다는 점, 잔인한 방법으로 때로 상대를 해코지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부정적이다. 반면 인간은 더불어 삶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마음 자세는 이 모두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숭고하다. 아름답다. 생각할 줄 아는, 생각을 다양하게 할 줄 알아서 자신의 희생을 훤히 알면서도 자기희생을 각오하는 인간, 그건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위대함이다. 숭고함이다. <마션>에서 그 위대하고 숭고함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