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8- 사도, 멀고도 가까운, 가깝고도 먼 아들과 아버지의 묘한 관계
-2- 사람이 먼저냐 예법이 먼저냐
인륜이니 천륜과 같은 것이 가장 강한 것 같으나, 때로는 인륜이나 천륜도 때로는 사람의 욕심을 이기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간한 게 있다면 욕심일지 모르겠다. 욕심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부부 사이도, 형제지간도 갈라놓는다. 욕심이 미움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 미움은 사이를 갈라놓고야 만다. 그 놈의 욕심, 무척 강한, 때로는 죽음보다 강한 욕심, 그 욕심들 중 가장 강한 걸 생존욕구, 종족보존욕구라고 하지만, 때로는 이 욕구를 무화시키는 욕구가 있으니, 돈, 여자 그리고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
뒤주 속에 갇힌 사도세자, 그렇게 긴 7일의 대치가 흘러간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기다리고, 아들은 죽을 날은 기다린다. 느슨한 듯 팽팽한 7일, 하루하루 모두 특별한 날이다. 왕의 자리를, 조선의 종사를 유지하려는 욕망으로 자식 사랑을 대체한 아버지로서가 아닌 왕으로서의 영조의 버티기와 그런 아버지답지 않은 왕에게 지지 않는 사도세자의 어둠 속의 바티기의 7일이 여느 날과 긴 날들로 흘러간다.
둘째 날
“…세자의 생모 영빈이 고하기를 과인의 목숨이 호흡지간에 있다며 대 처분을 청하였다.”
영조는 세자의 무리를 벌하고 그를 평민으로 만드는 교지를 쓰라 명한다. 아무도 영조의 말을 받들지 않는다. 그러자 영조는 비정하게 손수 교지를 쓴다. 참 독한 아버지다. 아버지가 아닌 왕이다. 손수 뒤주에 못을 박고, 손수 자기 아들을 평민으로 만드는 교지를 쓴다.
이 영화는 하루가 시작되면 과거로 돌아가 사도세자가 살아온 날들을 회상하는 식으로 보여준다.
둘째 날엔 세자비가 들어오면서 영조의 성격을 말한다. 폭풍처럼 몰아칠 비극을 예견하듯 세자비는 경사스러운 날을 앞두고 눈물을 흘린다. 그녀의 아버지 홍씨는 남들에겐 세자비로 간택되는 것이 경사라지만 가문에 화라며 염려한다. 세자비에겐 강아지를 선물한다. 이 강아지가 나중에 사도가 뒤주에 갇혔을 때 제일 먼저 주인을 찾아준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어렸을 때엔 그를 기특해하며 "놀이는 한때의 밭, 공부는 평생의 밭"이라 조언하며 애정을 듬뿍 주었다. 지금은 놀 때가 아니라 공부할 때라고 꾸짖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도세자는 아버지와의 거리감을 느낀다.
셋째 날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영조는 뒤주를 깨고 도망쳐 나온 세자를 잡아 다시 가둔다. 그리고는 무덤처럼 뒤주 위에 떼를 덮는다. 산 무덤이다. 장인이 사도세자가 다시 갇힌 뒤주 안에 흑룡이 그려진 부채를 넣어준다. 세자가 아들을 낳기 전에 꿈에 본 흑룡을 그려 넣어 만든 부채다.
사도세자가 어렸을 때 영조는 그랬다. "사가에선 자식을 자애로 기른다. 하지만 왕가에선 왕자를 원수처럼 기른다." 부정보다는 종사가 먼저라 생각하는 영조, 세자와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면서 냉혹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의견을 세자에게 강요한다.
"숙종은 부인에게 사약을 내려 죽였느니라. 경종은 형제와 조카를 죽이고 종사를 지켰느니라. 왕가에선 자식을 원수로 기른다. 네가 왕이 되면 알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리청정을 받는 세자, 하지만 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일을 잘 처리하면 잘 처리한다고 심통이요. 미루면 그것도 못하느냐고 다그친다. 이렇게도 미워하고 저렇게도 미워한다. 마치 로마의 미친 황제 깔리꿀라처럼. "잘해라 잘해야 아비가 산다." 온당하게 자신보다 일을 더 잘 처리한 아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무란다.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신하들의 의견을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
세자에게 올 것이 온다. 앞에선 화합을 외치고 뒤에선 당파를 나눈다는 세자의 일침에 아픈 곳을 찔린 것처럼, 아들을 점점 미워하는 영조는 귀를 씻는다. 오늘의 미운 사람으로 세자가 선택 당한 것이다. “별일 없지. 가 봐라!” 대리청정, 잘해야 본전이라는 대리청정에서 세자는 본전도 못 찾고 미움만 키운다.
넷째 날
“이 일은 궁궐 담장을 넘을 수 없는 내 집안의 문제다” 견디기 힘든 갈증 속에 부채를 집어 든 사도는 그 안에서 자신이 그린 용 그림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돌아보니 슬픈 일투성이다. 영조가 왕을 그만두겠다고 투정을 부리자 대비가 그러면 그만두라고 한다. 그러자 영조는 궁을 나간다. 마음이 모질면 아버지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그냥 왕위에 올라도 좋으련만 세자는 석고대죄를 하여 결국 대비의 윤허를 거두게 한다. 그 대신에 할머니는 죽는다.
"넌 이것이 술로 보이느냐. 내가 죽인 할머니의 피눈물이다."
그는 미쳐간다. 이제 그의 편이 없다. "목숨을 걸고 나섰는데, 거드는 놈은 한 놈도 없어."
과거의 자조 섞인 그 한탄이 현재 상황으로 연결되며 다섯 째 날로 넘어간다.
다섯째 날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데 세자비가 시집올 때 가져 온 개가 그를 찾아왔다. 그래 사람보다 개가 훨씬 낫다.“몽아, 어젯밤엔 왜 안 짖었니. 너도 주상이 무서우냐?” 캄캄한 뒤주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다.
과거, 영조가 세자보다 어린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장부의 기개는 태산보다 높고 여인의 지조는 바다보다 깊다." 그런 어린 중전을 배알해야 하는가, 도무지 못하겠다. 그럴수록 영조에게서 멀어지는 세자.
여섯째 날
어제는 개가 찾아왔더니 이번에 세손이 찾아온다. 참 기특한지고. “자식이 아비에게 물 한잔도 드릴 수 없사옵니까?” 사도와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세손은 영조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영조는 말한다. 왕이라고 칼자루를 쥐고, 신하라고 칼날을 쥐고 있는 건 아니라고. 왕이라도 실력이 모자라면 칼날을 쥐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아버지와 아들, 점점 더 멀어지는 부자지간. 세자와 달리 세손은 공부를 즐긴다. 그런 자기 아들 앞에서 활을 쏜다. 그가 쏘는 화살들은 목표에 백발백중이다. 그러다 그가 일부러 허공으로 멀리 화살을 날린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고 그는 말한다. 그 화살은 자신의 모습, 자신의 원하는 모습이리라. 이 암시를 결과로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늘렸을 수도 있을 터.
그가 며느리에게 조언한다. "서로의 실수를 덮어주고,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 끝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은 그렇게 못한 것, 인간다운 그가 그리 못한 것을 아들 부부라도 그리 살기를 바랐을 터다.
세자가 어머니의 늦은 회갑연을 베푼다. 중전이 아니면 4배를 할 수 없음에도 그는 4배를 하도록 세손에게 명한다. 그렇게 반항하는 그를 영조는 더욱 미워한다. 귀를 씻고, 그를 불러 밉다는 상징, "넌 존재자체가 역적이다." 그 말에 대노한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랴.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고, 공부가 있는 것이다."
일곱째 날
드디어 왕이 세자를 찾아온다. 뒤주 속에서 일곱 째 날이다. “임금도 싫고 권력도 싫었소.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임금과 세자가 아닌 아비와 자식으로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영조와 사도.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단 말이냐. 나는 자식을 죽인 애비로 기록될 것이고, 너는 임금을 죽이려 한 역적이 아니라 미쳐서 아버지를 죽이려 한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면,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그리고는 죽은 아들을 확인한다. 뒤주 안으로 손을 들이밀어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버지다운 표정을 찾는다.
딱 여기서 영화가 마무리였으면 했다. "마지막 순간은 따뜻했다!" 영화를 보면서 감상평을 이 문장으로 쓰려고 생각했다. 이제 끝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영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른이 된 정조가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고, 춤을 춘다. 아니 이 영화의 이 장면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잘 만들어 놓고 산통을 깨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이 장면들로 이어지지 않고, 아버지가 뒤주 쪽으로 다가온다, 아들은 죽어간다, 아버지가 뒤주 속으로 손을 넣어 죽은 아들의 얼굴을 만진다, 그리곤 아버지는 그제야 진한 눈물을 흘린다. 뒤늦은 일이지만 왕이 아닌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날 수는 없었을까?
만일 영화가 여기서, 딱 끝나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영조는 아버지이기를 포기하고, 300년 종사를 지키기 위해 냉혹한 왕으로 돌아간다. 아들이 죽은 날, 그는 개선가를 부르며 경희궁으로 환궁을 명한다. "독하네, 자식 죽이고 개선가라니!" 라는 의미심장한 대사와 함께 여덟째 날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