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23- 암살, 나라 잃은 암울한 시대에 적나라한 여러 인간 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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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사 중에 “과거는 흘러갔다”라는 게 있던가?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의 일들, 그러고 보면 참 오래된 일들일 텐데, 여전히 유효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하게도 만들고, 분노하게도 만든다. 직접 경험이 아님에도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아니 어쩌면 직접 경험하지 않고 간접적인 상상으로 만나기에 더 생생한 이미지를 그려줄지도 모른다. 때론 그걸 이용하는 이들도 왜 없으랴. 정치논리에 따라 부침이 심한 과거사들은 언제쯤 깨끗이 씻길까? 그래서 해맑게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과거를 또는 현실을 향유하며 살 수 있을까. 물론 우리 시대엔 물 건너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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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강인국은 자신의 딸 안옥윤의 총에 암살당한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을 합리화한다. 자신이 미개한 조선에 산업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는 것, 조선인들을 먹여 살리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1933년 조국이 사라진 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 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을 암살 작전 요원으로 지명한다.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 그리고!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다. 이들은 일제부역자들을 찾아 나선다. 암살단의 타깃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이다. 이들 중 특히 강인국은 조선인이면서도 나라가 망하자 얼른 왜국의 앞잡이가 된다.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잘하는 덕분에 그는 호의호식하며 산다. 그는 자신의 안일을 위해, 자신이 하려는 일에 방해가 되면, 아내나 자식이라도 죽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그만큼 냉혈한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출세와 안일을 위해서는 왜군의 개 노릇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딸들 중 한 딸 안옥윤이 그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받고 강인국에게 접근한다. 부녀지간이지만 아버지인 강인국은 철저한 일본인이 되고, 안옥윤은 독립군으로 임무완수를 위해선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안옥윤, 황덕삼, 속사포, 염석진, 이들이 어떤 이유로 독립군이 되었든 그들은 같은 목표를 위해 목숨 바치기를 두려워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일은 순조롭지 않다. 사실은 염석진은 독립군의 무늬를 한 일제의 앞잡이였던 것, 그는 잔인하게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 동지를 팔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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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살인 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은 의리 하나로 산다. 그들은 독립군은 아니지만, 비록 돈을 받고 살인을 한다 해도, 돈 때문에 의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독립군과 청부암살단, 두 팀은 요인암살이라는 목표는 같으나,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르다. 그럼에도 목표가 같으므로 서로가 통하는 면이 있다. 은밀히 목표한 같은 요인을 암살하려니 두 팀은 우연히 만난다. 알고 보니 이들은 초면이 아니라 구면이다.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은 일본군에게 들통 날 위기에서 두 사람은 연인으로 가장 했었다. 그리고는 이들은 위기 모면용 키스를 했었다. 그리고는 기약 없이 헤어졌었다.

 

그런데 이들이 같은 목표로 다시 만난 것이다. 안옥윤은 독립군의 임무를 띠고 일제 앞잡이와 일본군 수괴를 암살하려 한다. 반면 하와이 피스톨 일행은 돈을 위해 그들을 죽이려 한다. 그렇게 조우한 이들은 여러 번 스치면서 남다른 애정을 키워간다. 안옥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하와이 피스톨, 그는 안옥윤과 이번엔 진정한 키스를 한다. 우연한 만남의 이들은 진정한 애정의 키스를 나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으랴만, “조선군 사령관과 친일파 두 명 죽인다고 독립이 오느냐?”라고 묻던 하와이 피스톨, 그는 끈질긴 악당이자 고약한 추적자 염석진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때문에 이들의 애련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안옥윤은 나중에 감옥에서 석방된 염석진에게 이 총을 겨누면서 묻는다.

 

“왜 동지들을 배신했나?”

 

그녀의 추궁에 염석진은 이렇게 대답한다.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지 몰랐으니까....해방이 될 줄 알았으면 그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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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으니까. 해방이 될지 몰랐으니까....해방이 될 줄 알았으면 그랬겠나?”라는 말, 생각할수록 무겁게 다가온다. 앞날을 모르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늘 내가 하는 말과 행동, 나의 삶, 나중에 “몰랐으니까. 일이 그렇게 될지 몰랐으니까... 알았으면 그랬겠나?”라는 변명, 그건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다. 상황만 달라졌을 뿐 자신의 삶을 변명으로 일관하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미래의 어느 날에 그때는 몰랐다는 후회 아닌 변명이 오지 않도록 현재를 살아야 할 텐데...

 

친일파를 처단한다. 친일파 처단 소재를 다룬 영화다. 기울어도 한참 기울어 회복 가능한 날은 올 것 같지 않던 시절, 거대한 제국에 맞서 싸울 엄두도 나지 않으니, 소극적인 방법으로 복수할 수밖에 없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분명 적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인데, 그들보다 더 미운 존재가 있다면 동포들 중에서 동포를 배신하고 일본군 앞잡이노릇을 하는 이들, 특히 동포들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배반자요 반역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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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금언이 있다만 오염된 피는 물보다 더 더럽다는 말이 되려나. 지금 우리나라 돌아가는 모습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한보다 일본이 밉다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가 맞는데, 북한보다 다른 당이 밉다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또 안 맞다. 참 아이러니한 관계, 남남갈등 이런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제나 정상적인 관계가 올까?

 

이 영화는 단순히 암살의 성공여부를 다룬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사라진 조국에서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건 중심이라기보다 인물 군상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 영화에서 나라 없는 시대에 여러 군상들을 만난다. 그 어려운 시대 속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독립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 암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 또한 친일을 해야 했던 이유, 동지를 팔아야 했던 이들의 곡절은 그렇게 깊이 다루지 않아서 시큰한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딸이 반목해야 하고, 이웃이 서로 적이 되어야 하고, 과거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어야 했던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오늘의 적은 언제 미래의 동지로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은 등진 이웃은 언제 미래엔 반가운 이웃으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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