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28- 화장, 여자들의 화장과 로맨스를 앓는 중년남자의 쓸쓸함
화장, 화장품회사, 화장, 화장품회사를 가운데 두고 일어나는 두 가지 종류의 화장, 그 화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반복되는 단어지만 전자의 화장은 여자의 화장으로 삶을 꾸미는 화장이라면, 후자의 화장은 삶이 끝남의 의미의 화장이다. 삶과 죽음이 인생에만 있으랴.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엔 항상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듯이, 꽃이 피면 또한 지듯이, 단어는 같으나 화장과 화장은 그러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사랑은 살고, 또한 사랑은 죽는다. 사랑, 순수한 사랑의 유효기간 아니면 진정한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그건 그렇다 치고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짝을 이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사랑하나 만을 믿고 결혼한다, 그러기엔 세상살이가 너무 만만치 않다. 결혼은 이상이나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물론 중요하지만 사랑에는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우선 인간의 일차적으로 먹고 사는 생존 문제가 중요하다. 즉 경제력이다. 다음엔 종족보존의 욕구, 비록 아이를 생산하지는 않더라도 성적인 격차가 너무 커도 문제다. 3차 욕구, 그건 두 가지 욕구 이외에 얼마나 서로가 그 이상의 문화적인 욕구나 잉여욕구를 함께 채울 수 있느냐다.
화장, 오상무는 화장품 회사의 유능한 상무다. 그가 없이는 회사가 잘 안 돌아갈 만큼 마케팅에 관한한 누구보다도 탁월한 능력이 있다. 게다가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그는 아내 덕분에 제법 많은 재산으로 남부럽지 않게 산다. 주택은 물론 별장까지 갖춘 삶을 살고 있다. 그 덕분에 밖에서 볼 때 결혼도 잘했다고 할 테다. 그렇게 남부러울 것 없이 잘살았는데, 그에게 불행이라면 불행이 닥쳤다.
그의 아내가 뇌종양에 걸린 것이다. 뇌종양에 걸린 아내는 점차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진심이든 가식이든 오상무는 아내의 간병에 최선을 다한다. 아내의 은밀한 부분을 닦아주는 건 물론 오물도 받아내고, 더럽혀진 몸을 씻어주는 일까지 묵묵히 해낸다. 아내가 짜증을 내도, 히스테리를 부려도, 그는 그저 꾹 참고 그 모든 것을 감내한다.
그런 어느 날, 신입사원이 들어온다. 추은주, 그는 한눈에 그녀에게 묘하게 끌린다. 병든 아내와 정반대로 밝고 명랑한 추은주, 은근 슬쩍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의 손을 터치한다. 그런데 그녀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녀도 오상무에게 끌리는 걸까. 그때부터 오상무의 마음은 추은주에게 쏠린다.
회사라는 공간, 그 밝은 공간엔 추은주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반면 병원이란 칙칙한 공간에는 아내가 있다. 두 공간을 오가는 중년 남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쏠리자 그는 말은 못하지만 아내를 만나면 미안해한다. 그래서이든 연민이든 아내의 간병인으로 그는 최선을 다한다. 냄새가 심하다고 딸도 옆에 있기 거북해 하지만 그는 궂은 간병인 역할을 다한다.
그렇게 밝은 세상과 어두운 세상을 오가는 오상무는 세속에 지쳐간다. 별로 말이 없어지는 건 어쩌면 인생의 서글픔일 터다. 그럴수록 추은주를 향한 감정은 점점 무르익는다. 게다가 직원 엠티를 갔는데 추은주가 던진 말이 가슴에 남는 거다. 그녀는 포도주를 맛보며 "맛이 있어요. 중후한 맛이 느껴져요. 시간이 가는 만큼 깊어지고 하나하나 향기가 풍기면서 중후해져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그에게 건넨다. 그는 이 말이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게다가 그녀는 파티 중에 그에게 포도주를 선물한다. 그럴수록 오상무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그럼에도 그는 추은주에 끌리는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
그는 지금 전립선 비대증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남자의 구실을 못할까 초조하다. 그의 아내는 여자를 잃어가면서 화장을 지운다. 그는 전립선비대중으로 남성을 잃을까 초조하다. 그런데 뇌종양으로 힘겨운 병상에 있던 아내가 외출을 하겠다며 조른다. 마지못해 아내와의 여행, 그날 밤 아내가 그의 몸을 요구한다. 이상하게 이제까지 잠자고 있던 그의 남성이 살아난다. 아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엔 온통 추은주를 향한 상상이 가득차 있는데, 아내와의 결합 중에 추은주의 나신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의 상상 속에 추은주의 영상이 아내와의 정사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그런데 추은주가 결혼한단다. 마음이 쓰리다. 그 마음을 감추고 일정을 핑계로 그는 그녀의 결혼식 참석을 못하겠다며 금일봉을 건넨다. 그리고 얼마 후 공교롭게도 결혼한 추은주가 파혼했단다.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웃어야 하나. 그에게 새로운 기대가 생긴다. 그토록 마음에 두었으나 고백 한 번 못했던 오상무게, 비록 중년의 나이지만 그의 새로운 로맨스가 열릴까? 그런데 추은주가 중국지사에 지원하겠단다. 마음은 쓰리지만 오상무는 그녀를 위해 정성껏 추천서를 써준다. 그게 그녀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아내가 죽었다. 아내의 죽음으로 회사직원들이 문상을 왔다. 추은주도 함께 왔다. 문상을 끝낸 추은주의 일행이 상주들과 맞절을 하는데 하필 오상무 앞에 추은주, 둘은 맞절을 한다. 그녀의 파진 상의 사이로 드러난 앙가슴이 오상무의 마음을 유혹한다. 장례식이라고 해서 인간이 본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내가 죽었는데도 그는 편안하다. 딸은 오열하는데 그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밤 이전보다 더 편안한 잠을 잔다. 서둘러 아내의 유품을 정리한다. 아내의 부탁이기도 했으니까. 딸은 왜 그렇게 서두르느냐고 하지만. 그는 별장에 남아 있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러 간다. 때마침 택배가 와 있다. 추은주가 보낸 포도주 박스다. 그녀가 그에게 보낸 프러포즈일까.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꼭 만나고 가겠다는 쪽지가 들어 있다. 이들의 로맨스는 이루어질까? 아내를 화장하고 돌아온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까.
그가 전화를 계속 받지 않자, 추은주가 별장으로 오겠다는 문자만 남기고 별장으로 온다. 그녀를 피해 오상무는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오상무 별장에까지 왔던 추은주는 오상무의 뒷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사라진다. 오상무는 그저 물끄러미 멀어져가는 추은주의 차를 바라볼 뿐이다.
어쩌면 오상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남자들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일상에 지치면서 어디에서 위로 받고자 하나 위로 받을 곳보다는 다시 지치게 하는 가정이 기다린다. 그렇게 일상으로 무화된, 이를테면 나가나 들어오나 지치게 하는 일들, 무거워지는 짐, 갑갑한 일상이다. 중년의 남자는 가정에서도 밖에서도 압박을 받는다. 가장으로서의 짐도 무겁거니와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괴로움이나 굴욕도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러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근원적으로 해결은 안 되더라도 어느 정도 위로가 될 것 같아 중년남자는 로맨스를 꿈꾼다. 일종의 도피처라고나 할까. 중년의 남자는 쓸쓸하다. 애처롭다. 이처럼 이 영화는 중년 남자의 심리를 솔직하게 그려낸다. 감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들의 고단한 일상에 따르는 일탈을 꿈꾸는 솔직한 속내를 그려낸다.
화장품 회사와 병원이란 공간의 설정은 감독의 의도이다. 여자는 화장을 한다. 남자에게 아름다워 보이려고 화장을 한다. 그 밝은 공간에 있는 추은주는 그 상징이다. 화장을 한 여자 추은주,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중년의 남자는 그나마 들뜬다. 세상은 살만하다 느낀다.
병원, 칙칙한 공간에서 중년의 남자는 쓸쓸하다. 가능하다면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굴레다. 아내도 한때는 화장한 아름다운 여자였으나 그녀가 이제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아니 화장을 할 수 없다. 화장을 할 이유도 없다. 여자가 화장을 멈추는 순간, 여자로서의 인생도 끝나는 것일까.
여자의 화장, 화장한 여자 앞에서 남자는 방황한다. 비록 나의 여자가 아니라도 나의 여자이기를 꿈꾼다. 상상한다.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꿈꾸었던 여자가 다가오면 왠지 멈칫한다. 그 밝은 빛이 오히려 두렵기 때문이다. 아름답던 여자, 늘 곱게 화장하던 여자도 세월이 가면, 더는 남자를 위해, 아니 남편을 위해서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건 심리적으로 남자 앞에서 죽어간다는 의미이다. 더는 남편에게 매력을 선사하지 않는, 이 영화의 아내처럼 몹쓸 병에 걸려 화장을 거두는 여자의 화장의 의미, 이미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건, 화장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건, 그녀는 남편 앞에서 이미 여자로는 죽고 아내로만 남아 있다는 상징이 아닐까.
그러니 여자들이여, 살아 있는 동안 화장을 하라, 남편을 위하여 곱게 화장을 하라. 마음의 화장도 하고 얼굴의 화장도 해야 할 터이다. 물론 남자 역시 남편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내의 남자로 살려는 자기관리도 필요할 터다.
여자는 화장을 한다. 그녀는 늙거나 병든다. 그러곤 여자는 화장을 하는 게 아니라 화장당한다. 명사는 같지만 의미는 전혀 다른 화장, 여자가 화장을 하는 순간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시간이라면, 여자가 화장을 당하는 순간은 완전히 이 세상과의 결별로 한줌의 재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화장하는 여자는 언젠가 화장당하고, 여자의 화장을 지켜보던 남자는 언젠가 화장당한다. 화장은 살아 있음의 상징이라면, 당하는 화장은 죽음의 상징이다. 이 삶과 죽음 사이에 사랑이 숨 쉰다. 사랑은 죽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주는 상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