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31- 순수의 시대, 순수한 사랑이 담긴 손의 미학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데, 마치 그곳은 마치 살기 위해 남을 해하지도 않고, 칼을 쓸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 모두가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져서 흥겨워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웃고 있더구나. "
시놉시스, 두 남녀의 정사장면과 핏빛 전쟁, 복수와 사랑, 그 둘의 대결에서 복수를 누르고 사랑이 승리한다. 그 과정을 손 맞잡음에 녹여 넣은 영화, 손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다.
내 이 손 놓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손 놓지 않을 것이다. 사랑, 사랑을 손으로 말한다. 순수의 시대, 순수는 이 손 안에 있다. 맞잡은 손에, 상처 입은 손에, 싸매주는 손에 순수는 그 손에 묻어 사랑을 이룬다. 오염된 사랑을 순수로 정화한다. 이 영화 손에 대한 미학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의미부여를 할 만하다.
한 남자, 강한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태조의 신뢰를 받는 김민재는 태조 자신과 세자를 지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태조로부터 왕검을 하사받는다. 때문에 그는 태조의 사람인 셈, 그는 사실 호시탐탐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방원의 친구였으나 태조의 신뢰를 받으며, 게다가 태조의 명을 받았으니 태조와 이방원이 갈등하는 한 그는 이방원과 대적해야 하는 입장이다. 김민재는 여진족의 피를 받아 신분에 핸디캡이 있으나 누구보다 용감하고 남자답다. 조선 제일의 장수다.
그가 태조의 중용을 받은 배경에는 정도전의 힘이 있었다. 사연인 즉 정도전의 딸은 부정한 피를 받아 임신한 상태였는데, 정도전은 그 딸의 사위로 김민재를 점찍은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비밀에 붙이는 조건으로 정도전의 사위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자신의 미천한 신분으로는 출세를 할 수 없으니, 그는 정도전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사랑 없는 결혼의 대가로 그는 조선 제일의 무장으로 태조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다.
덕분에 그는 다른 동료들보다 출세가 빠르다. 그의 추월에 질투를 느낀 동료는 당연히 그를 등지고 이방원의 사람이 된다. 비정한 권력 암투의 마당에서 어제의 친구는 오늘은 적이다. 누가 흥하고 누가 망할지 알 수 없다. 영악한 이방원은 권력의 1인자가 되려 한다. 세자를 내몰고 아버지 태조 까지 물러나게 한 다음 차기 권력을 차지하려 노린다.
호사다마라, 잘 되는 일에는 마도 끼는 법, 멋진 김민재, 정의감이 넘치는 김민재, 인간미 넘치는 김민재, 실제로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나 김민재는 정도전의 딸과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얻는다. 아들은 인간성이 영 아니다. 놈은 할아버지 정도전 덕분에 공주까지 얻어 부마가 되었으나 행동은 시종잡배다. 한 여자를 강제로 성폭행하여 원한을 쌓는가 하면, 그 증거를 없앤다고 불을 질렀다가 그녀의 어머니를 죽게 만들어 원한을 산다.
그에게 폭행당한 여인은 다름 아닌 가희, 게다가 어머니까지 그 일로 잃은 가희가 원한을 갖는 건 당연하다. 가희는 놈에게 복수할 계획이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이방원의 사람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힘을 얻어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기녀로 분한 그녀는 뭇 사내들 앞에서 나긋나긋 춤을 춘다. 뭇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민재의 마음도 그녀를 향해 움직인다. 의도적인 접근인 줄 모르는 민재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다. 때에 맞추어 민재의 경쟁상대가 그녀에게 접근하여 행패를 부린다. 그녀의 머리를 올려주겠다며 칼 들고 설치다가 보기 좋게 그녀에게 무안을 당한다. 그러자 그는 홧김에 그녀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이댄다. 위기 상황에서 김민재가 그 칼날을 손으로 잡는다. 그의 손에서 피가 뚝뚝 흐른다. 이방원이 이들의 싸움을 멈추도록 명한다. 그리고는 가희에게 두 남자 중 선택을 하게 하여 머리를 올려주게 시킨다. 가희는 둘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는 대신 민재의 손에 붕대를 감아준다. 그녀는 민재의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 몸짓을 하지만 민재는 욕구를 참고, 집으로 돌아간다. 다만 둘은 처음으로 손을 잡은 셈이니, 아들에게 복수하려는 가희의 의도에 제대로 걸려든 셈이다.
가희가 춤을 추는 곳에 나타난 이방원의 남자, 그가 또 가희에게 위협을 가한다. 차라리 그의 여자가 되느니 죽겠다며 가희는 물로 뛰어든다. 이번에도 역시 민재는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건져낸다. 그녀는 진정으로 민재를 사랑하기에 순결을 지키려하는 것일까? 민재가 물속에서 그녀를 건져내며, 그녀의 손을 꼭 잡는다. "내 절대 이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살아야 한다. 나랑 약조할 수 있겠느냐?"라며.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는다. 드디어 한 몸이 된 두 사람, 겉으로는 적어도 둘은 서로 사랑한다.
그녀는 민재의 첩으로 들어간다. 민재는 두 여자 사이에 있다. 사랑은 없으나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여자인 아내,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한 여자 가희, 그는 두 여자를 두고 살아간다. 대신에 가희는 민재의 아내로부터 박대를 받는다. 복수의 길은 가혹하고 힘들다. 그뿐 아니라 민재의 아들이 그녀를 알아본다. 이런 자신이 죽게 만든 줄 알았던 여자, 바로 그 여자가 아버지의 여자로 변하여 들어온 것을 안 놈은 뻔뻔스럽게도 그녀에게 치근거린다. 진정으로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호시탐탐 가희를 자기 여자로 만들 기회를 노린다. 아버지의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한다.
결혼은 하였으나 남편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민재의 아내는 가희에게 생짜를 부린다. 심지어는 사람을 시켜 가희를 폭행하도록 만든다. 가희와 아내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민재는 목검으로 검도를 한다. 화를 풀기 위해서다. 얼마나 목검을 휘둘렀는지, 목검이 부러진다. 그의 손에서는 피가 줄줄 흐른다. 그러자 가희가 따뜻하고 다정한 손으로 그의 손을 감싼다. 다정하게 그녀는 붕대를 감아준다. 그가 그녀에게 사랑이 그윽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손 놓지 않을 것이다. 너도 약조할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다. 이전에 물속에서 그녀를 구해줄 때와 같은 말이다. 이 말과 함께 서로의 달콤한 사랑, 몸이 단다. 뜨겁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연락이 있을 소냐.
"꿈을 꾸었다. 누구나 구분 없이 춤을 추고 있더구나.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웃고 있더구나. 그 손이 참 따뜻했다. 내 너와 함께 그 꿈처럼 살아가고 싶구나."
둘의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다. 그녀는 그럼에도 복수를 잊지 않는다. 하나씩 하나씩 가희는 복수의 단계를 밟아간다. 그녀는 민재의 아들을 유혹하여 낸 후, 태조로부터 받은 하사품을 손에 넣는다. 그러고는 그에게 몸을 주는 척하다 그를 오히려 다치게 만들고 탈출한다. 그럼에도 그녀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민재의 아들. 민재가 그녀를 구해주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불, 웬 불일까? 가희의 물건을 민재의 아내의 명을 받은 하인들이 태우는 중이다. 가희가 울부짖는다. 그녀 어머니의 유품도 함께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노리개는 가희의 어머니가 가희에게 물려준 것이다. 민재가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희의 물건을 불 속에서 끄집어낸다. 그 바람에 그는 또 손을 덴다. 이번에도 역시 가희는 그의 손을 정성스럽게 싸매준다. 손과 손의 만남, 따뜻한 손잡기, 절대 이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이제 막바지다. 세자 책봉에서 밀린 이방원이 권력을 빼앗으려 계략을 꾸민다. 그것을 막으려는 민재. 이방원의 사람이면서 복수를 위해 민재에게 접근한 가희, 하지만 복수 이전에 그녀는 진정한 민재의 사랑에 흔들린다. 그럼에도 그녀는 복수를 택한다. 거짓 정보를 흘려 민재를 움직이게 만들어 그를 역적으로 몰아세우려 한다. 우선 그녀는 완벽하게 민재의 아들을 움직인다. 그를 불러내어 그로 하여금 달아오르게 한다. 그 바람에 그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 가희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강간하려 한다. 약속대로 정보를 흘려 민재의 며느리에게 현장을 알게 만든다. 민재의 아들은 현장에서 잡혀 개창피를 당한다. 아버지의 여자를 범했으니 강상죄다.
그런 일 때문에 꼼짝 없이 이방원의 계략에 말려든 민재는 역적으로 몰리지만 태조는 그의 진실을 안다. 다만 이제는 그에게 태조의 명령이 떨어진다. 가희를, 강상죄를 범한 가희를 그에게 처단하라는 것이다. 그걸로 진실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는 가희가 갇힌 감방으로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를 그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 정말로 사랑한다고 여겼던 여자다. 이 손 놓지 않겠다고 세 번이나 약속했던 여자다. 그녀와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들이 그를 망설이게 한다. 미련이 남는다. 그가 묻는다. 자기를 배신한 것이 진심이냐고. 그녀는 그의 말을 부인한다. 복수를 위하여 일부러 접근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죽는 것이 두려웠다면 처음부터 시작을 안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 않는다. 사랑보다 어머니의 복수가 우선이었다는 그녀의 고백에도 민재는 "진정 나와 함께 있는 동안 한 번도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더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를 죽이는 대신 그녀를 꽉 껴안는다. 그녀의 몸이 들썩인다. 그녀가 울고 있다. “나와 함께 가자. 내 절대 이 손 놓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더냐.” 그의 이 말과 함께 둘은 도망을 친다.
이방원이 뒤쫓는다. “살아야 한다. 내가 너를 절대로 지켜줄 것이다.” 민재는 그녀를 데리고 배에 오르려고 하나 화살이 빗발친다. 간신히 그녀를 배에 태워 밀어낸다. 그녀가 함께 가지 않으면 안 가겠다며 울부짖는다. 그가 곧 따라가겠다며 절대 살아야 한다며 약속한다. 곧 따라가겠다고. 늘 민재를 괴롭히던 경쟁자와의 싸움, 민재는 결국 그를 죽이는데 성공하지만 병사들은 계속해서 밀려들고, 그는 그 병사들을 무참히 쓰러뜨린다. 그럼에도 수에 밀린 그가 부상을 당하여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이번엔 가희가 도망가는 대신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녀가 그를 잡는다. 물속에서 둘이 손을 맞잡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손 놓지 않을 것이다. 너도 약조할 수 있겠느냐? 꿈을 꾸었다."
"무슨 꿈입니까?"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데, 마치 그곳은 마치 살기 위해 남을 해하지도 않고, 칼을 쓸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 모두가 구분 없이 한 데 어우러져서 흥겨워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웃고 있더구나. "
"좋은 꿈이네요. 나리와 함께 그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물속에서 꾸는 꿈들이다. 이방원의 사람들이 두 사람을 찾아 나섰으나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손의 미학이 아름답다. 두 손을 잡는다는 의미, 그렇게 맞잡은 손이 더 따뜻하고 더 순수하게 느껴졌다. 그 손에 흐르고 있을 사랑, 그 순수의 사랑이 손과 손 맞잡음에 잇다는 것, 그 미학이 아름답다. 남녀의 첫 만남, 그것은 어쩌면 첫손 잡기에서 시작일 것이다. 첫 손 잡음에서 전해오는 느낌, 그 느낌으로 사랑은 시작된다. 그만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남녀 사이에서 손을 잡는다는 것은 사랑의 문을 여는 것과 같다. 한 번의 손잡음은 우연이었다 치자. 두 번의 손잡음도 우연이었다 치자, 세 번의 손잡음은 예사롭지 않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손잡음의 미학이다. 남녀 사이의 가장 순수한 사랑의 모습은 손잡음이 아닐까. 추하지도 않고 격렬하지도 않고 잔잔하게 전해져 오는 손잡음의 다정함과 따뜻함, 그렇게 손잡음에서 사랑은 송골송골 땀방울처럼 서서히 배어나올 테니까.
반면에 손에 피를 묻힌다는 건 불길하다. 피를 부르는 건 권력싸움이거나, 전쟁터의 피 부림일 테니까. 이처럼 손은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적대적인 관계의 상징이기도 하다. 손잡음과 손 뗌, 관계 맺기와 배척, 우리 몸의 부위 중 손이 주는 의미는 아주 다양하다. 악수가 있다면 복수가 있다. 보호가 있다면 손봐주기가 있다. 손에는 이렇게 우연 같은 운명이 들어 있다.
가족 내에서의 피, 순수를 지켜내기 위한 손바닥의 피, 피 피, 빨간 색과 순수의 색 흰색의 대비가 상상으로 흔들린다. 순수한 남자, 민재의 진실한 사랑이 복수를 앓는 여인의 마음을 녹여 순수로 바꾸었다. 핏빛 복수를 순수로. 험하면 험할수록 순수는 더 빛난다. 핏빛이 진할수록 순수는 더 아름답다.
진심을 전하기 위해 손바닥에 피를 흐르게 하고, 복수의 손은 비록 가식이라 할지라도 그 순수한 고백을 붕대로 감아준다. 그렇게 따뜻한 사랑의 손과 냉정한 복수가 묻은 손의 만남, 복수의 손이 사랑의 손을 싸매주는 설정의 아이러니가 나중에 진정으로 하나로 합쳐지는 미학이다. 진정한 사랑의 승리다. 이제 두 사람은 복수가 사라진 징정한 사랑만 남은 순수한 사랑의 손잡음이다.
"꿈을 꾸었다. "
"무슨 꿈입니까?"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데, 마치 그곳은 마치 살기 위해 남을 해하지도 않고, 칼을 쓸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 모두가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져서 흥겨워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웃고 있더구나. "
"좋은 꿈이네요. 나리와 함께 그곳으로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