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39- 어우동, 주인 없는 꽃, 운명을 바꾸려던 비련의 여인

영광도서 0 1,679

남성중심사회, 남성이 지배한 사회에서 여성은 거의 모든 면에서 차별을 당했다. 피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아니 피상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면에서 더 차별을 당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쓰인 경전은 물론 신화, 역사로 대별되는 거의 모든 텍스트들 역시 여성차별 적으로 기록되었다.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지금도 그런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남성작가가 쓰건 여성작가가 쓰건 책 내용도 페미니즘을 좀 이해하는 여성이 읽으면 우선 기분이 안 좋을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들은 이처럼 남성중심사상으로 기록되었고, 남성중심으로 해석되었다. 단어에서도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명사는 남성명사요, 수동적이거나 부정적인 명사는 여성명사로 표현된다. 특히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한 동양에서는 그 강도가 더하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의 여인이 아니랴.

 

조선의 여인은 아프다. 지아비 선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조선의 여인은 비련이다. 여기 어여쁜 꽃으로 태어나 독으로 변해 남정네를 졸장부로 만든 여인이 있다. 주인 없는 꽃 어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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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 박참판의 여식으로 태어나 꽃 중의 꽃이다. 그녀는 남정네들의 숭배의 대상으로 올라선다. 그런데 그녀에겐 정인이 있다. 박참판 댁 머슴 무공이다.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사랑을 키워 온 두 사람, 그들의 사랑은 갸륵하다만 신분이 다르니 그 사랑이 이루어질 리 없다. 

 

박참판은 신분이 달라서 어림도 없다며 무공을 내쫓는다. 내쫓긴 무공은 박참판의 딸 혜인을 얻기 위해 신분을 양반으로 바꾸고 돌아온다. 그래도 그는 몽둥이찜질만 당하고 다시 내쫓긴다.

 

기방에 소문이 자자하다. 혜인이 절세가인이라고. 그뿐인가, 학문에 능하고 서예에 능하고, 누구나 탐낼만한 미인이라고. 조카가 왕이 되었으나 자신은 왕이 되지 못한 왕의 종친 이동, 그는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뿐 그것만 빼고는 아랫도리는 자신이 있다는 작자다.

 

그가 입궐하는 박참판에게 접근한다. 의도적으로 접근한 그는 박참판 댁에 찾아와 왕족의 권세를 내세워 혜인을 얻겠다고 한다. 박참판이 감히 왕족인 작자를 어찌 거절하며, 혜인이 어찌 아비의 뜻을 물리칠 수 있으랴.

 

혜인을 말에 태워 나들이를 가는 모습을 그냥 바라봐야만 하는 무공, 울분을 가슴으로 쥐어짜는 듯 참는 무공의 모습이 처연하다. 그러니 어쩌랴, 양반은 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라니. 이동이란 작자 혜인에게 수작을 건다. 슬그머니 거부하는 그녀에게 패랭이 꽃 하나 꺾어 주며 말한다.

 

"이 꽃을 잘 간작하시오. 오늘을 기억나게 해주고 내일을 꿈꾸게 해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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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달콤한 화술로 혜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그리곤 일사천리로 그녀와의 혼인을 하고는 욕망에 가득 찬 첫날밤을 보낸다. 그러나 혼인 후에도 이동은 평소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기루에서 매일 밤 다른 여인을 품으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기루에 들어서 객들과 농담을 지껄이며 자기 아내와의 정사 장면을 리얼하게 자랑한다. 그럼에도 왜 이런 곳에 오냐는 말에 그는 "원하는 걸 얻으려면 그만큼 내줘야 얻는 법,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라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떡이라도 두 번 세 번 먹으면 질리는 법일세."란다.

 

마침 그 이야기를 엿들은 무공은 자기가 사랑하는 혜인을 욕보이는 언사를 참을 수가 없다. 그는 그를 추적한다. 그러다 그를 불러 세우고 그와 설전을 벌인다. 이동이 그를 무시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려다가 무공에게 오히려 흠씬 얻어터지는 수모를 겪는다. 그럼에도 이동은 정신을 못 차리고 끝내는 집에까지 기녀를 끌어들여 그 기녀와 질펀한 정사를 벌인다.

 

혜인은 절망한다. 헤인은 그에게 ‘점잖게 패랭이꽃 말려서 꽂아두시오’라는 말의 진실을 따져 묻는다. 이동은 그녀에게 오히려 삼종지도를 어겼다며 그녀에게 모욕을 준다. 그에게 폭력까지 당하고 집으로 온 혜인은 아버지에게서도 출가외인이라며 내쫓긴다. 절망한 혜인은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강물로 걸어들어 간다. 그것을 목격한 무공이 그녀를 억지로 끌어낸다. 그녀는 그때부터 조선의 남자들과 싸우겠다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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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녀는 무공이 마련해 준 거처에 숨어서 기녀로서의 기술을 익힌다. 요염한 춤과 아름다운 자태로, 얼굴을 가리고 등장하여 남자들을 호리고 퇴장하는 여자, 그녀의 이름은 이제 어우동이다. 자칭 주인 없는 꽃이다. 주인 없는 꽃이니 손님도 주인이 스스로 찾는다 한다. 권세든 부든 그 무엇과 상관없이 만족을 주는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단다. 그녀의 미모, 뇌쇄적인 춤에 반하고, 그녀의 환상적인 가야금 가락에 변한 남자들이 그녀에게 모여든다. 나름 권세 있고 부가 있는 권문세가의 남자가 와서 그녀의 주인이 되게 해달란다.

 

"자네 앞에서 도덕 군자자 있을까? 하찮은 수캐에 불과하네. 내 그대의 주인이 되고 싶네."

 

어우동은 몸에다 그 맹세를 증표로 찍어오면 허락하겠단다. 이 남자 고통을 참으며 인두로 어우동평지애라 새기고 그녀 앞에 나타나서야 그녀를 품는다. 어떤 작자는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서야 그녀를 차지한다. 한 놈은 마누라를 내쫓고 그 자리에 어우동을 앉히겠다고 맹세한다.

 

무공은 그렇게 혜인이 어우동 노릇을 하며 남정네와의 신음 소리로 밤을 보내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무공은 마음이 찢어진다. 그런 심정을 털어놓는 무공에게 혜인은 언제든 오면 자신을 품을 수 있게 하겠단다. 혜인은 그때 물에 빠져 죽고 없고 이제는 어우동만 있을 뿐이라고.

 

어우동의 소문이 어찌나 자자한지 나랏님도 상선을 대동하고 기방에 납신다. 보아하니 숙부 이동이 침을 흘리며 그녀를 놀리는 꼴이다. 나랏님이 보기에도 과연 아우동을 보니 마음이 동한다. 입궐하며 상소문을 보든 명령을 하려고 교지를 읽으려 해도 그 종이에 어우동의 자태가 아른거려 어찌할 도리가 없다. 큰 맘 먹고 어우동을 찾아온 임금님, 여인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함께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번엔 임금님과 어우동이 질펀한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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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지켜보는 이동의 마음에 피가 끓는다. 끝내 어우동 앞에 나선 그는 어우동을 칭송한다. 그러곤 어우동 앞에 무릎을 꿇으며 "자네는 모란 중에 모란일세. 하여 이 꽃을 바치네."라고 고백한다. 그러자 "말려서 꽂아 두면 오늘을 생각나게 하고 내일을 꿈꾸게 해줄 것이라는 것이지요."라고 어우동이 뼈 있는 말 한 마디 내 뱉는다. 처음 그녀에게 패랭이 꽃 꺾어 주면서 하던 말, 지금은 모란꽃으로 바뀌어 있다. 그는 그래도 눈치를 채지 못한 걸까?

 

"용상 앞에서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네. 그런데 이렇게 무릎을 꿇었으니 나를 주인으로 어서 받아들여주게"

 

"세상이 모두 탐하는 꽃이라 가끔 나만 탐하려 해서 취하러 오신 게 아니십니까?"

 

어우동의 이 말은 바로 이동이 기방에서 객들과 농담 삼아 혜인을 가리켜 했던 말이었다. 이어서 어우동은 "안방 문만 열면 품을 수 있는 처자를 참으로 먼 길 돌아오셨습니다. "라고 말을 잇는다.

 

그러자 이동이 "내가 너의 주인이다." 라고 선언하지만 "서방님은 내 주인이 아니오. 나는 주인 없는 꽃 어우동이오." 라면서 그녀는 얼굴 가리개를 들어 올린다.

 

"날 죽여서 서방님이 좋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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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 그토록 고운, 그토록 아름다운 어우동이 자신의 아내였다니, 이동은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버린다. 이제 소문은 삽시간에 퍼진다. 어우동은 다름 아닌 태강수 이동의 처자라는 것. 무공과 어우동이 밖으로 나온 사이 관군이 들이닥친다. 어우동을 잡아가려는 것이다. 이제 양가집 아녀자가 기녀 노릇을 했으니 이제 죽음을 면치 못할 터다. 다행히도 그녀는 무공의 도움으로 자리를 피하는 바람에 위기를 면한다. 그러나 어우동, 아니 혜인은 무공을 뿌리치고 왕궁으로 가겠단다. 조선의 여인들의 가혹한 숙명을 끊겠다는 것이다. 혜인은 무공에게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존재라서 네 마음, 참된 그 마음을 뒤늦게 알았어. 다음 생에서 내가 먼저 알아보고 널 많이 연모할게." 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왕궁으로 걸어들어 간다.

 

그녀와 염분을 뿌렸던 남정네들은 잡혀 와서 그녀에게 치욕을 당했으나 결국 그들은 풀려난다. 왕부터도 그리 했으니 누구를 처벌하랴. 하지만 어우동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그녀는 그렇게 취조를 당하면서도 남정네들의 그 비굴함을, 그 색을 탐하면서 기어들어왔던 치욕을 맘껏 비웃는다. 나랏님이 그녀가 갇힌 옥에 오자 그녀는 당당히 말한다.

 

"태어난 것은 혜인이었으나 죽는 건 기류의 어우동으로 제가 선택한 것이니 편히 가겠습니다. 이리 가는 게 치욕이 아니라 저들이 치욕일 것이오."

 

그녀의 처형장, 모두 겁을 먹고 있는 마당에 무공이 뛰어든다. 군졸들의 만류에도 용감하게 뛰어들던 무공도 함께 죽는다. 어릴 때 사랑을 키우며 맹세했던 말처럼.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 날 한 시에 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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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서 괴물은 거의가 여성들이다. 스핑크스, 세이렌, 메두사, 히드라 등, 남성을 치명적인 올무라고나 할까, 미로와 같은 늪이라고 할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는 괴물들은 여성이다. 그만큼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을 아무렇게나 다룰 수 있었으나, 노예처럼 다룰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힘이 없는 듯한 여성에게 한 번 잡히면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물리적인 힘은 강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성이 비해 턱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아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여자의 치마 밑이 궁금하여, 그곳이 좋아서 치욕을 보였던 남자들, 참 부끄럽다. 그럼에도 조선에서 여자는 사람다운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 남자들의 세계, 색을 위해서는 모든 치욕을 참아내는 남자들, 그토록 여자를 떠받드는 남자들, 기꺼이 여자의 노예가 되는 남자들, 그렇게 색 앞에 약한 남자들이 어떻게 조선 500년을 여자를 짓누르며 살아왔을까, 지금도 아직 그러한 면 없지 않지만. 참으로 남자를 부끄럽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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