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49- 타임 패러독스, 시간 여행이 가능하면 나를 어떻게 바꿀까?

영광도서 0 2,123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 시간여행을 하면 역사가 바뀌므로 시간여행은 애초에 할 수 없다는 시간 역설에 대한 가설. 만일 당신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당신은 태어날 수 없다. 따라서 당신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

 

위의 개요를 유심하게 살피면서 영화를 봐도 정신줄을 놓지 않아야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미스터리처럼, 거미줄처럼 얽힌 퍼즐을 잘 맞춰야 윤곽이 잡힌다. 그러면서 나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타임 패러독스, 즉 시간의 역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룬 것은 과거의 나라고 인식한다.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가 지금의 나이며, 지금의 나의 언행이 과거의 나의 축적임을 인식한다. 이를테면 과거의 나가 지금을 만들었듯이, 지금을 어떻게 사느냐가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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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는 미래의 나를 어떻게 하느냐가 현재의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시간여행만 잘하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도, 우리의 삶의 모습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나를 발견하여 내 삶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미래의 내가 마음에 안 들면 그를 제거하여 다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역설이다.

 

생물은 누구든 무엇이든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시간에서 벗어난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그건 신뿐이다. 때문에 인간은 시간의 지배를 받으나 신에겐 시간이 없다. 시간자체가 신에겐 무의미하다. 신이 아닌 모든 존재들은 잠시라도 시간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시간을 먹으면서 주어진 시간 동안 공간에 존재한다.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니 생명체는 모두 시간과 공간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어떤 동물들은 별난 방식으로 자기 영역 표시를 한다. 물론 인간이 제일 유별나다. 자기만의 공간에 외부 침입자가 없도록 이중삼중으로 벽을 친다. 식물에게도 일정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과 공간은 모든 생명체의 존재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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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내일 완수할 걸 어제 하지 마라. 마침내 성공해도 다시 하지 말라."는 말로 시작한다. 템포럴 요원, 그는 시간여행자이며, 시간의 퍼즐을 폭파하는 사람이다. 그는 효율적이고, 정확해야 한다. 그만큼 치음 임무가 마지막 임무만큼 중요하다.

 

뉴욕을 초토화시킨 폭파 사건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다. 용의자 퍼즐 폭파범을 잡기 위해 범죄 예방 본부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템포럴 요원을 투입한다. 템포럴이 주인공이다. 우리의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제, 즉 역설에서 이 영화는 출발한다. 템포럴, 그는 타임퍼즐 폭파범으로 갔다가 기습을 당하고 쓰러진다. 그러면서 심한 화상을 입는다. 그리고 그가 깨어났을 때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얼굴이다. 그가 깨어나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카페를 운영한다. 그 가게에 찾아들어온 사람, 이상하게 그 사람에게 끌린다. 그와의 만남으로 그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손님, 그는 원래는 여자였다. 그는 시간을 다루는 회사에 입사하려 했으나 최종시험에서 탈락했다. 아무리 남성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여자라는 점 때문에 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이상하게 남성적인 여성이라 다른 남성들로 부터 사랑 받지 못하고 살던 그녀에게 찾아온 사람, 그 사람에게 끌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다. 그와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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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고비를 넘기며 아이를 낳은 그녀, 특이하게 그녀는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가진 자웅동체이다. 아이를 낳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그녀는 결국 여성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아 양성의 그에게서 여성은 없어진다. 대신에 그를 살리기 위한 수술로 그의 남성을 살린다. 그 바람에 그는 아예 남성으로 전환된다. 그럼에도 그에겐 모성애는 남는다. 여자였으나 남성으로 변한 그녀, 그녀의 아기를 어떤 남자가 안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임신을 시킨 남자, 그 남자가 아이를 안고 갔을 것으로 추측한 그녀는 그 남자를 찾아 복수하려 한다.

 

완전한 남자로 전환한 그녀, 남자가 된 여자는 남자처럼 말하는 법을 연습한다. 그의 사정 이야기를 들은 카페 주인 템포럴이 그 남자를 찾아주겠다고 한다. 템포럴은 시간여행을 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와 다시 자신을 만난다. 과거로 돌아간 이 남자, 이전에 자신이기도 한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다. 남녀가 암호처럼 주고받는 대화들은 예전 그대로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걸 모른다. 템포럴만 그 사실을 안다. 이 남자가 다시 그녀에게 빠진다. 둘이 사랑을 한다. 이것이 템포럴과 템포럴의 과거와의 만남이다. 이 두 남자의 만남은 이를테면 자아와 자아의 만남이다. 그리고 이 남자가 만난 여대생, 그녀는 과거 속의 또 그 자신이다. 아래 단서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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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서1. 템포럴 요원은 피즐 폭파범을 막다가 얼굴을 다쳐 이식수술을 한다.

 

단서2. 템포럴 요원은 바텐더로 위장 취업해 존을 만난다.

 

단서3. 존은, 고아원에서 자라나 우주비행사를 꿈꾸다가 의문의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인생을 망친 소녀 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단서4. 존은 제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단서5. 템포럴 요원은 존을 제인이 의문의 남자를 만나기 바로 직전으로 데리고 간다.

 

단서6. 템포럴 요원은 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템포럴의 과거는 존이다. 존의 과거는 제인이다.

 

다시 정리하면 제인은 존과 결합해서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제인은 남성으로 전환한다. 제인이 남성으로 변한 것이 존이다. 존은 지금 템포럴을 만나 의문의 남자, 자신에게 임신을 시키고 아이를 훔쳐 달아난 남자를 찾고 있다. 아이를 훔쳐 달아난 남자는 누굴까? 누구의 딸인지도 모르는 아이가 된 제인이 낳은 아이는 누굴까? 좀 더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그 아이의 이름이 제인이다. 그 아이는 바로 제인, 그럼 제인이 사랑한 남자는 다름 아닌 존이다. 그러면 아이를 훔쳐간 남자는 제인=존이란 등식이 성립하니까 여기까지는 풀린다. 아이를 훔쳐간 남자는 바로 존의 미래의 모습이다. 그 미래의 모습이 바로 템포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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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은 잘 모른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그 남자, 정체불명의 남자를 함께 찾기로 한다. 이를테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만나 미래의 나를 찾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공공의 적, 그 사람, 알고 보니 그는 바로 템포럴을 조종하는 남자다.

 

행불된 아기- 제인 - 존- 템포럴- 라봤슨으로 이어진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템포럴, 템포럴이 아기 적엔 행불아기였고, 그가 제인이었고, 존이었고, 지금의 템퍼럴이었다.

 

그가 미래의 자신을 드디어 찾아낸다.

 

"날 죽이지 마. 우린 모두 라봤슨이야. 사슬을 끊고 싶다면 날 죽이지 마. 오히려 나를 사랑해야 해."

 

하지만 라봣슨 때문에 죽은 사람들, 고통당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시간을 바꿈으로써 많은 이들이 살날 수 있었다면 죽이지 말라고 한다. 그래야 우리함께 미래를 꾸릴 수 있다고. 그럼에도 템퍼럴은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향해 총을 겨눈다. 그리고 미래의 자신을 죽인다. 그건 그의 힘든 결정이다. 미래란 알 수 없는 세계로 남겨둔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템포럴의 자조 섞인 대사가 내 기억을 지배한다.

 

"우리가 필요한 사람은 탁월한 능력자이다. 거기에 가족 없는, 너와 같은 사람, 남편 없고, 아내 없고, 자식 없고, 과거도 없고, 미래에 미련도 없을 사람이 필요해. 자내 알지만 역사와 조상이 없지. 네가 날 쏘면 넌 내가 될 거야. 그렇게 된다고, 사슬을 끊고 싶다면 날 죽이지 말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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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 모두를 따라다닌다. 진실은 허구보다 이상하다는 등 아리송한 대사들을 쏟아낸다. 게다가 링컨의 말이라며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말하지만 그건 잽싼 자들이 남긴 것일 뿐"이란다. 우리는 정말 미래의 나를 알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나라는 존재의 과거의 모습도, 더구나 미래의 모습도 전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 그런 일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말한다. 그 알 수 없는 시간 여행, 수천 마일의 시간 여행은 바로 우리 발 앞에서 시작된단다. 그 시간 여행의 성공여부는 눈에 안 띄는 시간여행의 열쇠란다. 요행이란 시간 설계의 부수물이란다.

 

영화에서 비유적으로 말하는 뱀, 그 뱀은 제 꼬리를 먹는 뱀으로, 나의 과거와 미래를 좌우하는 건 나 자신임을 비유한다. 내가 나의 꼬리인 과거를 먹고, 나의 미래를 먹을 수 있다. 특히 시간여행에서 보다 찾기 쉬운 건 과거로의 여행이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가 아무리 달려졌어도 느낌이라도 있으니까 어렵사리라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미래로의 여행에서 나의 모습을 찾기란 무척 어렵다. 그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야 한다.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거 같은 나 찾기다. 너인 듯 네가 아닌 나찾기이다. 내가 아닌 듯한데, 전혀 내가 아닌데 알고 보면 그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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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나를 그렇게 망쳐놓았던 그 놈이 바로 나다. 찾아서 죽이고 싶었던 그가 알고 보니 나 자신이다. 이는 심리학적인 퍼즐로 투사와 같다. 내가 누군가를 증오한다면, 그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나의 무의식의 그림자인 것이다. 내가 증오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나를 죽이려는 무의식적인 발단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무척이나 밉다면 그는 다름 아닌 내 안에 살아 있는 나 자신이자 나의 모습이다. 그걸 지우고 싶어 나를 닮은 타인을 살해하고 싶은 무의식적 발단이다. 히틀러의 본능 속에는 아주 부정적인 유태인이 있기 때문에 유태인을 학살했듯이 말이다.

 

나라는 존재의 복잡함, 그러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일직선에 놓으면 간단하다. 단지 내가 나를 모를 뿐이다. 내가 과거의 나를 모르고 미래의 나를 모를 뿐이다. 따라서 다만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나를 변하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그뿐이다. 결국 현재의 나가 현재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과거의 나를 바꿀까, 미래의 나를 바꿀까, 이렇게 바꾸든 저렇게 바꾸든 나는 나일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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