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54- 앵그리스트맨, 인생에서 마지막 90분밖에 없다면
세상은 참 요상하다. 아나 요놈의 눈이 요상하다. 때로는 세상이 모두 추하고 더럽고 살맛 안 난다. 사람들이 모두 악인 같고 나를 괴롭히려 드는 것 같다. 그러다 때로는 세상이 살만하다. 모든 게 아름답고 모든 게 행복하고 모든 게 살맛난다. 그만큼 세상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그대로라도 마음이 변하는 때문이다. 같은 상황, 같은 대상이라도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인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으나 내 눈이 변한 거다. 육안으로 보는 세상이 있고 심안으로 보는 세상이 있다. 그런데 육안은 힘이 없다. 심안이 보라는 대로 본다. 좋아도 나쁘면 나쁘다고 본다. 나빠도 좋다면 좋은 거다. 그러니까 심안이 중요하다. 세상을 보는 기준은 심안이니까. 기분으로 보는 거니까.
헨리는 조울증 환자다. 좋을 땐 한껏 좋다. 나쁠 땐 한없이 나쁘다. 큰아들이 죽은 후부터 심한 조울증을 앓는다. 그의 조울증에 질린 그의 아내가 집을 나간 바람에, 아내와 별거를 한 지 2년이다. 그나마 작은아들마저 그와 등을 지고 그를 본체만체 한다.
이 남자 앵그리시트를 작성한다. 리스트를 보니, 온통 화낼 일뿐이다. 오늘 역시 그렇다. 신호를 기다리다 출발하려는데 꽝 소리, 그의 자동차가 뭔가에 부딪친 것이다. 그는 차에서 내려 화부터 낸다. 보아 하니 상대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흑인에게 ‘느그 집으로 돌아가’라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다. 상대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인종차별 발언에 남자는 화가 나서 헨리에게 ‘죽여 버릴 거’라고 소리치고는 도망친다.
이번엔 병원이다. 그는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기 때문이다. 그의 순서가 빨리 안 온다. 게다가 담당 의사는 바쁘기 때문에, 다른 의사가 그를 진료한다고 해서 그는 또 열 받는다. 한 술 더 떠서 그를 진료할 의사는 여자다. 아니 인턴이다. 그런데다가 여의사는 지금 기분이 영 아닌 것 같다. 그녀의 고양이가 13층 창밖으로 뛰어내려서 죽었다는 것이다. 남자친구와도 사이가 안 좋아진데다, 고양이도 죽었지, 기분이 무척 안 좋은데 그가 진상을 떠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럼에도 그는 의사에게 병명을 대라며 닦달한다. 이 의사는 자기는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담당 의사가 알려줄 거라고 한다. 헨리는 막무가내다. 할 수 없이 그녀는 알려준다. 그가 죽을병이냐 묻자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 남자는 또 얼마나 사느냐며 화를 내며 들이댄다. 이 여자 화난 김에 마침 탁자 위에 잡지에 기사 숫자를 보며 무심코 90분이라고 말한다.
흥분한 이 남자 환자복 입은 채로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차 싶다. 이때부터 이 여자와 이 남자의 추격전의 시작이다. 남자는 90분 안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신이 마무리할 것을 하려고 한다. 이 여자는 어떻게든 이 남자 데려다 수술 시켜야 한다. 찰떡 같이 90분 후면 죽는다고 믿는 이 남자 허겁지겁 돌아다닌다. 6시 22분이면 죽을 거니까.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의사를 해고시키겠다고 나갔으니 이 여자도 불났다.
이 남자는 회사로 가서 여기 저기 전화해서 사람들을 파티에 초대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묻는다. 마지막 90분이 남았다면 무엇을 하는 게 현명하냐고. 친구들이 장난삼아 어떤 사람은 남은 시간 아내와 마지막 밤을 보내며 섹스를 하고 행복하게 죽었단다. 우리가 가진 건 가족뿐이니까 라며.
동생과도 매일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곤 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남자가 밖으로 급히 나가자 동생이 따라 나간다. 동생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2년간이나 끊고 지냈던 형수와 어떻게 그 시간에 화해를 할 수 있느냐며 형을 달랜다.
아내를 찾아가며 그는 고민한다. 마지막 아내와의 체위가 무엇이었지. 기억이 없다. 깃발이나 제대로 설지 그것도 걱정이다. 이 남자, 아내의 집으로 다짜고짜 들어간다. 때마침 그녀의 남자친구 프랭크가 그녀의 집에 있다. 이 남자 다짜고짜 아내에게 어디서 할 거냐며 들이댄다. 아내는 기가 막혀 말을 못한다. 2년 만에 와서 밑도 끝도 없이 섹스를 해야겠다니.
"섹스는 순식간에 죄책감을 무마해주는 마법의 도구가 아니에요."
그녀는 완강히 거부한다. 아내에게 화를 내고 쫓겨 난 이 남자, 이제는 아들과의 화해하려 시도를 한다. 하지만 아들은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그는 이번엔 친구들과의 파티를 연다, 그는 친구를 25명이나 초대한다. 그런데 막상 온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나마 이 남자와도 화해는커녕 싸움만 하고 나온다. 이래저래 전화를 하다 화가 난 이 남자는 휴대폰을 내동댕이쳐서 박살을 내고는 아무런 화해도 못하고 만다.
이제 최후의 수단으로 캠코더를 사러 간다. 시간은 자꾸 간다. 캠코더 가게 이 양반 여유가 넘친다. 게다가 말더듬이라 그가 원하는 걸 알려주려면 한참 더듬거려야 대답한다. 우여곡절 끝에 캠코더 구입하여 아들에게 한 마디 남긴다. ‘알고 보면 평범한 사람 하나도 없다. 사람은 크고 관대하지 않다. 작고 이기적이다. 후회 없는 사람은 바보거나 사이코패스다. 세상이 그에게 남겨준 건 분노뿐이다.’ 화를 내지 않고는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
세런, 앞으로 살 시간이 90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실수를 한 여의사, 큰일 났다 싶어 여기 저기 남자가 있을 곳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이 남자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남자를 데려다 수술을 해야 할 판인데 찾을 수 없다. 그녀는 헨리의 동생과 그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가는 곳 마다 뒷북이다. 수소문 끝에 두 사람은 이 남자가 드디어 캠코더 촬영을 마치고, 죽으러 강의 다리로 갔다는 걸 알아내고 거기까지 따라간다.
남자는 자살하려 한다. 죽기 전에 아들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 다리에서 있었던 추억이며, 아들과 포커놀이 하던 기억, 이제 부질없는 일이지만. 다급하게 여자가 만류한다. “다들 어려운 날이 있잖아요. 나에게 그런 날이 오늘이었어요. 내 고양이가 죽었다고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남자 물로 뛰어든다. 헤엄을 치며 떠내려가는 남자를 여자가 따라가서 건져 올린다.
그리곤 전환이다. 헨리가 물에 뛰어들자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인생을 짐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짧고 깨지기 쉽고 하나뿐인 거라고. 매시 매분 매초 소중한 것이 숨어 있다. 아름답고 놀라운 무언가가 물에 부딪쳐 죽기 직전에 이걸 깨달은 것에 헨리는 또 무척 화가 난다.
분노도 시간이 약이다. 마음을 다소 추스른 남자는 건너편에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본다.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돌아간다. 병원으로 수술 받으러 가기 전에 그는 아들과 먼저 화해를 하겠단다. 택시를 잡는다. 그런데 이 택시 알고 보니 아침에 시비가 붙었던 그 택시다. 건널목에서 빨리 달라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택시는 안 가고 버틴다. 노란불이라며. 그래서 다시 시비가 붙는다. 이참에 새런이 차를 빼앗아 몰고 줄행랑이다. 교차로에서 그만 신호위반 경찰차에 딱 걸리지만 그녀는 사정을 잘 말하고 다행히 통과다. 다시 경찰을 따돌리고 아들과 화해하고 병원으로 간다.
이미 예고한 죽음의 시간은 지난 7시 2분이다.
“남은 날을 알고 있다면 뭘 하고 싶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어요.”
“그럼 그 길을 찾아.”
헨리는 시계를 풀어 새런에게 건넨다.
“괜찮다면 눈 좀 붙이고 싶네.”
그는 새런의 어깨에 고개를 의지하며 고단한 하루의 쉼을 취한다.
헨리는 그 후 8일을 더 살았다. 아내와 함께 즐겁게 지내다 갔다. 동생과 햄버거 두 개를 사서 나눠 먹으며 옛 사이를 회복했다. 아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함께 춤을 주었다.
“너는 날 열 받게 했어도 네 인생을 살았다. 네가 자랑스럽다.”
그는 8일간 “죽음아 나가 뒈져”란 말 빼놓고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좋은 추억만 떠올렸다. 새런은 그와의 약속대로 새 고양이를 구입했고,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그래, 앵그리스트 엿 먹어라. "당신의 인생이 90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달라 보인다. 세상은 내가 보려는 대로 보인다. 그러니까 앵그리스트, 화내기 목록이나 불행목록, 복수목록과 같은 부정적인 리스트를 작성할 게 아니라 행복리스트를 작성해야겠다. 세상은 비록 내 밖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눈은 내 안에 있으니, 세상은 곧 내 마음이다.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당장 카르페디엠이다.
앵그리스트, 불행리스트, 나쁜 사람 리스트 너희들은 나가 뒈 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