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58- 애즈 롱 애즈 아이 라이브, 단 한 번만이라도 죽을 만큼 사랑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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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주는 것, 아낌없이 주는 것’ 노래 가사가 있다. 그러나 진정 사랑은 일방이 아니라 쌍방이다. 같은 것으로 주고받는 것은 아니지만 주고받거나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일방적인 사랑은 자칫 집착으로 이어지고, 도에 지나친 사랑이니까 받아준다면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연민이다. 건강한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하고, 서로 균형 잡힌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여정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선택을 잘했다 싶었으나 사귀거나 결혼을 하고나면 원했던 상대가 아니어서 후회할 수 있다. 그럴 때면 공교롭게도 그때서야 이상적인 상대가 나타난다. 때늦은 귀인처럼 찾아온다. 그런 일들이 부지기수이니 무엇을 선택할 때 또는 어떤 사람을 선택할 때, 더 좋은 무엇 또는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대상을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서로 사랑하면 이뤄야 정상이다. 서로 사랑해도 이룰 수 없다면 뭔가의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 사랑을 방해하는 반동인물이 존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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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 아난드, 그는 인도군의 폭탄 해체의 전설과 같은 존재다. 98회 폭탄 해체를 하는 동안 그는 안전복을 한 번도 입지 않았다. 맨손으로 폭탄을 해체하곤 했다. 마치 죽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위험을 무릅쓴다. 그의 말대로 그는 죽을 수 없는 남자다. 그는 폭탄해체를 잘 하는 방법을 간단하게 대답한다. 폭탄을 여자를 대하듯 한단다. 폭탄 해체할 때 그는 폭탄이 아니라 여자의 품속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연인 즉 한 여자, 미라와의 사랑 때문이란다. 서로 사랑하지만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었다. 이들의 사랑이 실패한 건 종교문제였다. 그는 미라를 사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미라의 신앙이 그에겐 걸림돌이다. 미라에겐 약혼자가 있다. 번듯한 남자다. 능력도 있다. 부모도 그들의 결혼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사랑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약혼은 했으나 그녀는 약혼자에게 왠지 끌리지 않는다. 때마침 한 남자가 나타나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녀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기라도 하는 듯한 남자다. 그 남자가 바로 사마르 아난드다.

 

그는 거리에서 유쾌하게 노래한다. 표정이 참 좋다. 그녀는 이 남자에게 기타와 인도 노래를 배운다. 그녀에겐 인도 노래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있는데, 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기 위해서다. 아버지의 생일에 선물로. 만나면 만날수록 왠지 모르게 그 남자에게 끌린다. 대신 이 남자는 미라에게서 영어를 제대로 배우기로 한다. 그는 그녀의 본능을 깨운다. 그저 가면을 쓴 듯이 적당히 맞추어 산다는 건 언젠가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그를 따라 다니며 그녀는 자신의 끼를 찾아낸다. 그는 그녀가 그저 요조숙녀가 아니라 자유분방하게 놀 줄 아는 여자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 그녀를 잘 이해하는 남자는 사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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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은 무르익지만 그녀는 약혼자를 떠날 수 없다. 종교적으로 벌을 받을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둘의 사랑에서 당사자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다고 약혼을 파기하기 어려워서도 아니다. 약혼을 파기하면 신에게서 벌을 받을까 두려운 신앙이 문제다.

 

사마르는 그녀가 미워하는 그녀 자신의 엄마에게 그녀를 데려다준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를 미워한다.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걸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의 권유 때문에 만난 그녀의 엄마는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본다. 막상 엄마를 만나보니 엄마는 무척 행복하다. 새 아빠도 사람이 참 좋고 유쾌하다. 마치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사라드 같다.

 

새 아빠를 보면서 그녀의 마음도 움직인다. 엄마를 이해할 만도 하다. 결혼이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걸 그녀는 깨닫는다. 엄마와 새 아빠의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본 그녀는 사마르와 함께할 생각을 한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인사를 나누던 그녀가 자동차 사고를 당할 위기, 이 남자가 그녀를 구해주면서 부상을 당한다. 그는 병원에 실려 간다. 그러자 그녀는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 그를 살려만 달라고 기도한다. 그를 살려만 주면 절대로 그 남자를 안 만나겠다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그 남자를 만나기 때문에 신에게서 벌을 받은 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그런 식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과 거래 아닌 거래를 한다. 무엇을 해주면 자신은 그런 것을 안 하겠다는 식이다. 그런 그녀의 신앙, 구체적으로는 예수가 그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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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그 사고에서 그는 살아남는다. 대신 그는 그녀를 잃어야 한다. 그녀는 그를 살려만 주면 그를 만나지 않겠다고 기도했으므로. 그녀는 예수님과 맹세를 했으니까. 그를 살려주면 자신은 그를 떠나겠다고 맹세했으니까. 반면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 신앙을 깰 수 없는 그는 예수에게 맹세한다. 그렇게 자신을 살아나게 해서 사랑을 앗아갔다면 이제는 자신은 죽기 위해 살겠다고. 그 일 때문에 그는 죽기 위해 살기로 했다. 때문에 그는 인도로 돌아가서 군대에 입대했다. 그때부터 폭탄해체를 하면서 늘 죽음 앞에서 머물게 되었다는 게 그의 사연이다.

 

그의 매력에 빠진 여자, 아키라는 그를 취재하기 위해 투입된 방송기자,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 그가 미라를 사랑했을 때의 미라의 나이가 21세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만난 방송기자 그녀의 나이가 21세로 똑같다. 그럼에도 오직 미라만을 생각하며 사는 그의 속엔 그녀를 받아들인 공간이 없다. 그럼에도 그를 취재하는 그녀의 발랄한 성격, 그리고 열정이 그와 맞아 떨어지면서 그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처음엔 그녀의 일은 목숨을 내놓고 폭탄해체를 하는 기록적인 그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의 사연을 알고 나서 그녀는 취재 방향을 그의 사랑으로 틀었다. 그의 사연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그녀는 점차 그 남자, 자신보다 아주 한참 연상의 남자지만 그의 매력을 느끼고 그를 끔찍이 사랑한다.

 

그녀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는 방송에 출연하기로 한다. 그는 방송출연을 위해 런던에 온다. 그런데 그가 그녀와 만나려는 순간 그녀가 자동차 사고를 당할 순간, 이 남자가 그녀를 구하려 달려든다. 덕분에 그녀는 무사하지만 그는 부상으로 만신창이다. 그럼에도 이 남자, 전에 사귄 미라와의 사고에서도 살아났듯이 쉽게 죽지 않는다. 끈질긴 생명으로 그는 회복에 성공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최근의 기억을 전혀 못한다. 이전의 기억, 미라와의 기억만 떠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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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여자 아키라는 그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미라를 수소문한다. 아주 어렵게 미라를 찾아낸 아키라는 미라가 다른 남자와 이미 결혼한 걸 알고 적이 안심한다. 다행히 그는 미라를 만나면서 서서히 전의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가 기억을 되찾아가면서 미라를 만나면 안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미라는 그를 피할 수밖에 없다. 결혼한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는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면 그가 죽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전에 예수 앞에 맹세하기를 그를 살려만 주면 자기가 떠난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실제로 알고 보니 그녀는 결혼한 게 아니다. 약혼했던 남자와는 그냥 친구로 지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아키라는 절망한다. 기구한 운명의 장난,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미라와 아난드의 사랑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미라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아키라에게 고백한다. 그러자 아키라는 "당신 없이 그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말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아키라의 말에서 드디어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걸, 그제야 신앙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그 맹세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살고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참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그녀는 깨닫는다. 그제야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되찾는다. 그녀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녀는 "신께서 나 없이는 당신이 살 수 없게 하신 거예요. 나와 함께여야만 살 수 있게 하신 거예요."라고 그에게 고백한다. 그는 말한다.

 

"사랑은 상처를 주지만 여전히 곁에 있어. 사랑은 진실로 기다리면 때가 올 때가 있으니까."

 

힘들지만, 오랜 기다림과 인내 끝에 진실한 사랑을 얻은 이들, 그런 면에선 참 다행이다. 이제까지의 상처와 아픔들은 씻고도 남을 테다. 평생을 살아도 진정한 사랑 한 번 못하고 떠나는 사람도 많으니까. 이들은 다행이요,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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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룬 이들,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자칫 완전히 잊힌 사랑이 되고 말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벌어지는 사건들임에도 그것이 신의 자주거나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 탓에 사랑은 돌고 돌아야 했다. 한 남자가, 한 여자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한 세월, 그 속엔 얼마나의 아픔이 있었던가. 얼마나 돌고 돌아 그 사랑을 이루었던가. 어쩌면 신과의 어리석은 거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나. 예수가 그런 일까지 일일이 간섭할까? 인간과 인간의 사랑, 소소한 일들, 그것은 신과의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삶의 전부는 사랑일 수 있다.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 때문에 죽는다. 그러니까 사랑하기란 어렵다. 제대로 사랑하기란 말이다. 그렇게 제대로 사랑하려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야 하니까 어렵고, 서로 때와 장소가 맞아야 하니까, 조건이 맞아야 하니까 어렵다.

 

사랑은 어렵다. 마치 폭탄을 해체하는 것처럼. 잘 진행되던 사랑도 자칫 뭔가의 방해를 받으면 깨어질 수 있다. 사람이 끼어들 수 있고, 물질이 끼어들 수 있고 정신적인 것이 끼어들 수도 있다. 사랑에는 이처럼 방해 요소들이 많다. 폭탄을 해체할 때 선 하나 잘못 건드리면 모든 것이 끝나고 마는 것처럼 사랑이란 아주 조심스럽다. 아주 작은 오해 하나로 끝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해가 필요하고, 이해가 안 되면 혹시 오해는 아닐까 기다려 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지, 그 모두가 신의 섭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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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맹목적인 신앙은 모든 걸 신의 섭리라는 아주 그럴 듯한 말로 치부한다. 그 결과 맹목적 신앙으로 자리 잡으면, 신과 거래를 한다. ‘이걸 해주세요. 그러면 나는 이걸 해드릴게요’하는 식이다. 신은 소소한 일들, 우리 삶 하나하나를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그건 인간의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다. 착한 일을 하니까 항상 축복을 받아 일이 잘되고, 나쁜 일을 하니까 당장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 얽힘, 얽힘 속의 일들, 그 일들의 변조요 불협화음 또는 협화음일 뿐이다. 다만 우리는 바른 선택,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 뿐이다. 무엇 때문에 신이 결과를 좌우한다기보다 신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가 비록 나ㅃ다 할지라도 신의 저주로 받아들이지는 말 일이다. 신은 모든 일을 하나하나 간섭하지 않는다. 나의 선택, 나의 사랑, 그건 나의 몫이다. 그 결과 또한 선택의 결과이자 나의 사랑의 결과일 뿐이다. 신을 믿되 신을 거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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