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1- 신데렐라 맨, 가난한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준 진정한 영웅
세상을 보는 건 나의 눈이지만, 세상을 읽는 건 나의 마음의 모습이다. 지금의 내 마음이 어떠하냐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눈이다. 슬픔을 머금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칙칙하다. 다른 사람에겐 맑고 밝을지라도. 반대로 희망으로 부푼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나를 위해 마련된 낙원에 버금간다. 영화 역시 그렇다. 같은 영화라도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봤느냐에 따라 달리 받아들인다.
제법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인상에 남은 영화 한 편 <신데렐라 맨>이다. 참 열심히 살다가 본의 아니가 백수생활을 할 때 보아서였을 것이다. 영화와 나의 상황이 유사한 탓이었을 게다. 스스로를 '헝그리 복서'라 칭하며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한 전설적 복서 짐 브래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그의 진실한 이야기가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영화도 울고 나도 울었으니까.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고, 상실하게 내 할 일을 하며 살았는데도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한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 문제일 수도 있다. 최고지도자의 리더십 문제도 분명 기인할 것이다. 하루 끼니를 잇기가 어려운 이들도 많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들, 호화로이 살고 있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요즘 주변에 힘겨워 하는 친구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누구의 잘못이건 간에.
미국의 최고 암흑기였던 경제 대공황 시기, 연전연승의 신화적인 복싱선수였지만 잦은 부상으로 실력발휘를 못하는 짐 브래독, 잇단 패배와 부상으로 복싱을 포기한다. 그러고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그는 각종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결국 오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에 나서지만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로 관중들에게 실망을 준다. 때문에 브래독은 선수 자격을 박탈당해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이제 그를 기다리는 건 쓸 수 없는 오른 손과 지독한 가난뿐이다. 전기도 끊기고 불도 없는 집, 아내와 아이들은 빈집의 울타리 목재를 뜯어내다가 난롯불을 피워서 꽁꽁 언 몸을 녹인다. 그러면서도 가족은 웃는다. 그 모습이 얄미울 만큼 슬프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절망적 가난에서도 아이에게는 정직을 가르친다.
아들이 가게에서 무언가를 훔쳐오자, 브래독은 아이를 다그쳐 그 물건을 어디에서 훔쳐왔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아이를 앞장세우고 주인을 찾아 그 주인에게 돌려준다. 혼부터 내 주어야 직성이 풀릴 테지만 그는 묵묵히 아이에게 정직을 가르친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하는 처지에 던져진 가족, 아이는 그걸 두려워 하지만 아버지는 아이에게 "절대로 다른 곳에 보내지 않으마!" 라고 약속한다.
그는 부상당한 손을 감추기 위해 하얗게 드러난 콘크리트에 구두약을 바른다. 그러고는 일당 잡부들이 운집한 곳에서 선택을 기다린다. 선택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담당자를 향해 얼굴을 내민다. 하루 10명 적으면 5명만 선택 받는 일당잡부 자리도 그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다 하루 선착장 하역 잡부로 선택 받으면 그는 한 손으로 일한다. 그나마 그에게 인정을 베푸는 동료의 도움으로 간신히 일한다. 하루 힘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시간을 맞는다. 가족은 기도한다, "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 이 대목에서 브래독은 말을 않는다. 아내의 의아한 눈길..." 난 감사할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러고도 하루하루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감사 기도할 여유마저 사라진다. 지독한 추위, 병으로 쓰러지는 아이들, 짐의 부인은 아이들을 결국 다른 집에 보낸다. 짐은 자존심이고 뭐고 팽개치고 아이들을 데려오려 한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데려오고, 밀린 공과금들을 내기 위해 그는 빈민구제센터에 간다. 그는 빈민구제금을 신청하여 얼마간 받는다. 그래도 모자란다. 그는 이번엔 복싱클럽으로 간다. 거기에서 굴욕적인 모금활동을 하여 간신히 목표액을 채운다.
어쩌다 부두노동자 일자리를 얻어 그 일을 하면서 간신히 복싱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렇다고 그가 복싱을 하는 건 챔피언의 꿈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스파링 상대 또는 맞아주는 역할이다. 왕년의 유명복서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하여 링에 선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전 매니저 조 굴드는 짐에게 링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지더라도 거금 ‘250 달러’를 받을 수 있는 경기다. 그는 뛸 듯이 기쁘다. 그런데 이 상대는 헤비급 랭킹 3위, 다음번 챔피언 도전자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훈련 한 번 제대로 못한 그에겐 완전히 무모한 도전이다. 상대는 워낙 강펀치의 소유자라 누구나 꺼리기 때문에 그에게 찾아온 기회인지라 그는 경기에 나선다. 오직 돈을 위해서다.
85차례의 경기에서 한 번도 케이오 패한 적이 없는 근성 하나로 그는 링 위에 선다. 왕년에 인기 복서, 지금은 그냥 밥벌이를 위해 링 위에 선다. 잘못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시합, 그는 링 위에 선다. 가족을 위해. 그런데 기적이다. 그가 승리한다. 혈투 끝에 오히려 강펀치의 소유자를 무너뜨리고 그가 승리한 것이다. 그것도 KO로 이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일궈낸 그는 가족을 위해 다시 권투를 시작한다. 복싱계에서 버림받았던 그에게,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질 거라 믿었던 그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 왜소한 체구, 끊임없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후 연승행진을 이어간다.
이제 이미 2명 이상의 상대를 사망 직전까지 몰아간 악랄한 챔피언 맥스 베어와의 결전을 눈앞에 둔 브래독,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경기를 위해 링에 오른다. 이제 브래독은 개인이 아니다. 부두 노동자들의 희망이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영웅이다. 그들의 대리만족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시합은 목숨을 건 시합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반칙을 마다 않는 잔인한 복서, 그 놈은 복서 두 명을 이미 죽음으로 몰고 갔고,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놈은 브래독의 아내에게 ‘곧 과부가 되겠다’고 조롱한다. 그러면 자신이 거두어 주겠다며 모욕을 준다. 드디어 시합이다. 예상 외로 많은 수많은 관객, 부두 노동자들,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애써 번 돈을 투자하여 그의 시합을 보러 온 것이다. 시합에 참석을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웅이 싸우는 장면을 보려고, 텔레비전 앞에 모인다. 브래독이 상대에게 맞으면 자신이 맞는 듯 안타까워하고, 브래독이 상대를 때리면 그들은 한마음 되어 환호한다. 링 아래서, 거리에서, 교회에서 가난한 이들이 모여 그를 응원한다. 그의 승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전문가들은 브래독이 1회를 넘기지 못하고 심한 부상을 당하거나 죽음을 맞을 것으로 봤는데, 그는 잘 버틴다. 사회일각에선 챔피언과의 시합은 취소해야 한다고 할 만큼 무지막지한 챔피언, 그에게 맞서 브래독은 목숨을 걸고 싸운다. 용케 버텨 15라운드까지 그는 빛나는 투지와 놀라운 기량으로 챔피언을 압도한다. 그리고 끝내 승리한다. 가난한 이들의 승리, 부두 노동자들, 일용노동자들의 희망의 승리다. 그 한 사람의 투혼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었다.
영화가 끝난다. 울컥한다. 그는 나를 대신하여 싸운 것 같다. 절망과 싸워 희망을 얻은 그의 투지, 일을 잃고 가난으로 고심하는 이들에게 그는 희망을 주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다시 일어선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고 싶은 이 시대를 아프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한 한 가장의 불굴의 투지,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대신하여 목숨을 내 걸고 싸우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투사의 모습을 보았다. 영화 < 신데렐라 맨>은 이런 좀 비관적이긴 하지만 현실과 잘 매치된다. 이 영화에는 가족의 소중함과 인간의지, 인간관계의 면면이 잘 드러난다. 온 가족이 함께 꼭 보아야할 영화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이 영화는 눈물 나는 감동을 줄 뿐 아니라 시종일관 긴장감을 주는 감동, 그 자체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도 실화만큼은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눈물을 준다.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인생 밑바닥에 처박혀 있던 한 사람의 분투기라고 하기엔 부족한 뭔가가 울컥하게 만든다. 절망의 늪에서 나오는 무서운 집념, 가족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말없는 투지에서 엿볼 수 있는 가족사랑, 가족의 의미와 내가 가족을 위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너무도 아프게 보여준다. 이런 남편만 있다면, 이런 아내만 있다면 참 세상 살만할 것 같다. 복싱선수 짐 브래독이 하얀 입김이 절로 나오는 단칸방에서 살게 되면서 겪는 고통, 그 고통을 벗어나오는 그의 노력은 ‘신데렐라 맨’이라는 별명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다 우연이 만들어준 행운이 아니라 불굴의 노력이다. 그의 가족사랑, 가족을 위한 자기 역할에 자신을 과감히 던진 무조건적인 사랑이 우리를 감동하게 만들고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다.
온 가족이 함께 보아야할 영화이다. 하지만 울고 있는 나를 보여주기 싫으면 혼자 몰래 이 영화를 보면서 훌쩍 거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무리 힘겨운 일상들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한다면, 우리 자신도 <신데렐라 맨>처럼 자신의 자존심뿐 아니라 그 이상을 던져서라도, 일어서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나 자신이 신데렐라가 되어야 한다. 신데렐라는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의 대명사가 아니라, 주어진 일을 눈물을 머금고, 최선을 다하되, 정직하게 묵묵히 제 일하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행운이라는 대명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