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2- 프랑스 중위의 여자, 당신을 본 순간부터 길을 잃는다
사랑은 우연일까, 인연일까? 한 번 준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 우선할 수 있을까? 끌리는 사랑과 빨려들게 만드는 사랑 중 어느 사랑이 더 강할까? 어느 사랑이든 사랑은 명확하게 딱 정의내릴 수 없다. 그만큼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주 복잡 미묘하다. 다름 아닌 사람의 사랑이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의 수만큼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 만큼 좋은 문학의 재료가, 영화의 재료가 더 없을 터이다.
1867년 영국의 작은 해변 마을 ‘라임’. 까만 망토를 뒤지어 쓴 여자가 바닷가를 걷는다. 날씨는 흐리고 안개가 자욱하고 바람은 바닷가를 휘몰아친다. 파도가 당장이라도 넘쳐날 듯싶은 위험한 방파제로 한 여자가 걸어간다. 뭔가 범상치 않은 여자, 날씨와 상황을 닮은 우중충하달까 회색이랄까 검은 외투를 두른, 어쩌면 마녀와 같은 모습의 여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제 장면이 바뀌어 어네스티나의 집이다. 어네스티나는 마음이 설렌다. 런던 출신의 아마추어 고생물학자 찰스 스미스의 방문 때문이다. 그 방문으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상당한 재산에다 권력을 갖고 있다. 그걸로 따지면 찰스는 복이 터진 것이다. 아름답고 순수한 여자, 거기다 막강한 배경, 우연한 행운이 그에게 온다.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사랑, 그가 약혼녀와 마침 바닷가를 산책한다.
그런데 그 부둣가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 여인이 위험스럽게 방파제 끝에 서 있다. 찰스는 약혼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혹 그 미묘한 여인이 위험할까 싶어 그녀를 데려오려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여전히 폭풍은 세차게 몰아치는 방파제로 위험을 무릅쓰고 미묘한 여인에게로 향한다. 미묘한 여인, 그녀의 이름은 사라 우드러프,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고 부르며 그녀를 경멸한다. 이상하게도 찰스는 사라의 강렬한 첫인상에 마음이 끌린다.
그녀를 구한 거라면 구한 것이고, 그녀를 방파제에서 만난 후부터 그는 그녀에게 이상하게 끌린다. 그 후로 그는 그녀를 몰래 만난다. 그녀는 그를 피하는 듯 피하지 않고, 가까이 올 듯 멀리할 듯 묘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사라는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찰스의 감정을 눈치 챈다. 사라는 처음에는 약혼녀가 있는 찰스를 밀어낸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를 해변 으슥한 곳으로 불러낸다. 아무도 없는 해변 그녀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털어놓는다.
사라의 이야기인 즉, 그녀는 프랑스 중위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녀는 나중에 알고 보니 중위의 쾌락의 대상, 그저 즐기기 위한 여인 중 한 명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다음부터 그녀는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 오명을 쓰고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미묘한 여인의 고백을 받은 후에도 그녀에게 마음이 동한 찰스는 갈등한다. 약혼녀인 부유한 사업가의 외동딸 어네스티나 프리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통째로 뒤흔들어놓는 미묘한 매력의 사라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라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 찰스는 사라를 돕기 위해 그녀를 런던으로 보낸다.
런던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서로는 사랑을 확인한다. 찰스는 그녀가 숫처녀였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실제로는 프랑스 중위에게 순결을 바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물론 프랑스 중위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그를 보고 싶어 그녀가 그를 만나러 갔을 때, 프랑스 중위는 다른 여자와 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거리의 여자였을 것, 실망한 그녀는 그 자리를 떴고, 그 후로는 남자들과 담을 쌓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일로,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살아왔다. 남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그것은 관계없었다. 그녀에게 바람이 있다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방을 갖는 거였다. 그녀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온 이유였다.
그렇게 그녀는 지금의 방을, 자신이 원하는 방을, 조건에 맞는, 그녀가 꿈꾸었던 방을 쓸 수는 있었으나, 그 방을 마음대로 소유할 수 없다. 때문에 그녀는 늘 바닷가를 찾는다. 방파제를 찾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산으로 오른다. 그러면 그때마다 찰스는 남몰래 그녀를 따라다닌다.
그녀와의 사랑, 그는 그녀를 라임에서 탈출시켜 런던 길목으로 그녀를 가게 한다. 공간 세 곳, 라임 그리고 중간 역, 런던 그 공간의 중간에서 그들의 사랑은 멈춘다. 찰스는 런던까지 그녀를 데려가야 할 것이지만 그녀는 그 중간에 머문다. 그곳은 그녀의 일이 있는 곳이고, 런던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공간이다.
그녀와의 사랑을 확인한 찰스, 라임으로 돌아온 찰스는 약혼녀와 파혼한 후 다시 사라에게 돌아간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는 불명예를 안아야 한다. 또한 런던에서 신사의 자격을 박탈당해야 한다.
당연히 약혼녀의 아버지는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약혼녀의 아버지는 중위의 여자와 찰스의 관계를 재판정에서 공표한다. 그럼에도 사랑에 빠진 찰스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그녀에게 걸고 그녀를 다시 찾아간다. 그런데 사라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다.
그로부터 3년 후 사라의 행방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알고 보니 미술가로 성공해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 사라가 자신이 있는 곳을 일부러 알려온 것이다. 그녀는 진정 원했던 바다가 훤히 보이는 작업실을 소유하여, 이제까지의 바람을 이룬 것이다. 그녀는 이제 자유로운 영혼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진정 사랑한 것은 찰스가 아니었다. 그녀가 사랑한 건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찰스를 마음에 두었다면, 잠시 마음의 억압에서 도피하려는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녀의 사랑은 그녀의 일이었다. 그림이었다. 찰스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이용한 사라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하지만 자신을 아직도 사랑한다면 용서해 달라는 사라의 간청에 그녀를 용서한다.
"난 하루라도 당신의 사랑을 얻었으니 감내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던 그녀가 이제는 "내 삶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어요."라며 그를 떠난다.
모든 조건보다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마력, 사랑엔 마력이 있다. 그 힘은 모든 것을 능가한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을 미치도록 몰입하게 만들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만큼 사랑은 강하다. 그 사랑은 뭐라고 정의내리기 어렵다. 아주 복잡다기하여 감을 잡을 수 없다. 인간은 그렇게 사랑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곤충 또는 조류는 단순 명확하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든, 수컷이 암컷을 선택하든 각 종은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이 하나다. 끌어들이는 힘이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각자 취향이 다르다. 선택의 기준이 아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분위기, 인상, 부, 권력, 명예, 무엇에 관한 인기, 지적인 능력, 목소리, 매너, 그 중에 선호하는 매력은 아주 다양하다. 인간 각자 모두가 다르다고 할 만큼, 선호하는 기준도, 조건도, 상황도, 이유도 각기 다른 인간,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에 끌리고, 사랑에 지배당한다. 그 사랑으로 울고 웃는다.
사람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있고 자기 삶으로의 사랑으로 향하는 사랑도 있다. 사라의 모든 열정은 자기의 일로 향한다. 그에게 그리운 건 사람이 아니고 자기 예술을 펼치는 일이다. 그것이 그녀의 전부다. 사람에겐 그 무엇에 대한 사랑이 꼭 필요하다. 무엇이든 몰입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할 터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늘 뭔가 마음에 불안이나 우울을 안고 살아야 할 테니까. 때문에 사랑은 강하다. 그 무엇에 대한 사랑이든, 그 사랑을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우울의 강으로 변하고 우울한 바다로 변한다. 그 강을 건너려면, 맑음으로 건너려면 집중할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할 터다.
그렇게 사랑을 얻으면 갠 날씨처럼 맑게 바다도 열리고,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사랑은 날씨를 우중충하게도 하고 맑게도 한다. 위험한 곳에 있게도 하고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위험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한 사랑,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모든 것을 앗아가게도 하고, 분노하게도 만드는 사랑,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사랑의 모험을 즐긴다. 안개 자욱한 부둣가처럼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술 같은 사랑의 모험을 감히 나서고 싶은 이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