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67-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왜 그들은 해적이 되더냐?
도둑, 아니 도적의 무리가 백성을 보호한다는 국가란 권력보다 예의가 있다? 역적질은 예의인가? 그래, 정당한 방법이 아닌 뒤통수치기로 나라를 빼앗은 사람을, 아니 제 주인을 내치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을 역적이라고 한다.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이다.
이성계, 그는 고려의 신하지만 고려를 넘어 권력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그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 세운 게 조선이다. 그러나 그는 옥쇄를 차지 못한다. 대국이든 부국이든 부모 모시듯 하는 명나라서 옥쇄를 받아와야 한다. 그런데 받아 오는 이동과정에서 도난당한다. 그 놈의 옥쇄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다. 아니 국력을 마구 낭비한다. 격식을 차리려고 나랏돈을 마구 써댄다. 사람을 희생 시킨다. 백성을 못살게 군다.
그러니 어부로 잘 살던 이들이 뭐가 되간? 해적이 되지, 농부로 잘 살던 이들이 뭐가 되간? 산적이 되지, 정직하게 관리로 살던 이들은 뭐가 되간? 산적이 되지, 이러저러한 사연을 안은 다양한 계층의 백성이 도둑이 되거나 좀 더 격을 높여 산적이 되거나 한다. 격과는 관계없이 무리를 이뤄 산에 모이면 산적이요 바다에 모이면 해적이다. 이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는 도둑이라치자.
왜 이들만 도적인가, 나라를 훔친 놈들도 도적이지. 그러고 보니 온 나라에 도적 무리들이 판친다. 나라를 도적질한 역적, 살기 어려워 바닷가를 버리고 바다로 간 해적, 관리들의 등살에 못 이겨 산으로 간 산적, 관리로 살다 그 관리들의 부당함에 눈을 떠 도적, 산적으로 진급하는 산적. 그리고 권력을 잡은 역적, 그러고 보니 나라에 아군은 없고 적만 있네.
“역적은 예의냐?”묻는 말에 “칼에는 예의가 없다”하는 이가 있고, “칼에도 예의가 있다” 하는 이도 있을 터다. 같은 마당에 있어도 악한 놈이 있고, 정의로운 이가 있을 터다.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에도 정의로운 권력이 있고, 악행을 일삼는 역적이 있는 것이다. 그래 권력엔 시대를 넘어 언제든 나라를 강탈하는 역적과 정의로운 충신이 있다. 겉으로 백성 위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입에 발린 근사한 말로 나라 사랑을 표방하지만 그놈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그 속내를 들여다봐야지. 그러니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놈들을 믿을 수 없다. 그 무리들 중에 나라를 말아먹는 놈들이 왜 없겠어. 모두 보여주기다. 정치는 잘 알고 보면 누가 얼마나 속을 감추고 쇼를 잘하나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들보다는 도적들이 훨씬 낫다. 양아치들이야 원칙 없이 그저 약자를 내치지만 그래도 조폭쯤 되면 약한 백성은 안 건드린다. 오히려 좀 도움을 준다. 물론 그런 무리들 속에서도 못 된 놈이 있긴 있어. 양아치만도 못한 놈 말이지. 권력에도 양아치 같은 놈이 있고. 그러니까 어떤 마당이라고 구분할 것 없어. 오히려 도적 무리 속에는 사람다운 사람 있지만, 고상한 척하는 권력 속에는 사람 같지 않은 놈들이 더 많으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다 백성들 빼고는 다 도적떼여. 허가 받은 도적이지.
해적질 하는 놈 중에 그 우두머리 소마를 보라고, 그놈은 인간도 아냐. 해적질해서 얻은 거 혼자 다 차지하려 하잖아, 거기에다 권력하고 결탁하더라. 그걸 정당화하려고 부하들을 마음대로 해치고. 그러다 뒈지고 말지. 그런 놈한테 자비는 무슨 자비라고. 그놈 왈 "살려두면 인연이 되고 인연이 되면 우환이 되느니라." 말은 그럴 듯하게 바른 말을 한다만. 이놈 처벌해야지. 이놈을 죽인다고 바다에 처박는데, 이놈 봐라 살아남잖아. 그런 놈한테 우리 착한 여월 두목 "바다가 차다, 이불 덮어 드려라"라면서 이불 한 채 바다에 던지더라. 물에 빠져 뒈질 놈이 그 이불이 필요할 리 없지만 그 마음 씀씀이는 역적보다 훨씬 낫지. 그러면 그렇지. 쉽게 뒈질 놈이 아니다. 놈은 살아나서 나중에 악연으로 다시 만나는 게 인생사새옹지마인지라. 그게 영화지 뭐. 말이 안 되는 게 되는 거니까.
이리 보고 저리보아도 세상이 난장판이다. 해적이 올바른 권력이요. 권력은 생도둑이다. 이 지경이니, 백성은 무엇을 믿고 산다냐? 나라님을 믿기보다 도적을 믿는 게 나을까? 백성이 먹고 사는 무대는 세상, 바다는 그런 세상이다. 먹고 살 것들이 바다에 있다. "그대를 먹여 살리는 건 나라가 아니라 바다요, 바다의 주인은 우리다." 해적의 신조다. 바다, 세상이란 바다, 그 바다에는 먹고 살 양식들이 있지만, 그 바다에선 어떤 괴물이 나올지 알 수 없기도 하다. 바다는 엄청나게 넓고 크기 때문에 별게 다 있기도 하다.
그 바다에 엄청나게 큰 고래가 산다. 아하, 그 고래 어르신이 옥쇄를 먹었구나. 하긴 고래가 나라님보다 훨씬 정의롭긴 하다. 고래를 모셔다 왕으로 삼음 딱 좋겠다. 그래도 인간세상이니 고래한테서 옥쇄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모여든다. 권력의 상징인 옥쇄를 찾으러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고, 얼마나 많은 흉계가 숨어 있어야 하느냐? 바다에 사는 괴물, 괴물 아닌 괴물 같은 괴물 아닌 고래, 그 고래에게도 모정이 있더라. 고래는 기억한다. 인간의 은혜를. 그러니 우리는 고래만도 못한 종자들이다.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털 없는 동물이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 다양하다지만 얼핏 보면 도둑들만 있다만, 우리 백성 속의 인간 군상과 같다. 사기 치는 놈, 비열한 놈, 뒤통수치는 놈, 변절하는 놈, 별의 별놈 다 있다. 그럼에도 정도를 지키는 놈도 있지. 어느 무리에 들든 인간사는 다 같은 것이여.
관군들 보라지. "관군들이야 뻔하지 해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 백성들, "세상에 순진한 것들은 그래서 권력의 제물이 되는 법". 권력과 백성의 불합리한 관계. 재주는 백성이 높고, 호사는 권력이 누리는 것, 어느 시대나 백성만 등골 빠진다. 말로는 서로 백성편이다만, 알고 보면 그놈이나 그놈 다 똑같다. 그 자리에서 내려와 똥 치울 때가 돼야 진가를 아는 거다. 사기꾼 중에 가장 나쁜 사기꾼이다.
용기, "두려움이 크기를 만든다. 처음엔 집채 만해 보이더니 잡고 보니 황소 두 마리밖에 안 된다." 그게 어제 오늘 일이냐고,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허울만 듣기 좋은 백성이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임 당하는 무지렁이란 건 시대가 변해도 안 변한다는 거지. 백성과 권력, 서러우면 권력을 잡으라고. 역적이 되라는 거지. 아님 해적이 되거나 산적이라도 되어야 살지, 그래야 역적들이 함부로 못하는겨.
"우리에게 진정 지킬 나라가 있었나? 임금과 귀족은 왜적이 쳐들어오면 제일 먼저 내빼고, 어린이나 궁녀를 환관으로 바치고,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 짜 조공으로 바치고, 그런 나라를 지키느니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네."
"동물인 고래도 자기 자식을 살리느라 목숨을 바치듯이 산적의 길도 두 가지다. 돈을 쫓거나 돈을 벌까, 세상을 구하지 못했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한 배에 탄 순간 한 운명이라는 것을."
산적보다 못한 권력, 해적보다 못한 권력, 그저 그 권력 유지하려고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도적 아닌 도적 같은 도적 아닌 권력, 그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괴물이 출몰하는 바다 아니겠느냐. 그들 속에 엄청난 괴물들이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오호 통재라, 백성들이여, 순진하면 권력의 제물이 되는 법이라 했소, 영악해져야 하오. 겉으로는 다 나라 위한다오. 모두 백성 위한다 하오. 잘 알고 보면, 아니 나중에 알고 나면 그놈이나 고놈이나 거기가 거기요. 그래도 진실한 인간애가 있는 도적이나 산적의 세계가 낫소. 진실한 척, 백성 위하는 척, 척하는 게 역적들이오. 그러니 사탕발림 말에 속아 그들에게 필요한 옥새 찾으려 애쓰지 말고, 그건 고래가 품고 살라고 하오. 괜한 착한 고래 잡지 말고.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새로운 창작이다. 말은 안 되지만 웃으라고 만든 영화다. 그러니까 웃어주자. 그 웃음 속에 메시지가 담겨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