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70-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참 착한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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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프랑스 영화다. 프랑스 영화는 재미보다는 잔잔하다. 또한 인간애가 담겨 있다.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어서 약간 모호한 의미를 담고 있다가 그 의미를 발견하고 나면 아하 하는 즐거움을 주거나, 명료한 영화라면 과장하지 않고 잔잔하게 인간적인 진실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처럼 잔잔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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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란 고아에 다름없는 카밀은 신경성 무식욕증으로 밥을 거의 먹지 않는 그녀는 건물청소부로 생계를 잇는다. 그녀는 화가 지망생이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건물에 사는 필리베르는 박물관에서 엽서 파는 일을 한다. 그들과 같은 집에는 또 한 사람이 있는데, 소심하고 감성적인 프랭크다. 요리사인 그는 낮에는 잠만 자고 툭하면 여자를 데려와 논다.

 

오가며 자주 마주치는 카밀과 필리베르는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어느 날 감기에 걸려 심하게 앓는 카밀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필리베르는 카밀을 극진히 간호한다. 그러나 정작 카밀의 눈에는 필리베르의 집에서 더부살이 하는 프랭크를 매력적인 남자로 바라본다.

 

이들 모두 나름의 콤플렉스를 안고 산다.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산다. 누구보다 인간애가 강한 필리베르는 아무런 사심 없이 카밀을 데려다가 몸을 손수 씻어주며 간호한다. 그렇게 처녀의 몸을 씻어주면서도 아무런 욕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만큼 순진무구한 청년이다. 그에겐 사귀는 여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말을 더듬는 데다 용기가 없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조차 못한다. 또한 꿈이 있으나 말을 더듬어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카밀을 보살피며 대신 말더듬이 교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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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에서 더부살이 하는 프랭크는 필리베르의 친구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다. 프랭크 역시 상처가 있다. 그에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그에겐 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할머니만 있다. 그 할머니를 그는 부양해야 한다. 해서 할머니의 집을 버려두고 할머니를 요양소에 보내고 생활한다. 그런 불만스러운 마음 때문에 그의 도피처는 여자들과의 정사일 것이다. 그러면서 매주 한 번은 할머니를 찾는다.

 

프랭크는 필리베르와 달리 난잡한 생활을 한다. 여자를 불러들여 정사를 나누기 일쑤다. 때문에 프랭크는 카밀까지 들어와 한 집에 사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 그는 카밀까지 한 집에서 사는 것에 불만은 있지만 인간애는 있다. 세 사람 모두 인간적인 사람들이다. 이렇게 셋이 한 집에 살면서 사랑 받지 못하며 살아온 카밀은 프랭크에 은근히 관심을 갖는다. 그의 난잡한 생활의 저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끌린다. 그럴수록 셋은 서로 부대낌을 느낀다. 건강을 되찾은 그녀는 그 집을 나가기로 한다. 그제야 프랭크가 그녀에게 나가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 집에 머문다. 두 사람은 정을 나누지만 이상하게 거리를 느낀다.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그러다 카밀은 프랭크와 함께 프랭크의 할머니를 만난다. 카밀은 왠지 프랭크의 할머니를 보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녀는 할머니를 집으로 모실 것을 제안한다. 이제 착한 세 사람은 모두 마음을 모아 프랭크의 할머니를 모셔온다. 넷이 한 집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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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은 필리베르가 자신의 몸을 씻어주었듯이 할머니의 몸을 씻겨주며 지극정성을 다한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때로 냉정하고, 때로 격정적이고, 때로 신경질적이지만, 할머니를 대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애로 가득 차 있다. 그 점이 동병상련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프랭크는 그녀를 마음에 두고 그녀와 함께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까지다. 그녀는 어느 정도까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허락하지만 그 이상의 마음을 주는 것은 망설인다.

 

할머니를 원래 집으로 모신 얼마 후 할머니는 편안하게 숨을 거둔다. 그 임종을 그녀가 지켜주었다. 그녀는 할머니와 보내면서 할머니의 모습들, 편안한 임종의 모습까지 스케치했다. 또한 프랭크의 벗은 몸이며, 그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림에 담았다.

 

이제 그녀가 그릴 모습은 없다. 할머니의 장례 후 프랭크는 떠나기로 한다. 그녀는 프랭크가 떠나는 것이 싫다. 그를 만류하지만 차마 마음에 담은 말을 하지 못한다. 프랭크가 떠나는 날, 그녀는 슬프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던 그녀, 그녀는 몸으로는 사랑해도 마음을 내어주지는 못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신경증을 그림을 그리며 참아냈는데, 그러다 보니 그녀가 만나는 대상들, 사랑이란 이름으로 접근하는 대상들은 그저 예술의 대상일 뿐이었는데, 프랭크에 대한 감정은 남다르다.

 

떠나려는 프랭크가 수속절차를 밟고 다시 돌아온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기에. 그녀가 용기를 내어 프랭크에게 "두려웠어요. 난 당신이 두렵고 내가 두렵고 모든 게 두려웠어요. 난 당신을 잃을까 두려웠어요. 당신이 떠나는 게 싫어요."라고 말한다. 용기 있는 그녀의 한 마디로 그녀와 프랭크는 함께하는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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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 필리베르 역시 말더듬이를 극복하고 무대에 선다. 무대에서 함께 연기하는 여자 친구에게 그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프러포즈한다.

 

요리사였으나, 주인이 가게를 물려준다 했으나 망설였던 프랭크는 그녀의 사랑의 용기를 얻어 식당을 경영할 용기를 낸다. 두 사람은 식당을 경영하며 그녀의 그림 솜씨를 손님 접대에 이용하며 성공한다. 어느 정도 식당 운영이 안정되자 그녀는 그에게 "아기를 갖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가족 해체로 상처를 입은 그들, 이들 모두가 치유를 얻어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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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면서도 인간에의 울림을 주는 영화다.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진심을 담아 서로 돕는 이들의 이야기,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가 긴 여운을 남겨준다. 세상에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이러 저러한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산다. 단지 그 아픔을 없는 듯 감추고 살 뿐이디. 함께 있어도, 자주 만나도 서로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 마음을 털어내지 못할 뿐이다. 어떤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 마음에 남아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는 이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살 뿐이다.

 

그러다 어느 계기에 서로는 속내를 엿보고 서로의 진실을 알아낸다. 서로에게 익숙한, 길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진실을 꺼낼 수 있는 마음 열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서로 진실을 알고 나면 세상엔 그리 나쁜 사람은 많지 않다. 상처가 곪고 곪아 인간애를, 진실을 덮고 있어서 세상을 향한 고름이 그를 악하게, 폭력적으로 바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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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찾기, 그건 인간과 인간이 가까워지는 것밖에 없다. 인간이 어떻게든 다가가서 그 안에 잠든, 짐승 속에 잠든 선한 인간만 깨우는 것밖에 없다. 세상엔 혼자뿐이 아니라 이런 저런 모양으로 상처를 입었으나 삭이며 사는 존재들, 웃고는 있으나 슬픔을 안고 사는 존재들, 그 모두를 어떤 형태로든 숨기고 살 뿐, 모두 고마고마한 존재들임을 깨닫고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살면 인간다운 인간들이 보다 평화롭게 살 수 있을 터이다.

 

각기 다른 고민으로 사람들이 한 건물에 살고 있었네. 그들이 서로 조심스럽게 한 집에 살기로 했네.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엿보았네. 서서히 서로 마음을 열었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었네. 이런 저런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가슴에 묻고 숨겼을 뿐이었네. 세상은 더불어 살아야 행복함을 깨달았네. 그게 인간들의 세상이었네. 하나이든 둘이든 셋이든 한 집에 살아도 좋은 인간다움의 세상, 우리가 꿈꿀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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