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77- 안녕 헤이즐, 보슬비처럼 촉촉하게 젖어드는 슬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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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이 함께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사랑과 인생, 원래 아름다운 건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니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단어를 품에 안으니까 사랑이 아름답고 인생이 아름답다. 슬플 생의 마무리도 아름답디. 우리가 어떻게 살며 사랑하며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인생의 마지막을 사는 이들은 나이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그만큼 사고가 깊어진다.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생이란, 사랑이란 그것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 그것이 슬플지, 아름다울지, 추할지, 달콤할지는.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달콤한 로맨스 영화나 소설처럼 멋진 사람들과 아름다운 교훈이 있으면서, 한 마디의 사고와 한 서절의 교훈으로 어려운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나도 노후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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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풋풋한 헤이즐,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아니 그보다 심각한 암환자다. 우울증은 암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죽어가기 때문에 생긴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시한부 생명을 사는 그녀는 오직 <커다란 아픔>이란 책만을 거듭 거듭 읽는다. 그녀는 그 책의 대목 중 "아픔은 느낄 필요가 있다."란 문장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그녀는 무엇보다 그 책의 결말을 궁금해 한다. 아니 그 소설이 끝나고 난 후의 결과가 궁금하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작가를 만나 그 이후의 결과를 듣고 싶은 게 그녀의 소원이다.

 

이는 자신이 떠난 후에 남겨질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신이 죽고 난 후 남아 있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일지, 그리고 사후의 자신은 어떨지 궁금하다. 잊혀 갈 자신이 두렵고, 기억을 잃어갈 자신이 두렵다. 그녀는 부모를 위해 한 일라곤 한 가지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가 원하니까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간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거기라도 가서 함께 고통을 나누면 우울한 감정을 다소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그녀를 그 모임에 가기를 권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애쓰는 부모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암으로 죽어가는 것보다 최악은 자식이 암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최악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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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세상에서 잊히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안고 사는 헤이즐, 헤이즐에겐 폐가 반쪽뿐이다.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한 사람, 명랑한 성격의 어거스터스다. 그런데 어거스터스, 일명 거스에겐 다리가 하나뿐이다. 이 모임에서 그녀는 아이작도 만난다. 그는 두 눈을 잃은 아이다. 아이작, 거스 그리고 헤이즐, 셋이 이 모임 지니재단에서 만난 것이다. 폐가 반쪽밖에 없는 헤이즐은 늘 산소통을 짐처럼 끌고, 생명 줄처럼 호흡기를 차고 다녀야 한다. 그만큼 불편하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렇게 외출을 하는 것은 집에 틀어박혀 리얼리티 쇼나 보며 하루를 축내는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 때문이다.

 

가족에게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참석한 암 환자 모임에서 그녀는 미소가 매력적인 어거스터스, 늘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니지만 불은 붙이지 않는다. 그의 행동을 헤이즐이 맹비난을 한다. 그럼에도 거스는 그걸 재치 있게 받아넘긴다. 그의 재치와 아름다운 미소는 시크하고 우울증마저 겪는 헤이즐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만큼 거스는 언제나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그가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녀가 그의 집에서 처음 만나는 액자에 담긴 문구를 본다. "무지개를 보기 원한다면 내리는 비를 이겨내야 한다."이다. 몇 번 영상에 비추는 이 액자 속 문구, 무지개, 의미 있는 단어다. 이들의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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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못 보는 아이작애겐 헤이즐 말고 다른 여자 친구가 있다. 둘은 잠시도 떨어지려 않고 키스를 주고받는 닭살커플이다. 이들은 늘 입에 "언제나"를 달고 산다. 이 단어는 이 두 사람에겐 암호와도 같다. 언제나란 단어는 키스하자는 의미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는 이것이 부러울 만도 하다.

 

모두가 이러 저러한 색깔로 생을 이어간다. 헤이즐과 거스 또한 그렇다. 운명적인 만남인 듯, 서로 우정을 엮으며 점차 둘은 가까워진다. 예쁘게 가까워진 둘이 합친 폐는 1.5개, 다리는 3개인 한 쌍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사랑할 수 없다. 누군가 먼저 떠나고 나면 남아 있을 사람은 상처를 안아야 한다. 때문에 서로 사랑의 감정이 있음에도 더는 가깝지 않게 우정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성적취향이란 거대한 아픔으로 인식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거대한 아픔이 주는 암시는 바로 사후의 궁금증이다. 떠나고 난 후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상처에 대한 관심이다. 또한 더는 기억할 수 없고, 남은 이들의 기억에서 지워질 자신의 존재, 그럴 생각하면 두렵다. ‘암이란 죽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며 죽지 않는 유일한 인간’으로, ‘쿠데타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약속이란 사람들은 약속을 하면서 그 약속이 뭔지도 모를 때도 있는 것’으로 둘은 생각한다.

 

서로 가까워지면서 헤이즐은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책을 거스에게 빌려준다. 그 책을 읽으며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진다. 헤이즐은 여전히 그 소설의 결말이 궁금하다. 너무 갑자기 허무하게 결말이 끝났기 때문이다. 거스는 ‘어른스럽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사람처럼 책도 갑자기 끝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 책이 끝난 다음에 그 등장인물들의 결과가 그토록 궁금하다. 사람들이 죽은 후에 세상의 반응이 궁금하듯이. 그녀의 끈질긴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려고 그는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는 메일의 답장을 받는다. 그가 답장을 받았다는 소식에 그녀는 무척 좋아한다. 그녀 역시 용기를 얻어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다. 답장에는 네덜란드에 올 일이 있으면 한 번 들리란다. 그래서 네덜란드에 가는 것이 그녀에겐 소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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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마음의 통함, 그래서 서로 아주 가까워질 수밖에 없음, 그는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소원이 남아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라며 그는 그녀를 위로한다. 자신도 죽어가면서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암스테르담에 가서 벤 하우텐 씨에게 직접 그 소설의 결말 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녀가 전화로 거스에게 말한다. 이런 유별난 삶이 싫다고, 벤 하우텐 씨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그냥 하늘인데 보기만 해도 슬퍼진다고, 어렸을 때 아빠가 만들어준 애처로운 그네가 슬프게 한다고.

 

어거스터스가 그녀에게 온다. 그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그는 참 멋지다. 다른 친구들의 문제를 잘 해결해준다. 한번은 늘 '언제나'를 암호로 수없이 키스를 나누던 친구 아이작이 여자 친구가 떠나자 슬퍼할 때 그에게 다짜고짜 자신이 받았던 트로피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그걸 벽에다 던져서 깨라는 것이다. 친구가 망설이자 재촉하여 그것을 깨게 했다. 물건을 마음껏 깸으로써 화풀이를 하게 하여 마음을 풀게 한 배려였다. 남을 배려하고, 남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명랑하고 멎진 그가 헤이즐을 위로하려 그에게 온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 "난 너를 좋아해.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밀어낼 수 없을 거야. 난 네가 좋아. 이렇게 있는 것도 다른 것도, 그러나 여기까지야. 더 이상 상처주기 싫어."라고 솔직한 마음을 고백한다. 그러자 그가 "난 상관없어. 내 마음이 아프건 말건 내 자유야."라며 그녀의 말을 받는다. "난 수류탄이야. 주변을 다 날려버릴 거야. 주변에 상처를 줄 거야. 그래서 햄스터도 안 길러."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그네의 새 주인을 찾는다. "그네가 집을 찾아요. 절박하게 외로운 그네가 사랑스런 집을 찾아요. 외롭고 변태 같은 그네가 어린 애의 엉덩이를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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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친구로 지내기로 한다. 나이는 18세지만 거스는 늘 담배를 물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는 않는다. 그는 상징적으로 담배라는 살인무기를 물고 있을 뿐이다. 담배는 자기를 죽일 힘은 없다는 것이다. 물고만 있으니까. 이때부터 이들은 서로 '오케이'로 암호를 정한다.

 

그는 헤이즐이 그토록 좋아하는 네덜란드의 작가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지니의 소원’을 빌어 암스테르담 여행을 제안한다. 중병이라 움직이기 어려운 헤이즐은 의사의 허락을 얻어야 했는데, 의사는 기어이 허락을 한다. 그런데 꿈에 부풀어 여행을 기다리던 중 헤이즐에게 심한 통증이 찾아온다. 여행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회복되자 가족과 주변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동반하는 조건으로 생애 처음으로 세 사람이 여행길에 오른다.

 

드디어 작가를 만나기 전 두 사람은 어른 차림으로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는다. 식당에서 와인도 마시면서 분위기를 즐긴다. 그들은 대화를 나눈다. 자신을 시한폭탄이라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들과 선을 그었던 헤이즐, 거절당할까 두려워 진실을 감춰왔던 거스, 둘은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헤이즐은 “신은 아마도 없고, 천사는 없다, 사후세계는 있을 수도, 그런데 증거 같은 게 있었으면”이라는 솔직한 속내를 말한다. 그러자 남자가 말을 받는다. “사후 세계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널 사랑해. 사랑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고, 망각은 피할 수 없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 죽는다 해도, 비로 우리가 마지막 날 우리가 했던 것들이 다 먼지로 돌아간다 해도, 또 태양이 우리가 살았던 이 지구를 삼켜버린다 해도 널 사랑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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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사람은 작가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실망시킨다. 그는 원래 미국인이었는데, 미국인들을 피해서 떠났다는 것, 처음으로 메일 답장을 보냈는데 자신의 잘못이었다며 그들을 박대한다. 그의 아내가 그나마 그를 제지하여 그들은 작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는다. 그녀가 궁금했던 것을 드디어 묻는다. 그러나 작가는 퉁명스럽게, 꼬장꼬장하게 "소설이 끝나면서 그냥 끝난 거야. 소설 후의 세계, 사후의 세계, 그런 건 없어."라고 대답한다.

 

"그럼 만들어줘요."

 

"그런 멍청한 질문을 왜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작가의 면박만 듣고 두 사람은 밖으로 나온다. 작품 속의 주인공 안나가 죽고 나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을 그대로 묻은 채로 그들은 작가를 떠난다. 그들이 들은 건 거북이와 아킬레우스의 경주에 관한 수학 문제만 들었을 뿐이다. 이들을 그의 아내가 나와서 괜찮다면 함께 구경을 가잔다. 안네 프랑크가 살던 집으로.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여러 층을 올라가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엘리베이터가 없단다. 헤이즐은 산소통을 끌고 갈 수 없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올라가겠단다. 좁은 계단을 애써 올라간다. 아주 어렵고 힘들게 그녀는 오른다. 그리고 결국 끝까지 오른다. 안네 프랑크가 마지막 살았던 곳까지. 결국 안네 프랑크와 가족은 모두 죽고, 그의 아버지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남긴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비극을 생각할 수 없었어요. 아름다움만 남았어요. 당신 안에 행복을 되찾으세요.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행복해 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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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나오는 메시지에 감동을 받은 걸까, 힘겨워하던 헤이즐이 그윽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 키스를 보낸다. 처음으로 나누는 뜨거운 키스, 주위에 있던 이들이 박수를 친다. 그리고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마치 잠드는 것처럼 사랑에 빠졌어." 결정적인 순간에 던진 어거스터스의 말이다.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온다면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는 다리가 하나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반면 헤이즐은 키스하는 순간에 숨쉬기가 곤란하다. 그렇게 그들은 첫 키스, 그리고 첫 경험을 한다. 아니 마지막 경험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그 사랑이 한껏 아름답다.

 

인생에서, 아니 짧은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보내고 돌아온 두 사람은 아이작을 만나 아이작의 마음을 위로한다. 사랑을 잃은 그, 두 눈을 잃은 그가 그의 애인이었던 모니카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어 한다. 해서 이들은 계란을 두 판을 산다. 그가 그녀의 차에 계란을 던지게 하여 감정을 삭이도록 도와준다. 눈을 잃은 아이작을 배신한 그녀, 맹세를 저버린 그녀의 복수를 그렇게 돕는다.

 

사라질 기억, 잊어야 할, 잊힐 기억, 그 슬픔 앞에서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헤이즐. 그녀의 어머니의 위로는 공허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죽은 후에 그 슬픔을 대처할 방법을 이야기한다. "네가 죽는 순간이 와도 난 항상 너의 엄마일 거야. 사람들이 고통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거야." 헤이즐은 자신이 죽은 후에 굳건히 살아갈 다짐을 하는 엄마에게 그게 좋은 뉴스라며 위로한다.

 

헤이즐이 어거스터스 앞에서 추도사를 미리 읽는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사라질 거예요. 우리가 소원했던 작가를 만나 그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들은 수학 공식 하나는 이해했어요. 0가 1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가 있다는 것이지요. 0과 2사이에는 더 많은 숫자가 있을 거고요. 저는 제가 가질 수 있는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를 원해요. 하느님, 거스가 가진 날보다 더 많은 날을 가지길 원해요. 거스 내 사랑, 나는 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넌 우리가 유한한 날들 속에서 영원을 주었어. 난 그걸 영원히 고마워 할 거야. 널 정말로 사랑해." 그리고 그는 얼마 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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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웬일로 네덜란드 작가가 장례식에 보인다. 헤이즐의 추도사. "저는 거스의 집에서 아름다운 문구를 보았어요. ‘무지개를 보기 원한다면 내리는 비를 이겨내야 한다.’라는 문구였어요. 장례식은 사실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란 것이에요. 모든 세포는 이미 존재했던 세포에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삶은 또 다른 삶을 났는 것이지요......."

 

장례식이 끝나고 작가가 헤이즐을 찾는다. 하지만 헤이즐은 그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작을 통해 그녀에게 편지를 남겨주고 떠난다. 그 편지는 사실 거스가 미리 쓴 추도사, 헤이즐에게 남긴 추도사다. "사람은 좋지만 글 쓰는 건 엉망인 제가 부탁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은 엉망이지만 글은 잘 쓰니까, 그 소설의 결말을 내가 쓴 걸 고쳐서 헤이즐에게 보내주세요. 우리 모두는 기억되길 원하지만 헤이즐은 달라요. 그녀는 당신처럼 수많은 팬을 원하지 않지만 한 사람만의 관심을 원해요. 우리는 오래 사랑하지 않았지만 깊은 사랑을 했어요. 우리 없는 세상 얼마나 의미가 없을까요? 그녀를 사랑할 수 있어서 저는 행운아예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안 받을지를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받을지는 고를 수는 있어요. 그리고 전 제 선택이 좋아요. 그녀도 자신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오케이! 안녕 헤이즐 그레이스"

 

헤이즐이 답한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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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은 아름답다. 서녘하늘을 발그랗게 물드는 저녁노을, 마치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 같다. 아니 일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 같다. 누구나 간다. 저녁을 맞는다. 삶의 저녁을 맞는다. 그 저녁이 아름다운 건 어쩌면 후회 없이 사랑하고, 후회 없아 하고 싶은 걸 다하는 것이리라. 보편적으로 사회에서 보기에 부족한 사람들, 남들이 다 가진 것을 반밖에 갖지 못한 이들, 결여의 인간들, 그들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게 있다면, 그건 우정이다. 그건 사랑이다. 진실한 사랑과 우정이 있다면 더 이상 그들은 결여의 인간이 아니다.

 

저 세상에서의 우정, 저 세상에서 사랑, 그건 결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결말, 삶의 매듭짓기, 그게 중요하다. 사랑이 그걸 모두 메워준다. 충족해 준다. 눈이 없는 이의 눈이 되어주는 사랑, 폐가 없는 이에게 폐가 되어주는 사랑, 다리가 없는 이에게 다리가 되어주는 사랑, 이 사랑은 아름답다. 비갠 하늘의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비를 피하기만 하는 사람에겐 무지개가 보이지 않듯이 서로의 배려로 무지개를 위해 비를 이겨낸 사랑, 죽음을 이겨낸 사랑, 그 결말은 다름 아니다. 무지개다. 아름답게 하늘과 땅의 사다리를 만들어주곤 슬며시 사라지는 것, 그 다음엔 결말은 알 수 없다. 슬그머니 사라지는 게 결말이다. 기억으로, 추억으로 남아 있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그리곤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 사로 후회 없는 사랑, 결여의 인간들이 충만하게 사랑을 나누었노라고, 그 이야기만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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