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90- 테레즈 라캥, 적나라한 잠재적 욕망의 모습을 추적한다
자연주의 소설은 사실주의에서 진일보한 사조다. 사실주의 작가들은 어떤 사실을 우리가 오감으로 확인 가능한 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여 사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비해 자연주의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 실제의 진실이 아니라, 진실은 숨겨져 있으니 그 진실을 캐내려는 데 목표를 둔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피상적으로만 진실일 뿐, 진정한 진실은 감추어져 있으니 그것을 탐구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주의 소설은 사실주의 소설에 비해 행동이나 언어보다 그 안에 감추어진 본성의 문제를 다룬다. 그 본성을 추적해 인간의 진실에 이르려 한다.
18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의 원작자는 에밀 졸라다.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가 1867년에 펴낸 첫 자연주의 소설로, 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소설이다. 특히 자연주의 문학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자,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적 사고방식이 본격적으로 표현된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은 파리의 퐁네프 파사주를 배경으로, 불륜과 살인이라는 선정적인 소재를 다루어 출간 당시에 큰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카미유와 라캥 부인은 안정된 생활에 만족하지만 테레즈는 자신 안의 야성과 욕망을 채우지 못해 무료해한다. 그러던 중, 테레즈는 어린 시절 친구 로랑을 만나 서로의 육체적 욕망을 채우는 관계가 된다. 두 사람은 카미유를 센 강에 빠뜨려 살해하고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밤마다 카미유의 환영에 시달리던 그들은 결국 서로를 미워하다 파국을 맞는 소설이다.
테레즈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는 아프리카에 갔다가 꼭 돌아온다며 테레즈를 자기 누나에게 맡긴다. 그의 누나, 즉 테레즈의 고모는 테레즈와 또래인 아들 카미유를 키우며 홀로 산다. 고모는 테레즈에게 단언한다. ‘너의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속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면서. 고모의 말대로 결국 기다리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테레즈는 나중에 아버지는 알제리에서 병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린 시절부터 그렇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라는 테레즈, 그녀는 병약한 사촌 카미유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다. 사춘기가 되자 그녀는 외로움을 탄다. 그녀의 사는 곳 옆집 목장에서 풀을 베는 청년, 우람한 근육을 드러내며 풀을 베는 남자, 그의 모습을 보자 그녀의 욕망이 불끈불끈 솟는다. 병약한 사촌 까미유에 비해 멋진 근육의 남자를 보자 욕정을 느낀 그녀는 속앓이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다 외출한 사촌까미유를 만난다. 그녀는 다짜고짜 그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한다. 그러자 여자의 속내를 모르는 그는 그저 테레즈의 볼에다 뽀뽀를 한다. 그녀의 속내를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청소년기를 고모와 카미유와 함께 지낸 테레즈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촌 카미유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파리로 함께 이사한다. 파리로 왔으나 그녀는 무료하다. 남편은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동물원에 가서 동물들과 지내기만 즐기는 것이다. 그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는 병약한 탓이다. 늘 삶의 불만, 알 수 없는 불만으로 무력해지는 테레즈, 하지만 그런 대로 그 생활을 유지한다.
무의미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카미유의 소꿉친구인 로랑이 그들을 찾아온다. 그 남자는 어쩌면 그녀가 사춘기 적 속앓이를 하던 근육질의 그 남자였을지 모른다. 그 남자가 나타나자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 남자를 멀리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남자 로랑에게 점차 빠져들기 시작한다. 카미유와 달리 완숙한 남성미의 소유자 로랑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사랑의 결핍으로 자란 여자의 욕망, 잠재한 욕망을 로랑이 깨운다. 섬세한 예술적 감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 그는 말로 그녀의 그림을 그린다. 그것을 상상하는 그녀의 감정 속에서 잠들었던 욕망이 깨어난다. 로랑은 그림을 그리면서 그녀의 그림자도 그렸다고 한다. 그녀는 그 그림자란 자신의 영혼을 닮은 거라고 말한다. 로랑은 영혼도 익숙해지면 만성질환이라고 한다. 욕망의 억압, 그것은 만성질환과도 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큰 병이 되어 튀어나올 질병이다.
까미유의 어머니는 가게에 모여든 사람들이 말한다. 놀이를 하면서 우연히 한 말 "항상 구석에 있는 사람을 눈여겨봐야죠." 이게 복선이다. 바로 두 사람, 로랑이 이 집안을 온통 폐허로 만들 시한폭탄이다, 구석에 조용히 있는 것 같은 테레즈의 속엔 타오르는 화산 같은 욕정이 움튼다. “잠든 당신의 몸 만지고 싶어. 당신 혀를 입에 담고 눈 뜨고 싶어.” 생기라곤 없이 살아가고 있는 테레즈는 시든 꽃이다.
그녀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녀는 까미유와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는 생각으로 분노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남은 건 다 타버린 심지와 한 가닥 연기뿐인 자신임을 고백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서로의 욕망을 채우려 애쓴다. 그런 불륜의 시간들,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은 보다 노골적인 은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서로에게 깊이 빠져든다. 이제는 서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밀회가 아닌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두 사람은 자신들의 불륜의 걸림돌인 카미유를 없애기로 계획한다.
세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까미유를 수장시킨다. 사고로 위장한 그 사건은 아주 완벽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범죄에 성공한 두 사람은 부부로 산다. 그런데 막상 모든 사랑의 조건을 이루었다 생각한 순간, 이들에겐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다. 보다 조건이 좋아졌음에도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오히려 둘 사이엔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것이다. 서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전에는 서로 붙어 지내지 않으면 그렇게 불안할 만큼 서로를 원하던 그들, 그들의 관계는 이제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부터 도피수단에 불과하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는 불안하다. 그러면서 테레즈가 그를 밀어낸다. 때문에 몸이 달아오른 로랑은 그녀 대신 다른 여자를 찾는다. 그는 수잔과의 관계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결국 결혼한 것은 로랑과 테레즈다. 결혼에 성공한 그들에게, 로랑의 밀회의 상대 수잔은 그에게 비웃듯이. "사랑보다 더 강한 매듭으로 이어졌네요. 돈으로."라고 말한다.
둘의 결혼으로 까미유의 어머니이자 테레즈의 고모의 전 재산의 상속은 두 사람 몫이다. 정식으로 결혼했음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로랑은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테레즈, 로랑, 수잔, 세 사람 모두 사라진 까미유의 환영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세 사람 모두 극도의 불안증세에 시달린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 부부 사이도 극도로 악화된다.
까미유의 어머니는 이제 정신병을 앓는다.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에 이른 이 여자, 그 걸림돌마저 로랑은 없애려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테레즈는 그나마 정성껏 고모의 수발을 든다. 그게 불만인 로랑과의 불화, 그런 와중에 고모는 친구들 앞에서 손가락 움직임으로 두 사람의 범죄를 알리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마음을 다 읽어내지 못한다. 그녀가 쓰려던 말은 그저 테레즈와 로랑은 A까지다. 아마 살인자라고 쓰려 했으리라. 살인이란 뜻의 단어 아싸생 말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녀가 간신히 잉크병을 거머쥐고 마룻바닥에 크게 써놓은 글자, 두 사람이 살인자라는 글자다. 그것을 수잔이 읽는다. 그리고 신고한다.
이제 테레즈는 칼을 준비한다. 로랑은 청산가리를 준비한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테레즈는 그 칼로 로랑을 없애려는 걸까? 청산가리를 준비한 로랑은 그것으로 화근이 될 여자, 까미유의 어머니마저 죽이려는 걸까?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두 사람이 고모를 휠체어에 태우고 바닷가로 간다. 둘은 그녀를 놓아둔 채 서로 티격태격한다. 그러다 로랑이 테레즈에게 포도주를 한 잔 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슬쩍 포도주에 청산가리를 탄다. 그것을 고모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무기력한 시선이다. 테레즈는 천으로 둘둘 말았던 칼을 꺼낸다. 로랑이 먼저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먼저 포도주를 마신다. 그 나머지를 테레즈가 마신다. 두 사람이 쓰러진다. 그제야 경찰들과 지인들이 그들을 찾는다. 두 사람은 자살한 것이다.
불륜, 왜 사람은 불륜에 이르는가? 사람은 욕망의 동물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잠재우려 한들 잠들지 않는다. 현시에서는 억압으로 어느 정도 맞추어 살아가지만 그것은 억압의 상태에 있을 뿐이다. 그대로 방치하면 그것은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로 발전한다. 이를테면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다. 그런 욕망 결핍은 스스로 삶을 살지 못했을 때 더 진하게 찾아온다.
‘테레즈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에 의해 고모에게 맡겨졌다. 그저 수동적으로 살다가 원하지 않는 결혼, 원하지 않는 이사, 원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 그것의 분출구가 결국 불륜이었다. 남편은 심약하고 병약했다. 그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이 설정에서 작가는 욕구불만의 분출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추적한다. 자연주의, 이 영화에서 테레즈의 본성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보고자 한 소설이다. 까미유의 집안, 그 집안은 테레즈의 본성을 알아보는 실험실이다. 그 실험실에 들어가 보면 그 사람의 적나라한 무의식, 아니 본성이 드러난다. 우리가 목격한 테레즈가 아니라 그녀의 속에 잠재한 본성, 그것이 인간적인 그녀의 진실이다. 그 진실이 추하든 악하든 아름답든 진실을 추적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허울이다. 진정 극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 실험실에서 들여다봐야 그 진실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진실이다. 우리는 피상적으로는 고상을 떨지만 우리는 얼마나 심적으로는 불륜, 그리고 욕망, 살인을 저지르는가. 이 영화는, 아니 이 소설을 그것, 즉 인간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사람, 최후엔 결국 바다로 침잠하면서 하나가 되니까. 그러면 두 사람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겠지. 인간의 무서운 진실, 사실보다 무서운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