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92.명량- 2. 백성이 곧 하늘, 천행은 곧 백성이다

영광도서 0 1,447

인내천, 백성이 곧 하늘이다. 우리 민족 사상이다. 절말 훌륭한 지도자는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섬긴다. 때문에 모든 권력이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것, 모든 지도력의 근간이 백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런 마음을 지닌 지도자를 훌륭한 지도자로 믿는다. 반면 불충한 지도자는 백성을 개돼지로 여긴다. 현대식으로는 여론을 형성하는 도구거나 표를 주는 도구 정도로 여긴다.

 

훌륭한 지도자, 백성 제일주의로 산 지도자, 이순신 장군이 그 귀감의 표본으로 받드는 이유, 장군은 자기 명예, 권력, 부와는 상관없이 백성을 하늘로 받든 덕분이다. 백성이 하늘이니, 하늘이 내리는 행운을 얻는 것, 역시 백성에 달려 있다고 믿는 장군, 그는 백성의 지원을 천행으로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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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뿐이다. 게다가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탄다. “신에게는 아직 배가 열두 척이 남아 있나이다.” 장군은 그렇게 말했으나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때가 정유년, 상황만 최악이 아니라 모든 것이 비관적이었다. 장군이 정신무장을 시키고 용맹성을 불어넣은 덕분에 천하무적이었던 병사들이 이제는 두려워서 전쟁에 나설 생각조차 못한다.

 

장군은 느낀다. 이제 자신을 던져서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것,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걸. 적과의 싸움에서 상황의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방법은 그뿐이다. 그리고 제 3의 방법은 백성의 힘을 얻든 빌리든 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일본군 수장 구루지마, 그는 울돌목보다 더 물살이 센 바닷가에서 생활한 명장이다. 왜군과 차이가 있다면 조선 해군은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수군이었기에 배가 크고 높다는 것이 장점이다. 소위 원거리에서 싸우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것이 판옥선이다. 그리고 높이가 높아서 적이 올라타기 어렵다는 점이다. 원거리 공격용이니 함포를 장착한다. 360도 어디서든 공격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반면 왜놈들의 배는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해적질을 하거나 하는 용으로 만드는 데서 출발한 배라 속도는 빠르지만 높이는 낮다. 대신 이들은 주 무기인 조총을 들고 남의 배에 갈고리를 건 다음, 갈고리에 연결한 줄을 타고 상대의 배로 올라가 물건을 노략질하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왜적은 육박전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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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은 적이 거느린 330척에 달하는 적과 12척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그런데다가 선뜻 전쟁에 나설 의지가 없는 병사들을 어떻게 전쟁에 참여하게 할까를 궁리해야 만 한다. 이런 사정과 상황을 염려한 장군의 아들 면은 왜와의 싸움에 앞서 장군에게 무모한 싸움을 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그러자 장군은 아들에게 이 싸움의 이유를 의리라고 한다. 왕이 버린 의리를 왜 그는 의리라고 할까? 장군의 의리는 왕과의 의리가 아니라 백성을 향한 의리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만 한다.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군주가 있는 것이다. 나의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니라.”라고 말하면서 장군은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며 병사들을 독려한다. 그렇다고 이 한 마디로 선뜻 병사들이 사기를 얻지는 못한다. 군율을 어긴 자를 단칼에 목을 자르는 엄명을 내린 장군, 군율의 지엄함을 보이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살리기엔 아직 요원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승병들이 자신하여 싸울 의지를 갖고 전선에 동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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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들을 모두 모아놓고 장군은 부하들에게 아직도 살기를 바라느냐고 외친다. 그러면서 부하들에게 준비시킨 불로 조선군이 거처하던 집들을 모두 불태운다. 이제는 있을 곳이 바다밖에 없다며.

 

“나는 바다에서 죽기위해 육지를 불태우는 것이다. 너희들이 정녕 살기를 바라느냐? 육지로 도망간다고 살 수 있겠느냐?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마라! 살고자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라.”

 

 

 

十五日癸卯 晴 1597년 9월 15일. 맑음.

 

招集諸將 約束曰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兵法云 必死則生 必生則死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又曰 一夫當逕 足懼千夫 또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今我 之謂矣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必死則生,必生則死 두려움에 맞서는 자 역사를 바꿀 것이다!

 

- 亂中日記 중-

 

 

 

그리고 출전이다. 열두 척의 배로 30배에 달하는 적을 물리쳐야 한다. 물론 말이 안 된다. 해서 장군은 전략을 준비한다. 돌이 우는 소리를 한다는 의미의 울돌목, 그만큼 물살이 세다는 곳, 진도 앞바다, 조류 때면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물살이 무려 300여 미터 넓이로 거세게 몰려든다고 한다. 장군은 그 소용돌이를 이용하기로 작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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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적이 화약을 실은 배를 장군의 배로 접근시켜 폭파시키려 한다. 그러자 해전을 바라보던 백성들이 그 위험을 알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각자 옷을 벗어 흔들며 적의 배에 접근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리려 애쓴다. 하지만 화약을 실은 적의 배는 점차 장군의 배에 가까이 접근한다. 마지막 순간에 백성들의 신화를 알아차린 장군의 배는 간신히 함포로 그 배를 폭파시켜 위기를 넘긴다.

 

위기를 넘긴 장군은 물살이 센 울돌목의 좁은 곳으로 그들의 배를 유인하여 길목을 지켰다가 함포사격을 하려는 전략을 마련한다. 적장 구루시마에겐 이 정도 물살이면 두려움의 대상은 아닐 터다. 장군이 의도한 대로 적들은 자신 있게 이들을 추격한다. 적의 배들은 울돌목에 들어서자 속도는 갑자기 빨라진다. 이들이 걸려들었다 생각하자 장군은 돌격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두려움에 갇힌 장수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결국 장군의 배 한 척만 이들과 맞서는 꼴이다. 수많은 배에 둘러싸여 고군분투, 뛰어난 전술과 침착한 리더십으로 접근하는 배들을 무력화시킨다. 물의 소용돌이가 그를 위기에 몰아넣기도 하지만 상대 배를 격파하는 역할을 한다.

 

그제야 용기를 얻은 두 장수의 배가 지원사격을 한다. 하지만 장군의 배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때 백성들이 나선다. 작은 배들을 끌고 나와 갈고리로 줄을 걸어 장군의 큰 배를 이끌어낸다. 마치 개미들이 큰 종이배를 끌어내는 모양 세다. 그 백성들의 힘이 아니었다면 장군은 거기서 전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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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지,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장군의 말에 아들이 묻는다.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비책이라도 있으시옵니까?” 장군은 “내가 죽어야지.”라고 담담하게 답한다.

 

실제로 장군은 죽을 각오로 싸웠다. 용기를 얻은 병사들도 전의를 불태웠다. 장군의 배가 위기에 몰리고 백병전이 시작되자 노를 젓던 일반노역자들도 분연히 노를 놓고 무기를 들었다. 그들의 무기란 도끼며 낫이며 돌멩이며 농기구였다. 장군도 병사도 백성들도 목숨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눈물겨운 싸움으로 조선의 수군, 장군의 수군은 육박전에 능한 왜를 물리쳤다.

 

용기 덕분이었다. 장군은 부하들의 용기를 어떻게 불러일으킬지를 알고 있었다. 소용돌이를 이용한 전술, 그것은 모험이었다. 천행을 바라는 일이었다.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그 소용돌이에 오히려 자신의 배가 희생될 수도 있었다. 만일 백성들의 눈물겨운 그런 구출작전이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이 상황을 알고 있던 장군의 아들 이회가 울돌목 소용돌이를 이용한 것이 계책이었냐고 묻는다. 그러자 장군은 서슴없이 그건 “천행이었다.”라고 답한다. 장군은 백성들이 자신을 구해주었던 것을 천행이라 일컬은 것이다. 아들 이회가 놀라 되묻는다. 그러자 장군은 되묻는다.

 

“너는 소용돌이와 백성 중에 무엇이 천행이라고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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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마음을 얻은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이라는 콘텐츠 하나만은 확실하다. 감독의 의도대로 '백성은 곧 천행이다.'라는 주제 또한 확실하다. 다만 외면적인 스케일은 충분히 성공적이지만 고뇌하는 장군의 모습과 같은 내면적은 갈등이나, 눈물겨운 백성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그다지 들어나지 않은 게 좀 아쉽다. 뭉클함은 있었으나 콧등 시큰함은 시작되려다 빠져나오곤 한다. 그게 좀 아쉽다. 두 마리 토끼보다 한 마리를 확실하게 잡았으면 더 좋았을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그럼에도 백성이 곧 하늘이요 백성의 뜻이 곧 천행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 흥함은 오래 가지 못하고 망할 것이요. 비록 지금은 힘들고 곤란에 처해도 오직 백성을 행해 의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백성의 마음을 얻을 것이니, 그것이 천행이다. 모든 힘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 싸워야 할 의미는 바로 백성을 향한다. 장군은 그렇게 믿었고, 그 신념으로 일관했다는 것을 영하는 잘 보여준다.

 

편협한 백성을 향하는 게 아니다. 백성들, 보편적인 백성들의 편에 서서 그들 속으로 걸어가란 말이다. 백성이 비록 약한 것 같지만 마지막 순간에 살려주는 힘은 백성에게 있다. 백성이 곧 천리요, 백성이 곧 천행이다. 나를 살리는 것은 백성이다. 군주나 총수가 아니다. 백성만을 보고 나아가는 자,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은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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