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94- 수호지, 귀족영웅 노준의: 정의로운 사람이 도적의 무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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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과 정치인, 정치인과 도적, 이들을 뒤섞어 놓으면 누가 더 정의로울까? 도적은 실체가 드러난 도적이라면, 정치인은 드러나지 않은 도적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도적은 솔직한 도적이고, 정치인은 가면을 쓴 도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도적이나 정치인은 누가 더 정의롭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인은 원하지 않아도 상황이 도둑이 되게끔 만들거나 오죽하면 스스로 도둑이 되기도 한다. 이때를 난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렵다, 어렵다 살기 어렵다, 이때를 난세라 할 테다.

 

수호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다. 양산박의 도적들, 아니 의적들의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었다. 난세의 영웅도적을 다룬 대작이다. 뼛속까지 도둑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시대상황이 멀쩡한 사람을 도둑으로 만든 시대,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상황,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살 수 없어 열 받게 하는 시대, 그 시대를 난세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원작을 가지고 만든 영화, 책과 같은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수호지>의 앞부분만을 다룬다.

 

세상이 살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은 어디 의지할 데가 없다.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일 텐데, 그리고 그 국가를 상징하는 관리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할 텐데 보호는커녕,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나약한 백성의 등을 처먹는 관리들이 판을 치니 살 수가 없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탐관오리들의 압정을 이기지 못하고 산에 들어가 도둑이 되니, 양산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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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에 출중한 것은 물론 가난한 이재민들에게 자신이 가진 곡식을 나눠주는 인자한 성품의 소유자인 노준의는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는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따른다. 그가 다른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면 재물만 탐하는 부자들이나 관리들은 백성들의 원성을 받는다. 가진 자 모두가 모두 못된 자들이라면 세상의 원리가 그러려니 할 텐데, 노준의 때문에 비교대상이 된 탐관오리들, 재물만 탐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관의 수령에겐 노준의는 눈엣가시다. 

 

때문에 관리는 그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를 잡아들을 명분이 없다. 섣불리 그를 대적할 수도 없다. 궁여지책이라고 할까? 어떻게 눈엣가시를 없앨까 고민하던 차에 건수가 생긴다. 노준의의 아내 가씨와 노준의의 식솔 이고가 그 건수를 만든다. 이고란 작자는 노준의가 가장 믿는 식솔이다. 때문에 그는 근거리에서 노준의의 아내와 수시로 자연스럽게 접촉한다. 그게 발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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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씨 편에서 보면 남편은 불만의 대상이다. 노준의는 가족을 보살피고, 가족에 관심을 갖는다기보다 세상을 위한 대의를 위해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노준의는 자신의 아내 가씨에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남자란 자고로 두 가지 일을 다 잘해야 한다. 식솔을 책임지는 일, 그리고 한 여자의 남자 구실 해주는 일, 그런데 노준의는 그렇지 못하다. 그는 물론 아내를 사랑한다. 하지만 아내와는 거의 동침하지 않는다. 오직 대의를 위해 바쁘다. 이 남자는 여자를 모른다. 여자가 원하는 건 밖에서 일 잘하고 인정받는 것보다 우선 자기에게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특별히 일이 없는, 할 일이 없는 가씨에겐 무료한 날들이다. 그녀에겐 남편을 기다리는 일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 남자 집에도 잘 오지도 않는다. 사무실에서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백성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심한다. 거의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여자에겐 거의 관심조차 없다. 일에 빠진 중독자다. 그러니 가씨는 외로울밖에. 해서 이 여자 식솔인 이고에게 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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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좋다는데 마다할 이고가 아니다. 서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욕망을 해소한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문제가 생긴다. 여자가 임신을 한다. 그 임신을 합리화시키려면 여자가 어떻게든 노준의와 합방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노준의는 허구헌 날 제자들의 무예지도에만 전념한다. 어무리 유혹을 해도 이 남자 까딱 않는다. 

 

점점 조급해진 이고와 노준의의 아내가 흉계를 꾸민다. 이고와 작당해서 노준의를 죽이기다. 그렇다고 둘이 노준의를 죽일 수는 없다. 무예에 출중한 노준의를 제거한다, 이들은 생각조차 못한다. 이들이 작당한 것은 노준의를 도적으로 모는 것이다. 노준의가 산적 양산박의 시천과 내통한다고 고발한 것이다. 이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준의는 시천과 내통한 적이 있다. 시천이 노준의를 존경하여, 노준의가 어려운 백성을 돕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훔친 물건들 중에서 얼마간을 남들 도울 때 보태어 돕도록 선의를 한 것이다. 노준의는 그것을 받긴 받았으나 하나도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도 쓴 적이 없다. 모두 가난한 이웃을 위해 썼는데, 그게 구실이 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증거는 있다. 그래서 노준의는 관에 불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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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한 노준의는 황당하다. 그제야 노준의는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한 자들이 다름 아닌 이고와 자신의 아내 가씨라는 것을 안 노준의는 두 사람을 죽이려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대신 노준의 자신이 꼼짝없이 감옥에 갇힌다. 이제 노준의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그를 구하기 위해 나선 이들은 늘 그의 옆에서 오른팔 역할을 하는 소올과 양산적 시천이다. 평소 존경하는 노준의를 선의를 가지고 접근한 적이 있는 시천은 자신의 선의가 오히려 노준의에게 피해를 주었음을 알고 그냥 있을 수 없어 그를 구출하러 나서서 불가피하게 관군을 해치고 그를 구한다. 때문에 더는 집에 있을 수 없게 된 노준의는 일단 양산적의 거처 양산박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실제로 시천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천이 도적의 무리엔 속하나 성정은 의로운 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와 손을 잡는다. 감옥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었던 노준의가 그를 따르는 식솔들과 함께 양산으로 떠나면서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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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엔 영웅이 필요하다. 그 어려움을 다 해소해주지는 못해도 그런 사람 한 사람 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은 것이다. 가진 자들은 갑질이나 해대는데, 가진 자이면서 갑질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 인격을 갖춘 부자, 덕분에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위대한 품성을 지니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 혼자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사는 사람, 그런 사람에겐 꼭 시련이 따른다.

 

일단 대의를 위해 살라면 무엇보다 주위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겐 소홀하기 십상이다. 이를 이해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로 발전한다. 특이 부부관계다. 정당하게 살고 열심히 사는데 무엇이 문제랴 싶지만 여자는 남자가 일 잘하고 열심히 산다고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밖의 일 못지않게 남편의 도리도 잘해야 불만을 갖지 않게 마련이다.

 

집안에 불화의 씨앗과는 별개로 밖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돋보이는 사람에겐 늘 시기하는 무리가 생긴다. 자신보다 별로인 사람인 것 같은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면 찍어 내릴 대상이다. 올바른 길을 가고 있어도 올가미는 얼마든 만들 수 있다. 본의든 아니든 오해 살 일은 얼마든 조작해낼 수 있으니까.

 

이럴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대상이 가까운 사람이다. 믿는 사람에게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그저 생긴 게 아니다. 믿는 놈이 나의 정보를 제일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믿는 놈이 나를 올가미 씌우기란 쉬우니까. 그 올가미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의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 모든 약점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주변관리, 가방 믿는다 하는 주변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그만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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