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96- 울프 앳 더 도어, 엽기적인 미친 사랑의 지독한 결말
문가의 이리? 사람이 무섭다. 지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사람이다. 사람은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보고 웃고 있다고 나에게 호의적이 아닐 수도 있다. 아무리 무서운 짐승이라도 짐승의 행동은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은 행동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겉과 속이 다른 존재, 때문에 사람이 제일 무섭다.
동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역시 사람일 터다. 신에게 가장 골치 아픈 존재가 있다면 그 역시 사람일 터다.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들도 이처럼 사람을 제일 골치 아파 하거나 두려워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서로 같은 존재인 사람끼리도 제일 두려워한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제일 편안한 존재가 사람이기도 하고, 제일 무서운 존재가 사람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람이 복잡한 것은 서로가 가장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는 서로 간의 관계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달리 서로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서로 가장 가까울 수도 있고, 가장 멀 수도 있으나 피상적인 거리와 내면적인 진실의 거리가 달라서 두려운 존재, 인간들 속으로 들어온 영화, 그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베르나르, 깔끔하고 매력적인 남자가 역에서 우연히 어떤 여인을 만난다. 아름다운 여인, 그 여인에게 호감이 간다. 그녀 역시 남자에 관심을 갖는 듯하다. 여인이 남자에게 접근한다. 그날로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남자는 유부남 베르나르, 여자는 처녀 로사, 두 사람이 사랑한다. 사랑에 깊이 빠진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다. 베르나르의 딸이 실종 당한다. 분명 그 범인은 로사인 것 같다. 그렇게 짐작한 베르나르는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녀와의 관계를 경찰에 고백한다. 베르나르와 로사와 사이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일말에 사건을 여는 키, 아이를 되찾는 키가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경찰은 그녀를 찾아 나선다.
유치원 선생은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간 여성은 아이를 아는 여자였다고 한다. 아이가 그녀에게 안겼으니까. 그 여자는 누구일까. 베르나르는 문제의 여자로 로사를 지목한 것이다. 경찰은 따져 묻는다. 베르나르와 그의 아내의 사생활까지. 왜냐하면 아이를 납치했을 때는 원한관계, 아니면 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니까. 그런데 이 집은 돈과는 담을 쌓고 살 정도로 가난하다. 그러면 원한 관계일까, 그런 일도 한사코 없단다. 그럼 애증관계, 일단 그의 아내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막무가내다. 그럴 일 없단다. 아내는 자기의 남자, 이 남자는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취조과정에서 베르나르는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한 로사와는 연인관계였음을 고백한다. 결국 여자는 경찰에 잡힌다. 그런데 로사는 자신은 그런 일은 전혀 모른다고 한다. 자신은 단지 베티라는 여자의 부탁으로 아이를 데려다 주었다는 것이다. 베티라고? 그녀 베티의 남편은 바로 아이의 엄마인 베르나르의 아내와 불륜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베티가 베르나르의 아내를 혼내기 위해 아이를 데려갔을 뿐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얽힐 대로 얽힌 애정행락으로 사건은 꼬일 대로 꼬인다. 아이의 아빠 베르나르는 로사와 연인관계, 로사가 우연히 만났다는 베티라는 여자의 남편은 베르나르의 아내와 연인관계, 좀 복잡하다. 대략의 관계를 파악한 경찰은 베티라는 여자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어디에도 베티의 흔적은, 그런 여자는 없다.
그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베르나르와 로사의 사랑, 로사는 베르나르가 유부남이란 것을 우연히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그녀는 비록 그를 자기 남편으로 삼지 못해도 그를 사랑하고 싶다. 그녀가 집착을 부빈다. 그러자 이 남자 물러서려 한다. 그녀는 혹시나 총을 마련하겠단다. 그 말에 왜 겁나게 그러느냐는 남자, 남자는 궁금하다. 그녀가 왜 총을 마련하려는 걸까? 누구를 쏠까? 그 총으로.
로사는 남자의 아내에게 접근한다. 우연을 핑계로, 해서 그때부터 그녀는 남자의 집에 자연스럽게 드나든다. 심지어 그녀는 남자가 눕는 침대에도 누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와도 낯을 익힌다. 이를 눈치 챈 남자가 그녀를 위협한다. 그리고 남자는 이 여자를 멀리하려 한다. 여자는 한 번만이라도 만나자고 애걸한다. 마지못해 남자는 여자를 만난다. 그러고 나면 여자를 멀리하려던 그는 묘하게도 그녀와 다시 진한 사랑을 나눈다.
묘한 상황의 반복은 그렇게 이어진다. 남자는 여자를 멀리하려 하고 여자는 남자를 잡으려 하는 반복의 계속이다. 그러자 그녀를 창녀 취급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 그런 와중에 이 여자 임신을 한다. 임신 사실을 안 남자는 여자에게 임신 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해 보란다. 시험결과 임신이 맞다. 이 남자는 다시 이 여자를 자기 친구 의사에게 데려간다. 의사와 짠 이 남자, 그녀에게 약을 먹여 마취를 시키고 강제로 임신중절을 시킨다.
이 여자, 거리의 여자를 돈을 주고 사서 베르나르에게 전화를 걸게 한다. ‘당신 아내에 자기 남편이 빠져 있다. 짐에 가 봐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은 베티이고. 자기 남편이 당신 아내에게 빠져 있으니 가서 떼어놓으라는 것이다.
남자, 베르나르는 자신의 아내의 순결을 믿는다. 남자는 두 말 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후 아이 실종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때문에 이 남자, 전화를 믿고, 베티라는 여자를 의심한다. 아니 베티의 남자와 자기 아내를 의심한다. 그래서 사건의 방향은 그쪽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어디에도 베티란 여자의 행방은 묘연하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로사의 고백으로 밝혀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로사는 복수의 각본을 짠다. 마침 지나가는 창녀에게 돈을 주고 남자에게 전화를 하게 한다. 베티라는 여자는 실제의 여자가 아니라 로사가 만들어낸 여자란다. 이렇게 수수께끼 하나는 풀린다. 그러면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 즉 로사가 아이를 데려간다. 그리고 남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 그녀는 아이를 데려다 그때 마련한 총으로 죽인다. 그녀가 남자와 사귀다 남자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총을 마련해야겠다는 의미는 예고된 살인이다. 일종의 복선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여자, 처녀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가 배신하고 심지어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폭력을 행사한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당신은 필요 없다. 당신을 버리는 대신 아이를 선택하겠다. 나는 이 아이를 낳겠다.'고 했음에도 그는 이 여자의 아이를 강제로 죽게 만든다. 절대로 다시는 당신을 찾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담을 느낀 이 남자는 폭력으로, 대갚음한다. 그러니 이 여자는 자기 아이를 죽인 남자의 아이를 유괴하여 죽인 다.
모든 사건에는 씨앗이 있다. 이유 없는 사건은 없다. 만일 남자가 그녀를 곱게 떠나보냈더라면, 임신한 그녀의 아이를 죽게 하지만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뱃속에 있는 아이는 그녀 자신의 자식인데, 그 아이를 죽였으니,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의 자격이 없다. 게다가 그는 살인자인 셈이다. 그는 그 벌을 받는 건 당연하다.
때로 사랑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이성을 잃게 만든다. 이성을 잃은 인간, 진실한 인간의 행동은 예측불가능하다. 이성과 가식이 그 진실을 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성과 가식이, 관계를 고려하는 그것들이 잠든 순간 튀어나오는 진실은 아름다울지, 흉악할지, 그건 알 수 없다. 내가 나를 모른다. 더구나 너를 모른다.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 그건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