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12- 필로미나의 기적, 진정한 기적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

영광도서 0 1,580

“미워하면 나만 망가져!”

 

진정한 용서, 미워하기보다는 용서가 어렵다. 미워하면 내가 더 괴롭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 말로는 쉬울 수 있지만 진정으로 용서하기란 무척 어렵다. 말과 행동으로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마음에서 완전히 용서하기는 무척 어렵다. 어쩌면 말로 용서를 잘한다는 사람은 실제로는 용서를 못한 사람일 수도 있다. 진정한 용서는 마음에서 완전히 지워야 하는 거니까. 미워하기 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있어야 하는 거니까.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기가 더 쉽다. 물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건 다른 문제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건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분명한 건 누군가를 미워하면 미움을 받는 사람보다는 미워하는 내가 더 해롭다는 것, 미움은 내 마음을 개운치 않게 하고, 뭔가 묵직한 무엇인가를 마음에 안고 사는 것 같게 한다. 그러니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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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용서가 필요한 이유,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 영화에서 만난다. 

 

전직 BBC기자 마틴 식스미스, 그는 억울하게 직장에서 쫓겨난다. 분노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평소엔 전혀 흥미 없었던, 읽으면 잠이나 올 듯싶은 러시아 역사서를 집필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생각만 그렇지 그게 쉽게 진행될 리 만무하다.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그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온다. 50년 동안 충격적 비밀을 안고 살았던 필로미나가 아들을 찾는 이야기를 추적하는 프로젝트 제안이다. 모든 경비 일체를 추진사에서 제공한다는데도 마틴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는 결국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결정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마틴은 필로미나와 동행 취재를 시작한다. 필로미나의 사연은 이렇다. 그녀는 50년 전 어린 나이에 멋진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그 남자와 짜릿한 섹스의 기쁨을 알았고, 그 결과 에 취해 얻은 건 뱃속의 아이뿐이었다. 임신한 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갔다. 수녀원에서 아이를 낳은 그녀는 4년 간 노동을 해야 했다. 수년원에서 노동을 하면서도 그녀는 그 안에서 잠깐이라도 아이를 볼 수 있는 기쁨으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다른 곳으로 이동 당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그녀는 몰랐다. 단지 그녀는 그 아이를 잃었을 뿐이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죄의식, 죄인이 되어 가슴에 묻고 그렇게 50년을 살았다. 그녀는 처녀가 혼전 섹스를 했다는 죄의식, 거기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끔찍한 죄의식 때문에 수녀원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그녀는 그 속죄를 하려고 양육권 일체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섹스는 즐거웠다고, 저절로 몸이 뜨거워졌다고, 그런데 끝나고 보니 죄였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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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동행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마틴은 그녀에게 말한다. 멍청한 인간들 얘기해서 더 멍청한 인간들에게 팔기가 책을 쓰는 이유라고. 기자답게, 특종기사를 많이 썼던 예리한 기자답게 그는 이제 그녀와 동행하며 그 아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수녀원측이 아이들을 미국에 입양아로 많이 팔았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하지만 수녀원에서는 일체 함구다. 아이가 언제 어떻게 어디로 입양되었는지 전혀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알아낸 건 수녀원에서 뭔가를 많이 태웠다는 사실뿐이다. 

 

더 알아내려면 그들은 이제 아일랜드 여기서 미국으로 건너가야 한다. 조건은 생모가 가야만 그쪽에서도 그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평생 순진하게 죄의식을 안고 살았던 필로미나, 그녀가 만나는 세상은 새롭다. 그녀의 순진함이 만나는 일들은 어설프고 촌스럽고 우스꽝스럽다. 때문에 관객에겐 즐거움을 선사한다. 비행기 내 승무원, 호텔 종업원들은 직업상 아주 친절하다. 그건 당연한데도 그녀는 그들이 아주 착하기 때문으로 안다. 그녀는 그들을 자원봉사자쯤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이 걸작이다. “일등석 탔다고 일등하는 거 아니다.” 그녀와 동행하면서 마틴은 그녀에게 투자금 환수법칙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누리는 모든 경비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거라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해준다. 중간 중간 둘 사이에 위기의 순간들도 온다. 그녀가 더 이상 아들 찾기를 거부하고 귀국하려 하기 때문이다.

 

위기를 넘긴 마틴과 그녀는 아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그녀의 아들은 아주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가 최고의 학부를 나왔고, 레이건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 그 사실을 알면서 즐거워야 할 텐데 그녀는 점점 불안하다. 아들의 뒤를 추적할수록, 아들에 관해 알아갈수록 점점 두렵다. 소식을 모를 땐 좋은 상상만 했는데, 소식을 알아가면서 안 좋은 생각들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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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두려움은 예감이었을까. 마틴은 그녀의 아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슬프고도 놀라운 정보를 얻는다. 그 훌륭한 아들은 이미 죽었다는 정보다. 마틴은 절망한다. 마틴은 차마 그녀에게 그 말을 못한다. 그녀는 그가 말은 하지 않지만 뭔가 낌새를 채고 캐묻는다. 그는 진실을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아들을 추적하겠다고 한다. 이미 죽은 아들이라도 찾고 싶어 하는 모정의 발로일까?

 

아들의 사진 속에서 필로미나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아는 얼굴이다. 그 얼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마틴이다. 마틴이 미국에 특파원으로 있을 때 그녀의 아들을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마틴은 그때 만난 인물이 필로미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그런 인연이 있었다니. 그제야 그것을 알아차린 마틴에게 그녀가 그에게 묻는다. 아들의 인상에 대해서. 그러면 마틴은 하나씩 기억을 살려나간다.

 

인사를 잘했다. - 그럼 예의가 발랐군요.

 

똑똑해 보였어요. - 똑똑했군요.

 

악수를 할 때 힘이 있었어요. - 힘이 있었군요. 그 애는 예의 바르고 똑똑하고 힘이 셌구나.

 

그녀는 마틴이 기억하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 짓는다. 아들에 대한 어렴풋한 정보들을 찾는다.

 

결국 그녀는 아들의 진실을 확인한다. 그녀의 아들은 죽었으며, 불명예스럽게도 성병으로 죽었다는 것. 그는 동성연애자였다는 것. 그녀는 그 사실보다 아들의 지인들을 만나면서 더 실망한다. 아들이 한 번도 아일랜드 이야기를, 생모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더 실망한다. 다만 그녀는 그녀가 아이를 키웠더라도 그만큼 공부를 시키지 못했을 거란 것, 그렇게 훌륭하게 자라게 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에 다소나마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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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제 아들을 찾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아들은 자기를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이 서글프다. 해서 아일랜드로 돌아가려 한다. 겨우 마틴의 만류로 그녀는 이제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는 아들과의 동성연애자를 만나러 간다. 마틴이 기자 경험을 발휘하여 그녀 아들의 동성연애 상대에게 접근하지만 남자는 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이번엔 필로미나가 나선다. 그녀가 그 남자와의 만남으로 그녀는 놀랄만한 이야기를 듣는다. 무엇보다 아들이 아일랜드를 사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아들이 미국에 묻히길 원하지 않고, 아일랜드 수녀원에 묻히기를 원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래서 아들은 미국에 묻히지 않고 죽어서 바로 엄마 곁인 아일랜드에 돌아와 묻혔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그런데 둘은 미국까지 찾아 온 것이다. 

 

그들은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온다. 바로 그녀가 노동을 했던 그 수녀원이다. 세상의 긴 여행을 끝내려고 출발한 곳으로 그녀는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수녀는 이제는 노년이다. 그녀는 진정 신의 딸인가? 악마의 아집인가? 그녀는 종교적 양심으로 살아왔다고 항변한다. “그 더러운 육체의 욕정을 이기고 주님께 가까이 왔느냐?” 고. 더 분노하는 건 마틴이다. “섹스가 더럽나요? 그 가식의 위선을 벗어 버리세요. 그 위선이 죽어가는 엄마와 애들을 망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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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수녀는 모든 것을 숨겨왔다. 수녀원에 온 아이들을 미국으로 입양시킨 일, 그들을 팔아버린 일을 숨겨왔다. 애타게 아이를 찾는 이들에게도 철저히 숨겨왔다. 이름을 자주 바꾸면서 그렇게 해왔다. 그렇게 미혼모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철저히 봉쇄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섹스는 아주 중대한 범죄라는 생각으로. 왜 그 더러운 섹스를 신은 만들어 주었을까, 인간에게. 그게 없이 인류는 존속할 수 없음에도. 섹스가 왜 범죄냐고.

 

그 난동에 나중에 따라 들어온 필로미나는 말한다.

 

“나는 수녀님을 용서합니다. 50년 간 찢긴 가슴 추스르긴 어렵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긴 싫거든요. 미워하면 나만 망가지니까요.”

 

마틴이 그녀에게 “나였다면 절대 용서 못해요.”라고 말한다. 수녀원 묘지에 있는 아들의 묘석의 묘비명. “두 나라의 아들로 멋지게 살다 여기 잠들다.”

 

필로미나에게 마틴은 말한다. 이 기사는 쓰지 않을 거라고, 두 사람만의 이야기니까. 하지만 이제까지 그 이야기를 쓰기를 원하지 않았던 그녀는 오히려 그 이 이야기를 쓰라고 한다. 진실을 알려야 765556981_B1bE5D7h_0e511385480be8f4f3d72하니까.

 

 “나는 수녀님을 용서합니다. 50년 간 찢긴 가슴 추스르긴 어렵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긴 싫거든요. 미워하면 나만 망가지니까요.”

 

그녀의 그 말들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 마음이라면 세상에 용서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 그래 용서하는 마음이 편하다. 분노를 안고 사는 것, 미움을 안고 사는 것, 원망을 안고 사는 것이 더 마음 아프고 불편하고 자신만 망가뜨리는 것일 게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미워하면 나만 망가진다는 말 한 마디를 실감나게 거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그 말이 그저 지어낸 말이 아니라 그녀의 진심에서 나오는 말이니까. 어린 나이에 아이 엄마가 되고, 그 아이로 인해 죄의식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그녀, 그래서 아이의 이름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고, 차마 찾을 생각도 못했던 그녀, 그토록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보고 싶고 그리우면서도 가슴에 묻었다가 그토록 용기를 내어 찾았건만, 그 아이는 결국 살아서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바로 자기 옆에 와서 묻혀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 모든 일들이 종교라는 틀에 갇힌 이들의 폭력이었다니, 그것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죄악이며, 가련한 인간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이 종교라는 틀이라니. 진정 하나님은 어느 편일까, 이때 예수라면 누구 손을 들어줄까? 주여 섹스는 인간이 행해서는 안 될 죄악입니까? 수녀만이 의인입니까? 미혼모는 도무지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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