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30- 러브 배틀, 분노를 내 뿜듯 사랑에 집중하라
사랑의 시작은 어디일까, 그리고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엔 부드럽게 다가선다. 그렇게 사랑을 시작한다. 그리고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서로 순한 양으로 변한다. 둘 사이엔 평화로움이 자리 잡는다. 아마도 이게 사랑의 보편적인 공식이리라. 그러나 사랑엔 보편 말고도 아주 다양한 유형이 상존한다. 늘 사랑 사건이 벌어진다. 사랑 때문에 싸움이 일고, 사랑 때문에 아주 온갖 잡다한 일들이 벌어진다. 아주 복잡다단한, 어쩌면 인생사 중에 가장 복잡한 게 사랑이 아닐까?
그럼에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을 탐한다. 사랑은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랜 본능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과 함께 태어나고 사랑으로 살다 사랑을 두고 떠난다.
여자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온다. 아버지의 장례는 끝난 후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그리움으로 혼란 속에 있던 그녀는 옆집에 여전히 사는 옛 연인과 마주친다.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게 시빗거릴 수는 없다.
여자는 혼란스럽다. 이유를 모르는 혼란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피아노를 갖고 싶다. 그걸 차지하려면 가족들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녀의 가족이라곤 여동생과 오빠다. 그런데 오빠는 호칭만 나오고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혼란스런 상황에서 옆집 남자는 여자에게 연인관계를 다시 시작하자고 설득한다. 여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분노로 가득 찬 그녀는 자신을 어쩔 줄 모른다. 그녀 안에 쌓여있는 본질은 무엇일까, 그녀 안에 있는 그 무엇,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분노를 남자는 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분노, 아버지를 향한 분노로 마음이 혼란스럽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이면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 그런 애증이다. 그런데 그게 너무 강렬하여 그녀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녀는 그것을 남자에게 쏟아낸다. 싸움이란 형식을 빌려서 남자에게 분노를 푼다. 해서 둘은 만나면 드잡이이다. 장난이 아닌 싸움이다. 싸움의 장소는 상관없다. 방이든 때로는 진흙 펄에서 흙투성이가 되도록 드잡이를 한다. 사랑 싸움도 아니도, 지치도록 서로 집어던지고 조이고 밀쳐내는 싸움을 벌인다. 마치 서로 죽이려는 원수지간인 듯하다. 그렇게 둘은 날마다 하루치의 분노를 쏟아내듯 드잡이를 뜬다. 그렇게 반복하는 둘의 싸움, 늘 싸움에서는 여자가 패한다. 늘 패하면서도 남자와 싸운다. 실상 그것은 자신의 가족과의 싸움이다. 가족에 대한 분노를 남자에게 쏟아내는 것이다.
다음에는 아버지와의 싸움이다. 몰론 아버지는 죽은 후라 아버지와 싸울 수는 없다. 아버지의 대용물이 바로 그 남자다. 여자를 이해하는 남자는 그녀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여자는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풀어야 하는 문제, 남자는 사랑하던 여자를 보내놓고는 발기불능상태다. 젊은이임에도 불구하고 난처한 일이다. 때문에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기에 사랑싸움 대신에 몸싸움을 한다. 서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허구 헌 날 싸움이다. 두 사람의 문제를 한꺼번에 풀기 위하여 두 사람은 싸운다. 싸움이 시합이 되고, 싸움수업이 된다.
그러면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변해 간다. 둘은 점점 가까워지며, 남자는 여자의 내면에 품고 있던 가족에 대한 분노를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사랑인지 싸움인지 모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둘은 내면에 가지고 있던 분노와 증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서로에게 폭발시킨다. 그들의 육체적 행위의 농도는 짙어지고, 폭력적 행위는 점점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여자가 남자의 힘의 상징인 허리띠를 뺏음으로써 여자가 처음으로 승리한다. 그러면서 여자는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이들 사이는 가족과의 싸움에서 남자와의 싸움으로 변했고, 그러면서 사랑 수업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게 맺어진 두 사람의 러브 배틀은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강렬하다. 화산폭발처럼 강렬한 남녀의 관계, 그렇게 이 영화는 끝난다.
격한 몸싸움이 거의 전부인 이 영화는 원래 프랑스 영화로 ‘내 싸움의 소동’ 정도일 것이다. 피상적으로는 몸싸움이 전부인 영화지만 실제로는 심리학적인, 본능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랑이란 자아보존을 위한 치열한 삶의 투쟁으로, 나의 생존을 위해서는 상대를 파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보면 나를 지키기 위한 자기보존, 그것이 안 지켜졌을 때 타오르는 분노, 그 분노는 가장 먼저 부모에게로 향하고, 가족에게로 향한다. 사랑이란 어쩌면 상대를 향한 분노의 폭발이라 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는 상대를 아끼고 싶은 마음, 상대를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지만 무의식은 상대를 물리침으로써 나를 보존하려는 격한 싸움이 사랑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를 파괴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본능과는 무관하게, 무의식과는 무관하게 아름답기만 한 사랑, 환희를 주는 사랑, 서로를 행복에 침잠하게 하는 이 사랑, 더구나 유기체인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이 사랑은 늘 신나고 즐겁고 환희롭고 싶지만 사랑은 늘 그렇지만은 않다. 부드럽게 시작한 사랑이 깊어지는가 싶다가 어느 날 문득 미움이 싹트기도 한다. 평화로이 시작한 사랑이 싸움으로, 전투로 이어져 걷잡을 수 없는 전쟁으로 벌어져 비극적인 결말을 맺기도 한다. 사랑이란 이렇게 시작을, 끝을 잘 알 수 없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 사랑하는 일이다.
이 영화의 사랑은 정 반대다. 제목처럼 러브 배틀이다. 실랑이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시합으로, 싸움수업으로, 그러고 나서야 사랑수업으로 바뀐다. 인간의 욕망을 뿌리 채로 뽑아내는 듯한 사랑의 폭발, 그래야 우리 삶은 분출구를 찾는 것일까, 사랑은 분노의 표현이며, 분노는 사랑의 표현일까, 다른 데서 입은 분노는 언젠가는 풀어내야 하는 것일까.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 하는 건 맞다. 분노로 입은 상처는 분노로 풀어야 하듯이, 사랑으로 입은 상처는 사랑으로 풀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