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33- 초대 받지 않은 손님, 이성과 지성의 아름다움을 갖춘 엘리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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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칭형 존재로 양쪽이 균형이 잘 맞는 듯한 외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대칭이 잘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인간은 사고체계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은 둘만 만나도 벌써 의견 대립이 일어나고, 셋이 만나면 시끄럽고, 그 이상이 만나면 파를 짓는다. 때문에 하나의 문제가 생기면 답은 하나여야 하는데 해결책이 다분하다. 거기서 갈등이 일어난다. 마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늘 분란이 일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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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랑을 맘껏 받으며 자란 백인 처녀 조이는 여행 중에 우연히 장래가 촉망되며 유능한 의사이긴 하지만 흑인 존과 만난다. 우연을 기회로 둘은 깊은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라면 하등의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존은 결혼한 적이 있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처와 아이가 사고로 죽은 탓에 지금은 혼자이긴 하다. 게다가 흑인이라는 점이 가장 걸림돌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나이도 문제 삼을 텐데 이 영화에서는 나이는 전혀 언급이 없다. 나이 차이가 14년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그건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다는 건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다음으로 이들 가정을 살펴보면, 조이의 아버지 맷은 신문사 사장으로 인텔리 중의 인텔리이다. 어머니 크리스티나, 그녀는 이들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다. 반면 존의 부모는 평범한 집안이다. 그의 아버지는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학력으로도 천지차이다.

 

어느 날 갑자기 조이가 존을 집에 데리고 온다. 그리고 그 하루에 많은 일이 일어난다. 조이가 그와 결혼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녀의 가족 모두 무척 혼란스럽다. 특히 조이의 유모는 흑인인데, 그녀는 흑인은 좋지 않은 사람들이란 편견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과 같은 흑인임에도 더 부정적이다. 반면 조이의 엄마는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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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했던 조이의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온다. 그가 들어오자 유모는 “지옥문이 열렸어요.”라고 말한다. 조이의 아버지는 어떻게 감정의 정리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조이의 어머니는 어차피 막아도 조이의 성격으로 보아 결혼할 것이 분명하니 허락하라고 청한다. 조이는 그 시한을 오늘로 못 박는다. 불과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부모의 의사를 결정하란다. 그날 저녁 존은 비행기로 로마로 가기 때문에 자신도 따라갈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영문도 모르는 존의 부모들이 그곳에 오기로 약속까지 잡아 놓았다면서 조이와 존은 외출한다.

 

일은 하루 안에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조이와 존이 먼저 존의 부모를 공항에서 만나 함께 온다. 존의 부모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존의 엄마는 긍정적이다. 반면 존의 아버지는 바보 같은 짓이라며 화를 낸다.

 

조이의 아버지 맷은 아무래도 흑인과 결혼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할 생각뿐이다. 크리스티나 역시 흑인 사위가 반갑진 않으나 그래도 딸을 믿기에 딸의 뜻대로 따르려고 한다. 다행이라면 생각이 깊은 양가 부모들, 그들은 이 문제를 이성적으로서 해결하고자 여러 모로 고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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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는 철부지처럼 자기감정만을 내세우며 시한을 정하고 결정을 내리라고 압박한다. 반면 존은 조이를 사랑하지만 부모가 반대해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둘이 의견통일이 되어도 고민일 텐데 존의 의사에 조이의 아버지 맷은 더 고심한다. 크리스티나는 어차피 반대해도 딸은 결혼할 것이라며 멧에게 허락해주라고 압박한다.

 

물론 존의 어머니의 생각도 크리스티나와 같지만 그녀는 솔직한 성격이라 아무 말이고 한다. 그녀는 맷에게 ‘남자들은 문제점만 보려한다, 성적 관심사가 없어지면 다 잊는다’는 식으로 남자들을 안 좋게 말하여, 맷의 기분을 안 좋게 한다. 맷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신의 친구인 사제신부에게도 조언을 구한다. 그러나 사제신부도 진부한 말로, 맷을 마지 신도 대하듯 훈계조로 설득만 하려 한다. 때문에 맷은 자신도 나름 지성인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상한다. 게다가 존의 아버지는 일단 같은 의견인 것처럼 이야기 하며 그들의 결혼을 허용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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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뜬 존의 아버지는 이제 존과 둘이 대면한다. 아버지의 진행상황을 들은 존은 아버지에게 직접 자기에게 그런 의사를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말하게 한다며 비겁하다는 식으로 말한다. 때문에 존과 존의 아버지가 의견 충돌한다. 자신을 탓하는 아들이 야속한 존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 이제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그 은혜를 알아야 한다며 핀잔을 준다. 존을 키우기 위해 고생한 세월을 봐서라도 자식은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존은 자신은 아버지에게 빚진 것이 없단다. 아버지가 자기를 낳은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 셈이니 오히려 아버지가 빚쟁이란다. 그것으로 빚은 이미 끝났으니 자신은 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니라며, 그런 주장은 아버지의 규칙이지 자신의 규칙은 아니라고 대든다. 그럼에도 자신은 아버지를 사랑한다며 “제 아버지시잖아요. 아버지는 저를 흑인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전 자신을 남자라고만 생각해요.”라고 간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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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고 꼬인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맷이 “내가 앞장서야겠군!”하며 나선다. 그가 모든 사람을 거실로 모은다. 그리고는 조목조목 한 사람 한 사람의 잘못을 지적한다. 유모가 생각 없이 “지옥문이 열렸어요.”라고 말하여 감정을 불러일으킨 점, 딸이 갑자기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결론을 강요하는 언행, 존은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로 혼란스럽게 한 점, 아내는 현실적인 문제는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은 전혀 무시하고 낭만적인 몽롱한 상태에서 이성적 사고가 무너져 있으면서 딸의 편만을 들며 자신에게 압력을 넣은 점, 그의 친구인 사제신부는 진부한 말로 자신의 지성을 무시하고 설득하려고만 한 점, 존의 아버지는 이성적이긴 하나 그들의 결혼을 허락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자기를 무시한 점, 존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감정은 여자만 평생 간직하고 남자는 그렇지 않을 거란 편견으로, 남자는 그런 걸 기억하지 못할 걸로 생각한 점 등을 집어낸다.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아주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며 객관적이다. 그는 신문사 사장답게 부모로서의 마음, 한 남자로서의 마음, 한 가장으로서의 마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객관적이며 논리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는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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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로서 딸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딸은 당사자로서 생각하고 자기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보는 것이고, 그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의 마음 또한 헤아려야 한다고. 이제는 조이의 감정, 존의 감정, 즉 당사자들의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느냐가 중요하다. 두 사람이 사랑하느냐는 우리가 느낀 것의 절반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문제다. 그것도 감안해야 한다. 분명 현실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두 사람이 헤쳐 나가야 한다. 편견과 증오, 무시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편견을 가지고 무시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을 탓하지 말고 서로 의지하며 이겨나가야 한다. 최악이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가진 걸 알고, 감정을 알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상황을 아주 조리 있게 풀어낸다.

 

아내와 딸, 조이와 존, 그리고 흑인 가정부 아주머니까지 모든 사람들로부터 각기 다른 의견으로 압력을 받고 있던 맷은 결국 명쾌한 결론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인한 모든 문제, 즉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결국은 두 사람의 사랑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그의 결론은 아주 설득력이 있다. 모두 수긍하고, 이들은 모두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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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잔소리를 덧붙일 필요가 없는 영화다. 어떤 갈등이 증폭되어 드라마틱하다거나 반전이 있다거나 하는 재미보다는 소소한 재미를 주는 영화다. 일상적인 가정에서 얼마든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잔잔한 재미로 푼, 한번쯤 생각해야 할 좋은 영화다. 흑백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 의견이 다를 때, 그 다른 의견을 어떻게 조율하는 게 현명한지 영화는 이야기한다. 그 모든 상황, 각기 다른 생각들, 이것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문제를 풀어내는 주인공 맷의 지성을 영화는 보여주고자 한다.

 

진정한 지성인은 모욕 앞에서도 흥분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편견을 갖지 않으려면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하나하나 조목조목 냉정하고 철저하게 생각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진정한 지식인의 좋은 모델이 조이의 아버지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균형을 갖춘 지성인이 있을까 싶다. 모두 지성인을 흉내 내지만, 진영 논리에 따라 편견을 가지고 자기 편 옹호만 하는 지식인들, 그들은 지식인이긴 해도 지성인은 아니다. 먼저 자신의 주장을 세우고 다른 말들은 참고사항정도로 들어야지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열린 자세로 상대의 의견을 차분히 듣도 난 다음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자세, 그것이 진정한 지성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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