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44- 로맨틱 홀리데이, 인연은 따로 있는 걸까?
사랑은 설레게 하고, 미칠 듯 그립게 하고, 목이 타고 숨이 멎을 것처럼 환희롭게도 한다. 또한 때로는 가슴이 무너지게 하고, 죽이고 싶도록 밉게도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참 좋다. 사랑은 참 나쁘다. 그래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으로 사람은 눈멀고 귀먹고, 벙어리가 된다. 그렇게 사랑하다 시들고 떠난다. 사랑은 대부분 그렇게 둘이 시작하는 것이지만 혼자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서글픈 사랑도 있다. 걸리면 죽을 것 같은 짝사랑이다.
정말 운명 같은 만남이 있을까, 정말 천생연분이란 것이 있기는 한 걸까, 결혼하고 10년만 넘으면 90%는 사랑 없이 정으로 산다는데, 인연이 있긴 할까? 세상에는 수많은 아니 수십억 쌍이 있다. 그들은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묶여 짝을 이루고 살아간다. 깨소금처럼 사는 이들도 있지만, 겉으로는 아주 잉꼬부부처럼 다정한 척 하지만 집에 들어가면 방을 따로 쓰는 이들도 있다. 원수지간처럼 으르렁 거리는 이들도 있다. 사랑은 때로는 믿을 만하고, 때로는 믿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랑의 인연이 있을 터다. 단지 그 인연을 제대로 찾지 못하든, 인연인 줄 알았는데 착각을 한 것이든, 세상 어딘가엔 분명 아주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이 영화를 보면 인연이란 따로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또 살아봐야 알겠지만.......
“사랑에 관한 글들의 대부분이 진실이라는 걸 알았어요.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죠. ‘여행의 끝에는 새로운 사랑과의 만남이 있다.’ 정말 특별한 구절이에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
“한 남자와 여자가 각자 잠옷을 사러 갔어요. 남잔 점원에게 이렇게 말해요. ‘난 바지만 사면 돼요’ 여자는 이렇게 얘기하죠. ‘난 윗도리만 사면 돼요’ 그 순간,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게 될 거요. 그게 바로 운명의 만남인 겁니다.”
-아더(엘리 월러크)
셰익스피어의 그럴듯한 명구로 영화는 막을 올린다. 이 영화의 암시다. 두 명의 여주인공이 엮어가는 이 영화는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빼어난 미모에 재력까지 갖춰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커리어 우먼 아만다, 그녀는 돈, 직업, 미모 모든 걸 갖췄지만 애정전선은 늘 먹구름이다. 완벽한 듯 보이는 그녀의 고민은 항상 꼬이기만 하는 연애문제다. 그녀는 한때 남자친구를 집에 들여서 생활 했는데 이 남자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그 후, 그녀는 아무리 울려고 해도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눈물도 안 나온다. 아무리 슬픈 것을 보면서 울어 보려 해도 안 된다. 그녀는 울려고 애를 쓰지만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울려고 해도 울 수가 없다? 복선이다. 그녀가 울음이 나온다면 그녀는 제대로 인연을 찾은 것이니까. 그러니까 이 여자의 사랑한 일들을 추적해 봐야 한다. 그녀의 추궁에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던 그 남자, 결국 바람을 피웠음을 시인하고 그녀에게서 쫓겨난다.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어딘가로 떠나고만 싶다. 그래서 그녀는 무작정 ‘홈 익스체인지’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여자 인터넷으로 홈 익스체인지를 신청한다. 기왕이면 멀리 가고 싶어 한다.
아만다와 다른 여자 아이리스, 인기 웨딩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지독한 짝사랑에 걸려든 여자 아이리스, 혼자 일방적인 사람을 한다. 그냥 그 남자만 보면 좋다. 그녀는 오직 그 남자만 사랑한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전에 그 남자에게 정말 운 좋게 미리 사두었던 선물을 건넬 찬스를 얻는다. 지난해엔 그 선물을 4월에야 전했는데, 올해는 참 운이 좋다.
그런데 그녀의 운은 거기까지다. 회사 전체 회식 모임에서 사장이 아이리스에게 특종을 쓸 기회를 준단다. 그런데 그 중대발표란 게 그녀가 짝사랑하는 바로 그 남자, 그녀가 준비한 선물을 받은 그 남자, 그녀가 지독하게 짝사랑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그 남자에 대한 발표다. 그녀가 맡은 특종이란 게 그 남자에 관한 기사, 즉 하필 그 남자의 약혼발표 기사를 서야 한다. 아이리스가 아닌 다른 여자와 그 남자의 약혼 발표라니!
이 여자라고 짝사랑만 하라는 법이 있을까, 그녀에게도 분명 혼자서만 사랑하는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둘이 서로 사랑하는 일이 분명 생길 거다. 단지 지금 보이지 않을 뿐이다.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지만 아이리스는 순진하게도 이런 일이 생긴 건 자신이 부족해서라 생각한다. 그녀 역시 아만다처럼 이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먼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한다. 그런데 마침 홈 익스체인지 신청이 온 것이다. 바로 아만다로부터이다.
그래서 두 여자는 2주 동안 서로 완전히 집을 바꾸어 생활하기로 한다. 그래 사랑에도 터가 중요하다. 되는 일이 없으면 이사를 가면 잘 되는 수도 있잖아. 풍수지리란 게 그런 걸 알아내는 거니까. 분명 잘 났음에도 사랑의 배신을 당한 여자, 그래 잘났음에도 짝사랑만 하다 만 여자, 이 두 여자가 집을 바꾼다. 물론 잠깐이지만. 집을 바꾼 만큼 그녀들의 사랑의 인연도 바뀔 수 있을까?
6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살던 두 여자, 로스 엔젤레스의 아만다는 영국에 있는 아이리스의 작고 아담한 전원주택으로 두 주간 살러 가고, 영국의 작은 저택의 아이리스는 으리으리한 아만다의 미국 대 저택으로 간다. 화려한 삶을 살던 아만다는 소박한 곳으로, 소박하게 살던 아이리스는 으리으리한 화려한 저택으로, 서러 집을 바꾸어 두 주간 생활을 시작한다.
영국으로 온 아만다에게 인연이 찾아든다. 다정하고 매력적인 외모와 눈빛으로 아만다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는 그레엄이다. 그는 부드러운 눈빛에다 따뜻한 미소, 유머감각까지, 다양한 매력을 갖춘 남자다. 바로 아이리스의 오빠다. 그는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늦은 밤 아이리스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가 기대한 여동생이 나오지 않고 처음 보는 여자가 나온다. 집을 바꾼 아만다이다. 푸른 눈의 아름다운 아만다, 그는 첫눈에 아만다에게 호감을 느끼고 특별한 데이트를 즐긴다. 둘은 서로 금방 가까워지고 정들어 사랑을 할 만큼 한다. 그럼에도 아만다는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떠난다. 남자는 물끄러미 아쉬움의 눈물을 훔치며 그녀를 보낸다. 그녀가 찬 택시는 눈길로 달려간다. 그런데 그녀는 눈물이 난다. 그냥 가려니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울려고 애를 써도 울음이 나오지 않던 눈물이다. 그녀는 택시기사에게 차를 돌리라고 한다. 택시는 다시 돌아선다. 그러나 눈길이라 잘 달리지 못한다. 그녀가 내려달라 한다. 그녀는 내려서 달린다. 좀 전에 머물던 집으로, 정원의 문을 연다. 그리고 집 앞문을 연다. 드디어 통나무집 문을 연다. 남자를 찾는다. 둘은 기쁨으로 포옹한다. 아만다는 기쁨으로 울고 있다. 남자도 눈시울을 적신다. 사랑의 기쁨으로 드디어 눈물이 나온다. 참 이상한 일이다. “굳이 연말을 돌아가서 보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해서 돌아온 아만다와 그레엄, 제대로 만난 인연인 것 같다. 서로 진실한 사랑인 것 같다. 처음 남자와는 잘못 맞춰진 악연이라면 이 남자는 제대로 맞춰진 인연인 것 같다.
아이리스는 어떨까? 그녀는 아만다의 친구이자 영화음악 작곡가인 마일스를 만난다. 푸근한 외모와 따뜻한 유머감각을 지닌 섬세한 감수성의 이 남자와 서로의 감성을 조금씩 이해하며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혼자만 사랑하고 슬퍼하던 아이리스에게도 사랑을 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늘 소극적이라 고백도 못한다. 그녀가 늘 짝사랑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의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다. 이 남자라도 용기를 내면 좋을 텐데, 너무 순수한 이 남자도 마음만 끓인다. 그렇게 답답한 시간만 간다. 그렇지만 그녀는 안다. 이 순둥이 남자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그녀는 사랑을 받는다는 기쁨으로 더는 고백을 참지 못한다.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슬픔에서 벗어나 서로 사랑하는 기쁨을 얻은 그녀, 그녀 역시 아름다운 인연을 얻는다.
이제 엔딩이다. 아만다와 그레엄이 있는 집으로 아이리스가 돌아온다. 사랑을 시작한 남자와 함께 돌아온 것, 그레엄의 자녀들, 그리고 아만다와 그레엄, 아이리스와 마일스, 서로 어울려 춤을 추며 흥겨운 연말 파티로 기쁨을 나누며 영화는 끝난다. 그야말로 로맨틱 홀리데이다.
서로가 집을 바꾸어 지낸 두 주간, 기본전환과 함께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는 설정의 이 영화, 나름 재미있다. 집을 바꾸면 성격도 바뀌는 걸까? 서로 상반된 성격의 두 여자, 집을 바꾸자 서로 마치 보완이라도 하듯 성격이 바뀌어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그만큼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성격도 환경에 따라 달라지긴 한다. 물론 사람은 분위기를 잘 타는 존재이기도 한다. 집을 바꾼다는 것은 인생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다는 무의식의 작용이 아닐까.
그래 가끔은 분위기를 바꾸어 볼 일이다. 일에 지치고 힘들 때, 사람들로 힘에 겨울 때, 그럴 땐 여행을 떠나서 사람들과 멀어져 보는 거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꾸어 보는 거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고 하지 않던. 그렇게 울려고 애를 써도 울음이 나오지 않던 아만다가 드디어 울음을 얻자 사랑을 얻는다. 인연을 만난다.
반면 환경을 바꾸자 짝사랑만 하던 아이리스는 감히 사랑을 고백하여 사랑을 얻는다. 이 두 여자의 서로 다른 환경, 그리고 엇바뀐 환경, 그래서 둘은 성격이 바뀐다는 설정, 일리가 있다. 아만다의 화려한 저택, 그 저택이 완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어도 생활하는 동안엔 나의 것이란 의식은 자신감과 여유를 갖게 한다. 반면 화려함 속에 살다가 소박한 환경을 만난 아만다는 당연히 그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보다 감성적으로 변하는 건 당연하다. 이처럼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오랜 시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잠깐의 환상적인 풍경을 만나는 그 순간엔 완전히 다른 기분에 젖을 수도 있으니까.
홈 익스체인지로 얻은 사랑이 사랑하는 기쁨의 눈물샘을 열고, 용기를 주어 자신의 핸디캡에서 벗어난다. 환경 변화로 인한 힘이지만 그 힘은 사랑을 열고 사랑의 힘은 사람의 마음을 확 바꾼다. 사랑의 위대함이다. 사랑에도, 환경에도 익스체인지가 필요하다. 인생에도 풍수지리가 필요하다. 만남에도 익스체인지가 필요한 걸까? 이 영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