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45- 집으로 가는 길,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인 일그러진 실화
뭔가 말이 안 되는 짓을 하면 '너 영화 찍냐?"라고 말들 한다. 그만큼 영화는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이란 인식이 많다. 하지만 세상에는 영화보다 더 말이 안 되는 현실 또는 일들도 많다. 그러니까 영화나 소설은 터무니없지만 실제사건이나 있음직한 사건을 다룬다. 때문에 영화나 소설은 개연성이 있는 사건을 창조해 낸다.
집으로 가는 길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불편하다. 아니 불편하다기보다 열 받는다. 공무원이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영화다. 공무원, 정말 이런 공무원들이 있다면, 그런 공무원은 ‘공적으로 무노동으로 월급 받아 사는 사람’으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만큼 등장하는 공무원, 대사관 직원들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보이는 폭력이 참 더럽고 치사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지난 2004년 프랑스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검거돼 2년간 타국에서 감옥살이를 했던 평범한 가정주부 장미정 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한다. 평범한 주부가 일순간 마약 운반범이 돼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외교통상부의 무관심 속에 철저하게 외면당한 현실을 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까지에는 영화에서처럼 KBS2 추적 60분에서 다루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고스란히 묻혔을 것이고, 실제 주인공은 더한 고통을 당해야 했을 것이다. 역으로 지금도 장씨와 같이 어딘가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당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분노가 치민다.
정말 공무원들 각성해야 한다. 비록 나라에 세금 내는 것이 적은 약자라 해도 그들도 국민이란 것, 오히려 보호를 받아야 할 이들은 그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강자들, 부자들, 권력자들은 보호를 해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자기 보호를 하며 곧잘 살아간다. 그렇지 못한 약자들은 자기 보호는커녕 오히려 덤터기를 쓰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희생당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공무원들이여, 당신들은 오히려 약작의 편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강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모든 초점을 거기에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비열하고 나쁜 짓이다.
여기에 복선을 하나 깔았다. 정연이 남편이 운영하는 카센터에 갔다가 거미를 본다. 길바닥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미, 그런데 그녀가 거미를 보호하려고 하다가 방심한 탓에 그만 그 거미를 발로 밟아 죽이고 말았다. 그 장면을 통해 이 영화는 암울할 것이란 암시기 보인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그녀가 갇힌 마르티니크의 감옥에 거미와 그녀의 관계는 상관물로 반대 입장이 된다. 기왕 복선을 깔 양이면 10주년 기념 여행을 카리브 해로 가겠다는 약속을 앞에서 했으면 보다 작품의 짜임새는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복선은 영화 거의 말미에 언급되어 복선이 관객에게 너무 쉽게 전달되는 단점이 있었다.
2004년 10월 30일,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프랑스 경찰은 한국인 주부를 마약범으로 검거한다. 그녀는 마약 운반범 혐의를 받는다. 부인의 여지는 없다. 그녀가 그렇게 체포당한 데에는 무척 아픈 곡절이 있다.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룬 부부, 부부는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카리브 해변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소박한 꿈을 꾼다. 결혼하고 이제 4살 딸을 두고 나름 행복하다. 남자는 카센터를 운영하며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난다. 남편이 후배의 보증을 섰는데, 그 후배가 그만 자살을 하는 바람에 그 모든 빚을 그가 떠맡는다. 5000만원을 보중 서 준 것으로 알았으나, 2억이나 된다고 한다. 부부는 살던 집에서 쫓겨나 좁은 셋방으로 이사를 한다. 남자가 운영하던 카센터도 넘어간 것은 물론이다. 완전히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일가족은 난감하다.
이들의 사정을 아는 남자의 또 다른 후배가 그를 유혹한다. 원석을 배달하는 일을 하란다. 그저 한 이틀 투자하면 400만원을 벌게 해준다는 제안이다. 그런데 그게 코카인일 줄 누가 알았으랴.
그랬다. 그녀가 체포당한 이유는 그거였다. 그녀는 그걸 몰랐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졸지에 체포당한 것이다. 파리의 오를리 공항에서 체포당한 그녀는 철저히 혼자 버림을 당한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다.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대사관은 전혀 관심이 없다. 완전 딴청만 부린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그녀의 끔찍한 교도소 생활은 시작된다. 자신의 교통보다 돌봐야 할 네 살 딸의 모습이 눈에 밟혀 마음이 아리다. 시원하게 재판도 받아보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간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얼마나 여기 있게 되나요? 면목 없지만 정말 억울해요. 그게 마약인 줄 알았으면 절대 저 그런 일 안 했어요.”
한국에서 실제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위안이었지만, 다행히 그 범인이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배달만 했다는 증언을 해주었지만, 그 검증자료는 대사관에서 증발된다. 해서 재판도 받아보지 못하고, 또 시간만 흐른다. 남편은 남편대로 애를 태우고 이들 가정은 엉망으로 변한다. 월세방에서마저 쫓겨난 그녀의 남편과 딸의 고통도 이만저만 아니다. 그렇게 혹독한 시간만 무심하게 흐른다.
재판도 받아보지 못한 채 그녀는 2005년 1월 31일 마르티니크 교도소로 이송 당한다. 프랑스에서 아주 먼 카리브해, 그러니까 중남미 쯤 되는 곳이다.
“혜린 아빠... 잘 있어요? 혜린이도 잘 있지? 분명히 4개월 후에 파리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했는데...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래서 하루가 너무 안 가. 재판이 또 4개월 연기됐어요. 이번 판사 심리엔 변호사도 오지 않았어... 매일... 똑 같은 꿈을 꿔. 출입구도 입구도 없는 방안에 갇혀있는 꿈.”
그녀가 남편에게 간신히 통화한 한 마다 한 마디가 아프다. 그런데도 대사관은 무심하다. 그들은 왜 근무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2006년 2월 14일 그녀는 재판 한 번 받아보지도 못한 채 가석방을 받아 빈촌에서 아주 비참한 생활을 한다. 그녀는 보호관찰 하에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대기할 뿐 달리 도리가 없다. 서류가 넘어와야 재판을 받는데 언제나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그 와중에 그녀는 여자 교도관으로부터 강제로 성추행을 당한다. 동성연애자인 교도관이 외부로 그녀를 싣고 나와 강제로 추행하려 한다. 그 사이 그녀는 수갑을 찬 채로 도망을 친다. 그렇게 해서 간 것이 카리브의 쪽빛 바닷가다. 그녀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여행오고 싶어 한 여행지. 오긴 왔으나 비참하게도 온 셈이다.
결국 그녀를 구한 건 네티즌이었다. 대사관 측은 카리브에는 교민이 없다고 했는데, 네티즌들의 활동으로 그녀의 통역을 도울 동포를 찾아준다. 이들이 그 사연을 올리면서 방송국 피다가 관심을 갖고 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자기 면피를 하기에 급급하다. 방송극 일행을 따라온 남편과 그녀는 그 덕분에 카리브 해변을 걷는다. 기꺼이 기쁜 여행이 아니라 씁쓸한 여행이다.
그녀의 사연이 언론에 보도 되면서 그나마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지 2년만에야 재판을 받는다. 그녀가 최후 진술을 한다.
“아내를 잃은 제 남편, 엄마 없이 자라야 했던 제 딸, 이제 돌아가서 제 죄를 갚고 싶습니다. 제발 제 가족에게 아내를 엄마를 돌려주세요. "Je veux rentree!" 주뵈헝트레 셰 모아"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녀가 암기해서 할 수 있는 한 마디다. 그녀는 징역 1년형을 선고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2년을 살았기 때문에 즉각 석방 명령을 받는다. 그렇게 어렵게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픽션보다 말이 안 되는 실화, 그래서 더 열 받게 한 영화다. “혜린 아빠... 잘 있어요? 혜린이도 잘 있지? 분명히 4개월 후에 파리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했는데...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래서 하루가 너무 안 가. 재판이 또 4개월 연기됐어요. 이번 판사 심리엔 변호사도 오지 않았어... 매일... 똑 같은 꿈을 꿔. 출입구도 입구도 없는 방안에 갇혀있는 꿈.”
그녀의 한 마다 한 마디가 비수처럼 폐부를 찌른다. 그런데도 대사관은 무심하다. 그들이 왜 거기에 근무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들의 행태, 주먹이 앞서야 할 것 같은, 그래야 온당할 것 같은 울분이 솟는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을 녹으로 받는다. 그 돈을 받아 생활하는 대신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명을 받는 게 공무원이다. 하급말단 공무원부터 대통령에 이르는 최고급 공무원까지, 그들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는다. 그리고 단지 임기 내에 또는 연한 내에 직을 부여받는다. 그럼에도 그걸 망각하고, 국민의 봉사자가 아니라 군림하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파리 구치소에서 3개월, 마르티니크 교도소에서 1년, 그리고 가석방 생활 9개월. 한국에서 비행기로 22시간, 대서양 건너 12,400km 떨어진 낯선 곳에서 보낸 756일간의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한 여인의 피맺힌 절규가 들어 있는 영화보다 더 말이 안 되는 현실, 이 영화를 모든 이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특히 공무원들이 많이 봤으면 더 좋겠다.
“내 아내를 돌려주세요.”
“내 엄마를 돌려주세요.”
“저는...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지금도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 참 갑갑하다. 우리처럼 약한 사람들은 무엇에 의지하며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지 말이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영화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