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48- 더 웨이(The way), 참다운 인생을 가르쳐 준 울림
The Way/ 안젤로
너의 눈 속엔 슬픈 영혼이 보여 나의 영혼 속에선 나를 찾을 수 없어 또 다른 세상은 없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두려워 내가 꿈꾸던 내일이 오지 않을까봐 하지만 다시 걸어야 할 나의 길을 위해
눈물을 묻어 버리고 일어나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날아가
끝없는 이 길이 나 힘들어도 포기하진 않아 난 꿈이 있어 멈춰서진 말아 작은 빛을 따라 내 맘을 열어.
아프게 살아온 세상 속 나 숨 쉬는 이유에 대해 대답하지도 못한 채 지금 이대로 내가 갈 순 없잖아
눈물을 묻어버리고 일어나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날아가
끝없는 이 길이 나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아 난 꿈이었어. 멈춰서진 말아 작은 빛을 따라 내 맘을 열어.
지난 시간들은 다 던져버려 오늘을 시작해 내가 원하던 세상이 있어 느껴봐 THE WAY
길을 걷는다. 길이란 단어는 단순하지만 세상엔 얼마나 많은 길들이 많아. 그 길을 혼자 걷노라면 가끔 길은 마치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이어지면 좋을 테지만, 언젠가는 멈추게 될, 아니면 어딘가에 끝날 길, 어느 길이든 한 시간 이상을 혼자 걸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끔 거리에서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상이 좋다는 둥,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라는 둥, 처음엔 그들의 정체를 몰라서 그 말들이 굉장히 반가웠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니 그들은 나에게 말한다. “도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길이 한자로 도라! 도,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우리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길을 가면서 삶을 생각한다. 인생을 생각한다. 삶은 그 자체가 도다.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The Way>다. 그냥 길이라고 해석할까, 아니면 그 길이라고 해석할까? 한 아버지가 길을 걷는다. 바로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나선다. 그가 순례의 길을 선택한 사연인 즉,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이 제시한 삶을 살았으면 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의 제안을 거부하고 집을 나갔다. 그랬는데, 아버지는 그 아들의 부음을 들었다.
아버지 톰은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 그것도 외국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들의 시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프랑스의 생장, 아들은 뭔 일인지 모르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다가 시체로 발견되었단다.
아내도 없이 아들 하나만을 데리고 살았던 안과 의사 톰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다. 아들의 유품을 챙기다가 톰은 아들의 등산가방과 등산용품을 발견하다. 그는 그제야 아들을 화장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별로 걸어본 적도 없다. 게다가 그는 이제 노인의 몸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이 걷고자 했던 순례길을 대신 걷기로 마음먹는다. 순례를 떠나며 그는 아들의 주검을 재로 만들어 상자에 담고 길을 떠난다.
그는 걷는다. 혼자서 걷는다. 아니 둘이서 걷는다. 배낭에 걸머진 재가 된 아들과 함께 걷는다. 아들에 대한 사랑, 그 힘일 게다. 그는 힘들다 않고 걷고 걷는다. 가다가 뚱보를 만난다. 뚱보는 살을 빼기 위해 순례길을 걷기로 했단다. 두 달 가량 걸리는 이 길을 그렇게 한 사람을 만나 인사를 트고 함께 걷는다. 그러다 다시 혼자 걷는다. 다리 난간 위에다 가방을 내려놓고 쉬려다 가방이 그만 강물에 떨어진다. 그는 떠내려가는 가방을 따라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한없이 떠내려가는 배낭, 그는 그 배낭을 건져야만 한다. 그 가방을 포기할 수 없다. 아들의 재가 담긴 상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물살이 셈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로 뛰어든다. 가까스로 배낭을 건져내어 강가에서 말리면서 밤을 보낸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쉬는 지점에서 그는 조금씩 아들의 재를 뿌리곤 한다. 그렇게 가다가 길 위에서 알고 지낸 사라라는 여인, 그녀는 좀체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톰에게 관심을 보이며 속내를 알아보려 한다. 그러나 톰은 말을 하려 않는다. 톰은 그저 걷는다. 그렇게 세 사람이 길을 가면 항상 부지런히 앞서간 노인 톰은 명소라고 생각되는 곳에 아들의 재를 또 얼마간 뿌린다.
이번에 만나는 사람은 슬럼프에 빠진 작가다. 넷이 인연을 맺어 길을 가면서도 노인은 좀체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자괴감 때문이리라. 여인 사라가 노인의 비밀을 길동무들에게 발설한다. 노인은 불같이 화를 낸다. 사라는 사과하지만 노인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라는 진심어린 고백으로 노인은 마음을 연다. 그녀의 사연은 아들을 임신했었으나 세상 밖으로 내보내 보지도 못하고 중절을 했단다. 그래서 이 순례길을 끝으로 꼭 담배를 끊고야 말겠다고 사라는 선언한다.
스페인 어느 마을에서 노인의 배낭을 가지고 달아나는 소년을 필사적으로 쫓다가 놓치고 만 노인은 절규한다. 도둑이 사라진 마을 광장에 서서 그는 소리친다. 다른 건 다 가져도 좋으니 그 상자만 돌려달라고 노인은 절규하듯 소리친다. 그 상자는 아들의 존재니까. 그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배낭을 훔친 소년의 아버지가 소년을 잡아서 데려다가 노인에게 사과하게 하고 노인의 배낭을 돌려준다.
살을 빼려고 그 긴 순례길을 나선 뚱보. 중절의 아픔과 남자와의 결별을 잊고, 골초에서 벗어나려고 순례길을 나선 사라. 슬럼프에서 벗어나 보려고 순례길을 나선 작가. 그리고 아들을 죽게 만든 자책으로 아들 대신 아들이 가고자 했던 순례길을 나선 안과 의사 톰. 네 사람은 드디어 자신들의 꿈을 이루고 산티아고 콤파지델라에 도착한다.
노인은 아들의 남은 재를 최종 목적지, 아들이 최종목적지로 잡았던 곳에 뿌려준다. 그리고 여권에 도장을 받고 순례길을 완주했다는 증서를 받는다. 나머지 셋도 각자 증서를 받으며 뿌듯해 한다. 톰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증서에 적힌 이름을 고쳐달라고 한다. 톰 에이버러가 아니라 다니엘 에이버러로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다니엘, 바로 아들의 이름이다. 아들이 걷고 싶었던 길을 대신 걸어서 아버지는 죽은 아들의 이름을 증서에 새겨주고자 한다.
아들을 대신해서 걸은 노인, 자신의 이름 대신 아들의 이름을 대신 적어 달라는 노인, 이 장면에서 숙연해진다. 아버지 나름으로 아들을 위한답시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아들에게 제시했는데, 아들이 원하는 것은 달랐다. 그런데 아들이 죽었다. 그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순례의 길을 나선 아버지, 노인의 몸으로 8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걷고 걸은 노인의 순례, 진정한 순례다.
두 시간으로 축소한 산티아고 순례길, 나도 걸었다. 노인을 따라 두 시간 동안 걷고 걸었다. 노인과 함께 힘들었고 노인과 함께 속으로 울었다. 노인과 함께 상자의 재를 뿌렸다. 노인을 따라 강물에 떠내려가는 가방을 따라갔고, 소매치기 소년을 따라 달렸다. 노인이 나고 내가 노인이었다.
우리가 잊어야 할 것들은 얼마나 많던가? 기억하고 있어서 아린 것들, 힘든 일들, 그 모두를 그 길 곳곳에 뿌리며 걷자꾸나. 버려야 할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버려야 할 것들은 끊어야 할 것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이렇게 잊고, 버리고 끊어내면 마음이 한결 편하련만, 나는 망설이며 나서지 못한다. 길을 닮은 내가 길이 되기를 망설이고 있다. 그래서 아직 집착과 욕심, 원망, 불안에 시달린다. 길 길 길....
세상 아버지 대부분 엄마처럼 사근사근하지 않다. 때문에 자식들로부터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한다. 그저 잔소리만 하지 않으면 좋을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하는 아버지, 그냥 자식을 향한 사랑도 그저 담담하여 잘 모를 듯한 아버지, 아버지는 잘 표현할 줄 몰라 때로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속마저 그런 건 아니다. 부드럽게 말하지는 않아도, 무관심한 척해도, 속으로는 당연히 자식을 사랑한다. 단지 표현을 잘 못할 뿐이다.
길,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길, 길 위에 홀로 서면, 그렇게 혼자 걸으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가벼이 살다가 깊이를 느끼고 아는 시간이다. 게다가 순례길, 순례는 원래 서유럽인들이 맨발로 걷고 걸어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까지 걸음으로써, 죄 사함을 얻는다 생각하고 걸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게 아픔을,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걷는 이들을 순례자로 불렀으니 트래블러다. 그 말에서 트러블이란 말도 나왔으니, 여행은 트러블이 아니라 투어이다.
생업을 뒤로 하고 긴 시간을 걷고 걷는 사람들. 길, 그 길이 대체 뭐기에. 사람들은 길을 좋아할까? 둘레 길도 생기고, 하천 길도 생기고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 길이라는 것 인생을 닮았고, 그 길을 걷는다는 건 우리 삶을 닮았기 때문이겠지.
“군인은 전쟁으로 향하고, 순례자는 평화를 향한다. 젊어서는 너무 바빠서 못하고, 늙어서는 힘이 들어서 못하는 순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