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유쾌한 영화 읽기-149-완득이, 가난하지만 긍정적인 소시민들의 유쾌한 웃음 속에 건강한 눈물
이 영화는 언어의 유희 대신에 재치 있는 언어로 웃음을 준다. 이 영화의 내용은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지만 건강한 웃음을 준다. 그 웃음 속에는 물론 아픔이 배어있다. 웃기려 말한 게 아닌데 웃음을 주고, 솔직하게 뱉어낸 말이라 아프다. 재치가 번뜩이는 말, 꾸밈이 없는 말로 웃음을 자아낸다. 속으로 울게 하고 겉으로 웃게 한다.
수업시간에 보여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 보고 해석해내는 완득의 솜씨를 보라지. 그림을 자신의 실제 삶에 빗대어 해석한다. 본능적으로 해석하는데, 아주 재치가 통통 튄다. 그는 맨 오른쪽 여인은 “'뭘 봐1”라 말하면서 째려보는 모습, 가운데 여인은 분노로 돌멩이를 움켜쥔 모습, 그리고 모두 소외받는 여인들의 모습이란다. 이 여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에서는 배울 만큼 배웠는데, 외국에 와서 고생하고 있단다. 완득의 이런 엉뚱한 해석은 웃자고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다. 그의 심리를 드러내는 무의식이다. 그림 속에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들어 있다. 또한 못 사는 나라 출신이라고 무시당하는 자신의 어머니인 필리핀 여성에 대한 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얌마 도완득, 이 아이가 주인공이다. 고 2 학생이지만 자기 삶을 스스로 알아서 헤쳐 나가는 학생이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지만, 그는 사회에선 우등생이라고 할 만하다. 어머니도 모르고 자란 완득이, 그의 아버지는 불구자이다. 게다가 떳떳하게 내놓을 만한 일을 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완득은 혼자 살다시피 한다. 아버지와 민구 삼촌과 셋이서 살긴 한다. 물론 민구는 완득의 친삼촌도 아니다. 삼촌과 아버지는 일하러 나가서 장을 떠돌면, 완득은 혼자서 며칠이고 지내야 한다. 완득이의 아버지 역시 정신은 건강하다. 육체적인 콤플렉스를 안고 있지만 제 힘으로 살려고 이것저것 다한다. 그는 장돌뱅이로 여기 저기 떠돈다.
그는 친구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놓을 만한 무엇 하나라도 없으니, 그저 혼자 지낸다. 라면으로 끼니를 잇는다. 공부는 꼴찌이다. 그가 잘 하는 것이라곤 싸움질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만큼은 건강하다. 솔직하고 담백한 아이다.
호에 관한 수업에서 그는 유치환의 호는 청마, 방정환의 호는 소파, 완득이 자신의 호는 얌마란다. 선생이 늘 그에게 ‘얌마 도완득’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란다. 그런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 그와 같은 집 옥탑방엔 담임선생 동주가 세 들어 산다. 그는 선생을 '똥주'라고 부른다. 선생 똥주는 그의 일 하나 하나에 미주알고주알 잔소리한다. 개념도 없고, 선생답지도 않은 담임샘 동주, 알고 보면 참 멋진 사람이다. 부잣집 아들이면서도 옥탑방에 살면서 자신이 버는 돈을 모두 자신이 세운 교회에 투자한다. 박해받고 무시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교회에선 전도사로 일하는 그는 건강한 괴짜이다. 약자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치장 생활까지 한 그는 전도사지만 술도 잘 마신다.
완득은 사사건건 그의 삶에 끼어드는 선생을 향해 그는 늘 ‘선생을 죽여 달라’고 기도한다. 그가 기도드리는 곳은 바로 그 담임샘이 전도사로 있는 교회다. 아주 솔직하다. 그렇다고 완득이 하나님에게 장난삼아 기도를 드리는 게 아니라 솔직한 기도다. 격식이나 기교가 필요 없는 솔직한 기도다. 그러다 담임샘이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도발이 안 먹혔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드리던 그, 어느 날 완득이 집에 들어왔는데, 누군가 집에 있다. 도둑이 든 것 같다. 어둠 속에서 그는 도둑을 향해 일격을 가한다. 그런데 아뿔싸, 동주샘이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그러자 완득은 선생을 들쳐 업는다. 냅다 병원으로 업고 달려가는 완득이, 머리가 안 돌아가니, 급하긴 해도 119를 부를 생각도 못하고 병원을 향해 달린다. 깨어난 동주샘은 그대로 등에 업힌 채 모르는 척 한다.
머리에 똥찬 사람들보다 그는 아주 건강하다. 완득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은 물처럼 속이 아주 맑고 정신이 건강한 아이다. 공부는 못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기특한 아이다. 못난 아버지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에겐 얼굴도 모르던 어머니가 있다. 때문에 그는 내심 어머니의 정체가 궁금하다. 막상 찾고 보니 예쁘지도 않고 초라한 엄마, 게다가 필리핀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어머니를 진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그만큼 속이 깊고 착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아들이면서도 아들이라고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고 존대를 쓴다. 찡하다. 그 역시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으나 차마 나오지 않는 어머니란 부름 앞에서 그는 무표정한 척, 덤덤한 척 참아낸다. 참 애처롭다. 그러다가 끝내 그가 어머니라 부른다. 어머니 역시 아들이라 부른다. 그제야 둘이 부둥켜안는다. 그들이 운다. 핑그르 눈물이 떨어진다. 내 눈에도.
그의 어머니, 남자의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마음이 중요하단다. 볼 것도 없는 남자, 그렇다고 조곤조곤하지도 않은 남자, 돈도 없는 남자, 불구자인 남편에게로 그녀는 돌아온다. 마음이 건강한 여자, 완득은 그녀를 닮았나 보다.
동주는 끝내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교회를 댄스 교습소로 바꾼다. '신나는 댄스 교습소', 여기서 신나는 의 신자만 한문으로 神이라고 쓴다. 순 우리말로 신나는 게 아니라 신이 나오는 춤 교실이란 뜻이다. 그를 매개로 완득과 그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소외받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어울려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산다. 사회에선 그들을 무시한다. 때로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동주샘을 매개로 아울려 건강한 삶을 산다. 공부는 못하지만 싸움은 잘하는 완득은 복싱을 잘하고, 이제 다시 화합한 완득의 부모와 완득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 것이다. 동주샘 역시 그를 좋아하는 아가씨와 가정을 이루어 살판이다. 가난한 이들, 소외 받는 이들의 가난하면서도 건강한 삶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웃음과 눈물샘이 터지는 드물게 좋은 영화다.
가난하지만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 이 영화의 매력이다. 우리를 웃게 만드는 일들도 건강하다. 물론 그 건강한 웃음 속에는 가난한 소시민들의 애련한 슬픔이 배어나온다. 솔직한 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우리 이웃들, 솔직한 이웃들을 만나서 즐겁다.
사회의 소외자들이 신나게 모여 춤을 춘다. 신이 계시는 교회에서 신나는 춤을 춘다. 진정 신은 그런 교회에 계실게다. 속이 투명한 사람들, 솔직한 사람들, 신의 존재를 깊이는 모르지만 그저 이웃으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돕는, 마음 답답할 때 부르면 달할 듯싶은 신으로 여기는 그들이 믿는 신이 진정한 신일 것이다. 신은 마땅히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투박하지만 속내는 진실한 사람들, 나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사람들, 이들은 다름 아닌 우리 이웃들이다. 어떤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으면서 마음을 나누어주는 사람들, 그들의 힘은 아주 보잘것없지만 위대하다. 이런 이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그나마 건강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저 지어낸 인물들이라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도 있을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화려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배경을 그렇게 설정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 소시민들의 삶을 지나친 포장 없이 보내주는 것 같아 좋다. 인공 미인이 아니라 자연 미인을 만나는 상쾌함, 화려하지도 않고 사회적 이슈도 없지만 진정한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동경하는 것보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기에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