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21- 장점과 치명적인 단점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그의 장점이 곧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의미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칫 말로 망할 수 있고, 칼 잘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할 수 있고,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물로 망할 수 있다. 이렇게 장점은 분명한데 장점으로 인해 치명적인 실수를 하거나 치명적인 절망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아킬레우스는 가장 잘 달리는 발을 타고 났다. 그런데 그가 죽은 이유가 잘 달리는 역할을 하는 발목 부분, 즉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 부문만 불사의 몸이 아니었다. 우라노스는 한 일이라곤 아이들을 생산하는 신이었는데, 그는 역시 생식기를 아들 크로노스에게 제거 당해 죽는다. 이 또한 장점이 급소라는 상징이다. 따라서 계속 흥하고 싶으면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되, 늘 겸손해야 그것을 장점으로 이어갈 수 있다. 조금 오만해지면, 조금 방심하면 자신의 장점은 순간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으로 변할 수 있다.
나는 무엇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냐? 어쩌면 이것이 별로 장점은 없다면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지금 먹고 사는 문제에 나의 치명적인 단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저 그렇게 나을 것도 없이 살고 있다면 크게 문제 될 일이 없다. 문제는 주목 받는 위치에 있을 때 찾아온다.
신이나 인간은 항상 오만을 경계한다. 오만으로 비추는 사람에게서 신은 고개를 돌린다. 신은 인간에게 직접 벌을 내리지 않는다. 인간을 통해, 아니면 피조물을 통해 벌을 내린다. 신이 이렇게 외면하면 인간은 자비를 구할 수 없다. 신이 외면한 자리엔 인간이 자리하고, 인간은 신을 대신하여 그를 질시하고 내치려한다. 오만한 사람에게서 신은 외면하고, 인간은 그를 질시한다. 때문에 인간의 질시를 받지 않으려면, 신의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잘 나갈수록, 한창 좋을 그때 겸손해야 한다.
요즘 말로 화를 입는 사람이 유독 많다. 그들은 적어도 말로 먹고 살고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말로 실수를 할까? 왜 자신이 한 말에 발목을 잡힐까? 언제 그들은 말에 실수를 할까?
사람은 위축되어 있을 때는 거의 실수하지 않는다. 주목 자체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와는 달리 누군가의, 아니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을 때 대부분 실수를 한다. 그건 인성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기세뇌가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잘 나갈수록, 대중의 주목을 받을수록 잠깐 겸손을 잊는 순간 진정한 자신을 보지 못한다. 들뜨기 시작하면 진정한 나는 보이지 않고, 잘 나가는 자신만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은 잘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면 사람들은 환호한다. 거기에 전도되자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저 뒤쯤인데, 나와도 한참 많이 나왔음을 모른다. 나는 안 보이고 환호소리만 들리고 환호하는 사람들만 보인다. 이 들뜸의 상황에서 영혼 없는 말로 실수한다.
인간은 자기조절능력이 있고 자기학습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잘못 활용하면 망하고, 그 능력을 잘 활용하면 흥한다. 악마는 박수와 환호로 유혹한다. 박수를 받으면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라는 신호이니, 박수 소리가 클수록 자아성찰을 해야 하고, 환호가 극에 달할수록 겸손해야 실수하지 않는다. 박수와 환호를 악마의 유혹이라 생각한다면 실수할 일이 없다. 이를 겸손이라 부른다. 자기세뇌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나의 장점이 나의 치명적인 단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