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24- 지혜를 얻는 시간

영광도서 0 1,083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 날갯짓을 시작한다.”

 

헤겔이 한 말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로 말했든 나는 이 문장을 지혜를 얻는 법으로 읽는다. 원래 올빼미는 밤에 활동한다. 때문에 이 문장의 출발은 “올빼미는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주류에 속한다.”일 것이다. 이 문장은 하나의 지식 또는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일반적인 지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이 문장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냥 기억하는 정보에 불과하다. 이를 지식의 차원이라 한다.

 

그런데 이제 ‘미네르바의 올빼미’라고 올빼미를 수식하면 다른 의미로 읽는다. 주의를 기울인다. 주의를 기울이면서 다시 문장을 읽으면 더는 올빼미의 행태를 나타내는 상식을 넘어서서 이는 지혜를 뜻함으로 읽는다. 올빼미는 새의 차원에서 지혜란 의미로 읽는다. 미네르바를 덧입힘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무엇이나 보다 자세히 보면 새로운 의미 생성이 가능하다. 새로운 개념의 탄생이다.

 

새로운 개념의 탄생을 창의적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창의적이란 말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원래 있었던 것에 새로운 무엇을 덧붙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올빼미는 원래 야행성 조류였으나 미네르바를 덧붙임으로써 지혜란 말로 변한다. 이렇게 조류라는 피상적인 것에서 내적인 의미로의 변화가 곧 창의이며, 새로운 의미 생성이다. 이에 대해 생텍쥐페리는 “완전이란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떼어낼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라고 말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창의적이란 본질적인 것에 새로움 그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라면, 본질은 덧붙인 것을 모두 제거했을 때 가능하다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지혜란 본질에서는 멀어지는 것으로 우리 삶 속에 들어오는 것이라면, 그 대신 실제 삶에서 보다 구체화하여 삶에 적용 가능한 그 무엇을 말한다.

 

지혜는 곧 내 안에서 나오며, 나의 사고 또는 성찰하는 순간에 나온다. 하나의 상황을 종식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때 또는 활동을 재개할 때 그 틈새시간에 내면을 깨우는 사람이 얻을 수 있다. 지혜는 생각이 없는 사람, 성찰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탄생하지 않는다. 지혜를 얻으려면 일과 일의 틈새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사고의 날갯짓, 즉 성찰하는 시간, 지난 일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헤겔은 “황혼 무렵에 날갯짓을 시작한다.”로 정의한다. 황혼 무렵은 밤과 낮으로 나누는 일반화에서 보다 세분하여 보는 것으로, 황혼 무렵은 낮이란 활동의 시간과 밤이란 휴식의 시간의 중간에 위치한다. 헤겔은 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이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 지혜가 생긴다고 말한다. 지혜는 활동하는 시간에 생기기보다 활동을 끝내고 휴식의 시간 내적인 자신을 만나서 성찰하는 시간에 얻을 수 있으며, 그렇게 얻은 성찰의 결과를 다시 시작하는 활동에 적용 가능하다면 그것이 지혜란 의미로 나는 받아들인다.

 

이처럼 사고하고 분석한 후, 다음에는 그것을 실제 일에 적용한다. 그렇게 하여 전에 활동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이 곧 지혜다. 이처럼 지혜는 현실에, 실제 삶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 지식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는 없으나 본인 자신의 내면에는 구체적인 이미지, 또는 형상으로 있어서 어떤 일을 당하면 그 이미지의 순서에 따라 해당하는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다. 이렇게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으므로 다른 상황에서도 이를 다소의 이미지만 변용함으로서 현실에 적용 가능한 것, 이를 지혜라 한다.

 

그렇다면 지혜는 무엇을 관찰하고, 맥락과 맥락에 숨은 것을 발견하되, 숨은 것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헤겔은 황혼 무렵으로 나누었으니, 이 틈새 시간에 생각의 날갯짓을 시작해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얻을 수 있으니 이를 지혜라 이른다. 그러니까 틈새 시간에 생각하는 자가 지혜를 얻는다. 나는 일과 일의 틈새 시간에 나를 돌아본다. 다시 시작할 일을 보다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사고한다. 그러므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무렵 날갯짓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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