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28- 나의 실존을 묻는다

영광도서 0 1,344

실존이란 확인 가능한 실재를 말한다. 때문에 추상적인 실존을 묻기 전에 구체적인 실존, 표의적인 실존과 피상적인 실존 중에서 무엇을 먼저 물을까를 먼저 정해야 한다. 표의적인 실존이라 하면 나를 인식하는 나의 실존이고, 피상적인 실존은 눈으로 확인 가능한 실존이라 할 것이니, 내가 있다 한들 내가 나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면 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내가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나가 있어야 한다. 내가 나를 인식한다면 나라는 실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니, 내가 내 눈으로 확인한 실체는 피상적인 나이다. 때문에 실존을 묻기 전에 나의 실존 또는 나의 실체를 물어야 한다. 실존이란 말과 나의 실존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나의 실존을 위해선 나의 실체를 인식하여야 한다. 내가 나의 실체를 확인한 나, 나란 도대체 무엇인가? 거창하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나란 무엇인가를 물음에서 나의 실존 확인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의 실체는 내가 인식하는 나는 확인 가능하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중이란 것을 내가 인식하고 있고 확인 가능하니까.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존재하는 나를 나는 확인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물론 내가 인식하는 나, 그건 기억하는 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억 속의 나라고 말할 수 있다. 기억 속의 나는 어릴 적 나에서부터 제법 범위가 넓다. 그런데 기억하는 나를 실존에 대입하면 표상화할 수는 없다. 지금 내 앞에 보여줄 수는 없다. 다만 인식하는 나일뿐이다. 그런데 만일 내 기억이 왜곡되었다면, 그것도 나일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분명 나는 나의 기억은 확실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 있다. 이를테면 어렸을 적 내 동생이 너무 울었다. 그러자 작은형이 화로 속에 있던 인두를 꺼내 울지 말라고 동생의 넓적다리를 지졌다. 나는 그것을 내가 당한 것으로 죽 기억했다. 어느 날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작은형에게 그렇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아니라 내 동생이 당한 거였다. 그건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뚜렷한 흔적이 내 동생 넓적다리에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나의 기억의 실체를 전부 믿을 수는 없다. 또한 믿음 자체를 실존으로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때문에 실제로 존재함에서 과거의 나, 기억하는 나를 실존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에서 실존주의자들의 관점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 때문에 나의 실존엔 지금이란 시간으로 한정하여야 한다. 이제 지금 실재하는 나로 나의 실존을 정리한다.

 

나는 지금 나의 실체를 확인한다. 그 다음엔 실재하는 내가 어디에 있느냐를 확인하기이다. 지금 실재하는 나가 확인 가능한 공간은 여기밖에 없다. 컴퓨터 앞에 앉은 나,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나만을 나의 실존이라 말한다. 잠시 후엔 나는 전철을 탈 것이고, 나는 전철 안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나라고 인정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의 실존이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을 나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거기에서만 나는 나의 그곳에서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나의 실존은 지금이란 공간이 추가된다. 지금이란 이 시간에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는 나를 확인한다. 그러므로 나의 실존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라는 등식의 성립, 이것이 나의 실존이다.

 

어떻게 살 것이냐 그건 나중이다. 존재의 확인, 내 존재의 확인, 나의 실존은 지금 내가 확인한 나의 실체만 남는다. 지금의 내가 소중하냐 어제의 내가 소중하냐, 앞으로의 내가 소중하냐 그건 나중에 생각할 뿐, 내가 확인한 것은 지금 나는 여기에 실재한다는 것이 나의 실존이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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