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32- 이율배반과 내로남불

영광도서 0 1,316

내로남불이 요즘 화두다. 그런데 내로남불이란 단어는 정체불명의 조어로 말장난으로 탄생한 기형어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의미는 그럴 듯하다. 한자는 글자 한 자 한 자가 뜻을 갖는다. 상형문자에서 발전한 문자라서 글자마다 뜻을 갖고 있으나, 우리말은 소리를 중심으로 발전한 글자라서 글자 한 자 한 자가 특정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때문에 원래의 상형, 즉 정보의 요체라 할 이미지를 글자 자체로 갖지는 못한다. 아무런 이미지를 갖지 못한 문자이기 때문에 조어에선 상형문자보다 훨씬 자유롭긴 하다. 반면 조어남발로 정체불명의 단어들이 불쑥불쑥 생기기도 하는 문제가 있다.

 

우선 내로남불에서 ‘내’는 自我이자 ego를 가리키는 1인칭의 ‘나’의 주격이거나 소유형용이다. 그런데 ‘로’는 ‘로맨스’. 즉 외래어의 준말이다. 다음에 ‘남’은 다시 우리말의 내가 아닌 상대 또는 타인을 지칭하는 순 우리말이다. 마지막 ‘불’은 ‘불륜不倫’의 한자어이다. 그러니 이 단어에는 세 언어를 조합한 말이 안 되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단어를 마치 우리말처럼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그렇다면 단어의 의미는 제대로 알고 쓰긴 하는 걸까? 로맨스는 원래 대중 로마어란 의미에서 비롯된 단어였다. 중세유럽에서 식자층이 아닌 대중들이 주로 사용하던 언어는 정통 라틴어가 아닌 말은 할 줄 알지만 글을 모르는 대중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따로 있었다. 대중라틴어, 즉 저급한 라틴어라고 했는데, 라틴어는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지칭하기 때문에 로망어라 지칭했다. 이 언어는 식자층이 아닌 이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이 주로 전달하는 이야기들은 주로 재미있는 이야기들, 전설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 허구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이렇게 과장되거나 그럴 듯하게 지어낸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한 언어가 로망어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로망이라고 불렀다.

 

소설은 곧 픽션인 어원이 로망인 이유, 로망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로망스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로망이란 말, 영어로 로맨스의 어원을 갖는 모두는 근원적으로 허구, 실제가 아닌 의미를 내포한고 있다. 로맨스, 로맨틱 등이다. 따라서 로맨스는 긍정적인 의미라기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불륜이란 윤리에 어긋남이라면, 윤리란 인간이 본능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면서 사회질서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삶을 위해 금지한 행위들의 목록이 윤리이다. 특히 불륜은 그 중에서 바람직한 남녀 간의 윤리를 어기는 것을 이른다.

 

이렇게 어원을 보면 로맨스도 불륜도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거기서 거기인 단어이다. 다만 로맨스란 있지 않은 허구를 지칭한 데 비해, 불륜은 실제로 행위가 일어난 상황을 이르는 말이란 차이만 있다 할 수 있다. 의미로 보면 마음으로만 품은 간음을 이르는 말이 로맨스라면, 실제 행위로 옮긴 간음이 불륜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에 회자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이율배반이 많다는 의미이다. 나에게 적용하는 논리와 남에게 적용하는 논리가 서로 다름을 이르는 억지조어이다. 즉 어떤 대상을 나에게 적용할 때는 좋은 의미로 해석하고, 남에겐 엄격하게 또는 안 좋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을 이른다.

 

가장 쉬운 예로 평등의 원칙대로 하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평등을 평소에는 적용하거나 부르짖다가 나 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한다면, ‘나는 명성이 있으니, 학벌이 있으니,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례를 말한다. 이는 전자는 평등주의이고 후자는 자본주의의 원리인데, 하나의 상황에 두 가지 잣대를 이른다. 고로 내로남불이란 잘못된 조어이고 이율배반이 옳다.

 

이율배반, 나는 이율배반적이다. 같은 강의를 하면 때로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특별대우를 받고 싶다. 때로는 나보다 더 특별대우를 받는 사람을 보면 열 받는다. 그러니까 나는 낯간지러워서 내로남불이라거나 이율배반적이란 말을 쓸 수 없다. 당신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