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38- 수다를 떨까, 대화를 할까?

영광도서 0 1,295

떨거나 하거나? ‘국문학과를 나오면 주제파악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영문학과를 나오면 무슨 영문인지는 알아야 한다, 불문과를 나오면 불문에 붙일 줄 알아야 한다.’ 라고 말하고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으면 이건 수다일까? 아니면 대화일까?

 

수다는 사전적으로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을 뜻한다. 이를 영어로는 chattering, gossip, talkative, .garrulous, loquacious 정도이겠다. 이 영어들의 개략의 뜻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말이 많다, 잡담이다, 수다스럽다, 정도의 의미를 안고 있다. 누구나 짐작하듯 수다는 일단 말이 많다, 남들이 뭐라든 상관없이 혼자 떠들어댄다, 남들에 비해 훨씬 말이 많다, 이 정도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때문에 일방적이자 상대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뭐 이런 정도가 수다란 단어에 갖는 이미지일 것이다.

 

반면 대화의 기본 뜻은 둘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이른다. 독백에 대응하는 말이 대화 아닐까 싶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한 사람인 일 인극에서는 대화는 불가능했다. 이때 배우가 말하면 이 말을 받아서 대답하는 코러스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대화는 적어도 일방적이지 않은 ‘서로’라는 쌍을 이룬 말들이다.

 

이를 영어로 바꾸면 conversation, talk, dialogue, communication, speak with 정도일 텐데, 단어조어에서 보듯이 co라는 접두사도 그렇거니와 아니면 명사를 이끄는 전치사 with에서 보듯 대화는 적어도 혼잣말이 아니라, 일방적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아니면 말을 나누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형식적으로 봐도 수다와 대화는 다르다. 때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라고 말은 많이 해도 대화를 나누었다고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이때는 수다를 어쩌면 대화의 다른 말로 쓴 경우일 수 있다. 대화를 나누고도 수다를 떨었다고 말하는 것이란 의미다. 그렇다고 뭐 그걸 따지자는, 제대로 쓰자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별걸 다 따진다, 너 잘난체한다, 이렇게 나를 욕할 테니까.

 

수다를 떤다 하든, 대화를 한다 하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런 말장난이라도 중요하게 만드는 것, 의미 있게 만드는 것, 그럴 듯하게 만들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을 글이라 한다. 때문에 나는 수다와 대화는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 그걸 이제 제대로 설명한다면 이 글은 수다 수준에서 담화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수다는 주제 없는 말들의 나열이다, 대화는 수시로 주제가 바뀌더라고 주제는 있는 말들을 대화로 부른다. 그렇다고 대화를 무겁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제란 어떤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 한 마디가 그 대화의 주제이다. 그러니까 주제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냥 하고 싶은 말 한 마디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는 여러 주제가 마구 뒤섞일 수 있다. 그때부터 대화는 수다 수준으로 낮아진다. 따라서 수다는 주제가 일방적이거나 너무 많은 경우를 이른다.

 

오늘은 ‘국문학과를 나오면 주제파악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영문학과를 나오면 무슨 영문인지는 알아야 한다, 불문과를 나오면 불문에 붙일 줄 알아야 한다.’ 라는 말로 이 글을 시작했다. 이 말은 수다수준이다. 왜냐하면 웃자고 한 말이니까. 어떤 의도를 담은 말이 아니니까. 그런데 만일 이 말을 ‘글 속엔 반드시 주제가 있으니 국문학과를 나왔으면 그 주제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영문과를 나왔으면 영문을 읽고 영문에서 말하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불문과를 나왔으면 불문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일 수 있어야 한다.’라고 그럴 듯하게 썰을 푼다면 이때부터는 이 문장들이 단순히 조크 수준에서 글의 수준으로 오를 수 있다. 때문에 글에는 필수적으로 주제를 필요로 한다. 주제가 없는 글은 없다. 따라서 글에도 수다 수준의 글이 있고 대화 수준의 글이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하는 말의 수준이 수다로 전락하느냐, 대화로 상승하느냐로 나눈다면, 내 글 역시 수다 수준의 글이냐 대화수준의 글이냐로 나눌 수 있다. 수다든 대화든 독백이 아니라 상대를 두고 말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같다.

 

이는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하고 그 말을 설득력 있게 풀거나 설명한다면 대화의 시작이다. 또한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문장으로 만들고, 그 문장을 풀어서 독자가 알아듣게 설명하거나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 문장을 덧붙인다면 이는 글다운 글이다.

 

수다와 대화? 주제가 있느냐 없느냐, 주제가 많으냐 하나냐, 이를 기준으로 나눈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이것만 생각하면 그만이다. 수다 떨기도 좋다. 주제 없이 마구 이야기하면 얼마나 스트레스 풀고 좋은가. 글 역시 주제 없이 나오는 대로 마구 쓰면 얼마나 신나는가, 괜찮다 다 괜찮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다 보면 좋은 말도 건질 수 있고 좋은 문장 하나 건질 수 있으니까. 자! 오늘의 시작 수다를 떨러 가든 글을 쓰든 시작하자고! 그래 고, go!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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