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40- 네 운명을 사랑하라
우연일까, 운명일까?
운명이란 인간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부과한 것, 신이 정한 것을 이른다. 때문에 인간은 바꿀 수 없는 것, 인간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니체는 말한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고. 니체가 말하는 운명이란 실은 일반적인 이해의 운명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운명은 없다는 말의 역설이다. 즉 신의 운명이 아니라, 너의 운명이란, 운명은 단순히 너의 몫이므로 네가 네 운명을 만들어 가라, 네가 네 삶을 선택하며 살라는 의미이다. 이와 달리 운명의 본뜻은 바꿀 수 없다. 벗어날 수도 없다. 따라서 실상 니체가 말한 운명은 진정한 운명이 아니라 우연의 강조일 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운명은 어디서 어디까지일까?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몫, 내가 해야 할 몫을 알 수 있다. 내 몫과 신의 몫을 자각할 수 있다면, 보다 삶은 단순하고 명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범위를 알 수 없다. 때문에 신에 대한 해석과 인간에 대한 해석도 아주 다양하다. 무엇이 옳은지,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삶의 거의 대부분을 인정하면 그만큼 내 선택의 몫, 내 자유의지는 줄어든다. 대신에 매사를 편하게 산다. 하다가 막히는 일이 없으면 그냥 신의 섭리로 치부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은 전적으로 내 삶을 지배한다, 내 삶을 신이 모두 주관한다. 반면 나의 선택의 몫이 없다. 그러면 실수도 실패도 나에겐 없다. 따라서 나는 운명론자, 소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선택의 몫을 아주 좁게 해석한다. 때로 힘들면 체념한다.
반면 세상을 단순히 우연의 연속으로 받아들이는 나는 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수많은 우연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 선택할 우연들이 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내 삶은 내가 선택한 결과들에 다름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신을 부정하거나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다. 신의 영역을 인정한다. 다만 신은 내 삶의 전체를 좌우하는 게 아니라 선택의 자유를, 자유의지를 주었다 믿는다. 따라서 나는 내 선택을 소중히 여긴다. 신이 일일이 내 삶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지유를 주고, 그 결과도 내 몫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나는 나를 긍정한다. 주도적인 내 삶을 산다.
이처럼 운명론자들은 삶의 무게를 과거에 둔다. 지금까지 살아온 하나하나를 신의 섭리로 받아들인다. 지금의 삶이 힘들든 쉽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모두를 신의 뜻으로 여긴다. 어쩌면 이런 삶의 자세는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다. 덕분에 행복지수가 높은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지향성이 무척 강하다. 반면 운명보다 자유의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운명보다 우연을 믿는다. 수많은 우연들이 운명인 척 가면을 쓰고 있을 뿐, 실은 우연들이 뭉쳐서 현재를 이루고, 그 우연한 선택들이 지금이며, 그 우연들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우연의 연속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우연을 믿는 사람들은 적어도 현재에 살며 미래를 지향한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원하느냐가 나의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리해보자. 우연을 따르는 삶과 운명을 따르는 삶, 어떤 삶이 더 현명할지를. 운명을 믿으면 무거운 것 같으나 그건 과거의 무게를 지고 사는 삶과 같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 믿기 때문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의미부여가 나를 무겁게 하니, 삶이 무겁다. 그 무게는 과거의 무게일 수밖에 없다. 반면 지금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과거는 이미 지난 우연들이라 무겁지 않다. 다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삶의 무게는 정해진다. 보다 나은 삶을 살려면 지금의 선택들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우연은 지금의 선택에 무게를 둔다. 이 무게는 과거의 무게가 아니라 현재의 무게이다. 그들에겐 현재의 무게가 과중하다. 때문에 우연에 중점을 두는 이들은 삶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한다.
나는 현재를 사랑한다.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나를 선택하고, 내 일 하나하나를 스스로 선택한다. 지금 상황을 우연의 연속으로 받아들이며, 지금의 선택들을 소중히 여긴다. 내가 선택한 우연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었고, 지금 나의 선택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신을 믿는다. 확고하게 믿는다. 다만 신은 나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내가 내 삶의 순간순산을 선택하게 한다. 선택한 그 결과는 나 스스로 지게 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신이 미주알고주알 나의 대소사를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
나는 운명은 아주 조금 믿는다. 때문에 세상을 살면서 거의 대부분은 나의 몫이라 믿는다. 얼마를 살든 그 시간 시간은 내가 할 몫이다. 그러니까 선택 하나 하나는 중요하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너와 나의 만남 역시 우연이라 믿는다. 다만 나의 선택일 뿐이고, 너의 선택일 뿐이다. 지금부터의 우연의 몫, 그건 나의 몫이다. 지금의 선택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기에 나는 지금의 선택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니체가 말한 내 운명을 사랑한다. 나는 내 삶을 하나하나 선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금 나는 나를 선택한다. 고로 나는 미래의 나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