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41- 나의 자유의지란?

영광도서 0 1,123

자유의지란 광의로 보면 신과 인간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이 하는 일마다 신의 섭리가 따른다면, 이는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석할 수 있고, 모든 일에는 신의 계시가 들어 있다는 의미이니, 인간에겐 달리 선택의 몫이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당연히 신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에겐 자유의지, 즉 자신이 하는 행위에 관한 선택을 별로 하지 않고, 신의 의지에 맡기는 소극적 행동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지점에선 결국 신의 의지와 자유의지가 상충될 수밖에 없다. 신의 의지에 맡긴다는 뜻은 무엇을 함에 있어서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그 일에 나의 의지가 없다,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신의 뜻에 따를 뿐이다, 이런 의미에 다름 아니다. 고로 인간의 의지와 신의 의지의 상충, 인간의 의지를 아주 축소하면 신의 의지에 의존한다는 뜻이고, 인간의 의지를 확대하면 자유의지대로 산다는 뜻이다.

 

그러면 신의 의지가 옳은 것인가, 인간의 의지가 옳은 것인가? 이 둘은 모두 긍정적인 뜻이다. 당연히 우리는 신의 의지를 부정할 수 없다. 부정할 능력도 없다. 당연히 신의 의지를 따라야 한다. 다른 말로 신의 섭리를 존중하고 신의 섭리인 신의 의지에 순종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용하다. 감히 인간이 무엇을 선택한 들 그건 무용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자유의지를 말하는 걸까? 신에게 반항이라도 하겠다는 의미일까? 인간이 신에게 반항한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종교는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좁게 말하면 인간을 이렇게 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을 거역하는 것이며, 옳지 않은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 자유의지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간이 규정할 수 있는가이다. 정말 진정한 신의 대리인이 있고, 그 대리인이 신의 뜻과 신의 의지를 분명히 알고, 그 의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진정한 신의 대리인이 있다면, 신의 의지를 명확히 안다면, 신의 의지를 그가 그대로 전달한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인간을 향한 신의 의지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아는 인간은 없다. 있다고 선언하는 자가 있다고 치자. 그것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을까?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신의 의지는 있다 없다로 나누고, 있다면 어디서 어디까지, 이 문제에서 인간의 선택의 몫이 결정된다. 때문에 종교는 주로 결정론으로, 신의 의지를 확장하여 인간을 거기 순종하게 하려한다. 반면 자유의지에 의미를 두는 이들은 신의 의지, 즉 신의 섭리를 축소하고 인간 의지의 몫을 확장하려 한다.

 

신의 의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알 수 없다. 때문에 신의 의지를 밝혀주는 사람의 말을 믿으려 한다. 신의 의지를 안다고 설교하는 사람, 그래서 그의 말을 믿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가 신의 의지를 신에게서 들은 걸까? 그냥 마음의 소리, 자신의 생각을 신의 의지로 믿는 걸까? 그 회의가 나에게 자유의지를 갖게 한다. 또 있다. 그가 진정 신의 의지를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는 걸까,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자신이 어떤 목적을 갖고 나의 자유의지를 무의미하게 하려는 건 아닐까? 이 회의가 나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갖게 한다.

 

결국 광의로 본 자유의지는 이제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협의로 보는 나와 신의 관계로 좁혀야 신의 의지와 자유의지를 구분할 수 있다. 때문에 자유의지를 나의 문제로 좁혀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자유의지가 싫다. 선택하는 삶이 싫다. 골치 아프다. 신의 뜻이 확실히 있다면, 신의 뜻을 확실히 안다면 나는 자유의지 없이 신의 뜻을 따라 마음 편히 살고 싶다. 아니다. 나는 내 삶을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고 싶다. 내가 내 삶을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지 못하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그저 주인을 졸졸 따르는 강아지에 불과하다.

 

그렇다. 나는 인간이다. 그리고 신은 인간이란 이름을 내게 주었으니, 내게 내 삶을 선택할 자유를 주었고, 다만 선택의 결과의 몫, 역시 나의 책임으로 남겼다. 이러한 선택의 몫으로 인간은 문명을 이루었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 신은 자유의지를 보장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고민한다. 나는 나의 삶을 선택한다. 신이 일일이 내게 명령을 내리지 않으니, 항상 섭리를 알려주지 않으시니, 나는 내 행위를, 말을 선택한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고 산에 오르려 한다. 나는 내 삶을 선택할 의무가 있다. 신은 그것을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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