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44- 난 욕심이 많아요

영광도서 0 546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에 나오는 말씀으로 기억한다. 성경은 이 말씀처럼 욕심은 좋지 않은 것으로 말한다. 성경만 그런 게 아니다.

 

석가모니 역시 인간의 근원적인 생노병사, 즉 사람은 낳으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 생애에서 고통의 원인이 있으니, 그 원인이 욕심임을 마흔의 나이에 깨닫는다. 인생은 고통이니 고, 고통의 원인인즉 욕심이니 집, 욕심을 없애면 고통의 원인이 없어지니 멸, 욕심을 없애는 방법을 말하니 도, 고집멸도가 사성제이다. 세상사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바르게 하면 욕심이 없어지니, 정견, 정념, 정명, 정사유, 정어, 정업, 정정, 정정진을 8정도라 한다. 이렇게 정으로 욕심을 멸하면 니르바나에 이른다 한다.

 

이처럼 동서고금의 경전이나 책들은 욕심을 좋지 않은 것으로 보긴 하지만 하나같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다. 때문에 욕심은 모두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 이를테면 욕심은 버려야 하는 것, 반면에 욕심을 비우면 선한 것으로 인식한다. 욕심은 악의 편이라면 욕심 없음은 선의 편으로 인식한다.

 

그러면 욕심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전에선 욕심을 “어떠한 것을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의한다. 당연히 무엇을 위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좋지 않을 것임에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답은 풀리지 않는다. 이런 욕심이든 저런 욕심이든 지나침은 좋지 않다는 말엔 쉽게 동의할 수 있다. 좋지 않다는 것이 다분히 죄다 악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사성제는 일단 받아들일만하다. 하지만 성서에서 말하는 욕심은 죄의 뿌리다란 말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욕심이 죄의 뿌리란 말은 옳으나 아무 욕심이나 그렇다는 말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옳은 말이긴 하나 너무 포괄적이어서이다. 다른 말로 추상적이란 의미다.

 

여기서 말하는 욕심이란 말은 무엇일까? 난 욕심을 정말 비우고 싶다, 그러면 비우고 싶은 건, 너무 너무 비우고 싶다면 이것도 욕심인데, 이 욕심도 죄의 뿌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남을 정말 돕고 싶다면 그것도 욕심일까? 남을 돕다 보니 지나칠 만큼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자신이 고통스러우면서도 남을 돕고 싶어 돕는 사람도 있으니 이것도 욕심일 텐데, 이것도 죄의 뿌리일까? 물론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지나친 욕심 때문에 남을 해치거나 남을 해롭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니, 이 관점에서 보면 성경말씀은 딱 옳다.

 

이렇게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는 말씀은 대부분은 맞지만 간혹 맞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 있다. 추상적인 정의에서 오는 오해를 없애려면, 비록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을지라도 인간 스스로 구체화하면서 욕심의 정의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좋은 욕심의 정의와 나쁜 욕심의 정의, 죄의 뿌리인 욕심과 선의 뿌리인 욕심으로 구분하는 게 보다 구체적일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욕심은 죄의 뿌리로만 인정할 뿐, 선의 뿌리로는 인정하지 않다는 것인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욕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나 스스로 욕심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나를 위한 욕심은 죄의 뿌리가 아니라, 그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라고. 남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다면, 적어도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욕심은 오히려 선의 뿌리라고 정의하련다.

 

나에겐 욕심이 있다. 죽는 날까지 일을 하고 싶다,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곱게 살다 죽고 싶다, 이 모두를 위해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다, 이 모든 것은 죄의 뿌리는 아닐 게다. 이런 욕심은 나는 아주 아주 많이 키우고 싶다. 이런 욕심이 없다면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살까. 욕심이 없는 사람은 빨리 늙고 빨리 죽을 수밖에 없고, 욕심이 많을수록 천천히 늙고 활기차게 살 수 있으니, 욕심을 아주 버리지는 말고 살아야겠다. 오늘도 보다 보람 있게 살려는 욕심을 부려야겠다. 하나님도 이런 욕심은 칭찬하시겠지.

 

나쁜 욕심을 잉태한즉 죄를 낳고, 그 죄는 커진즉 사망을 낳으니, 남에게 좋은 욕심을 잉태하라. 그러면 그 욕심은 선을 쌓을 것인즉, 선을 쌓으면 칭찬을 얻으리니, 정말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 남에게 좋은 도움이 되는, 절망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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