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47-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선물
선물, 주는 사람은 주어서 즐겁고, 받는 사람은 받아서 좋은, 아마도 서로의 이런 마음 나눔이 괜찮은 선물이 아닐까. “뭐, 이런 걸 다.” 이 정도로 말하지만 속으론 흐뭇한 마음이면 선물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 같다.
膳物이란 말은 반찬 따위를 차려 드리는 일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자 생김새를 보면 선한 마음으로, 좋은 뜻으로 챙겨주는 물건임을 주는 것임을 알 듯 싶다. 사전적 의미로는 “남에게 인사나 정을 나타내는 뜻으로 물건을 줌. 또는 그렇게 준 물건.”을 뜻한다.
선물의 역사는 제법 오래되어, 인간이 씨족시대 이전에 부족을 이루어 생활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할 초기에는 자급자족의 생활을 했다. 상대가 있어서 서로 물건이 오가거나 재화의 이동이 있다고나 해야 경제란 말을 쓸 텐데, 그런 단계가 아니었으니 경제랄 것도 없던 시대, 그때는 내 것 네 것 없이 모두 우리 것이었다. 이를테면 모든 것을 공유했다. 때문에 아내나 남편이란 단어조차 없었다. 여자, 남자, 아이와 같은 개념만 있던 공유의 시대였다.
그랬던 것이 인접한 다른 부족을 발견하면서 부족 내의 공유하는 물건 중 여유 있는 물건은 다른 부족에게 넘겨주고, 대신에 그 부족에게선 이쪽 부족에 없는 것을 받아오는 식으로 물건을 부족 간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이때는 개인 대 개인이 물건을 교환한 게 아니었고, 부족 간의 중간쯤의 일정한 장소에서 만나되, 부족을 대표하는 부족장과 소수의 인원이 만나서 호혜적으로 서로 물건을 나누었다.
이렇게 단순하게 물건을 교환하던 것이 점차 자기 부족의 세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덧붙여지면서 선물이란 단어를 낳았다. 상대부족에게서 받은 물건보다 내 부족에서 더 좋은 것 또는 더 많은 것을 주는 게 미덕이란 의식을 가졌다. 이는 일종의 당신 부족보다는 내 부족이 더 풍요롭다, 더 능력이 있다는 과시욕이 좀 들어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선의는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선물은 더 강한 쪽이, 더 풍요로운 쪽이 내려주는 것으로 인식했다. 당연히 약자는 더 많이 받았고 강자는 오히려 더 많이 내려주었다. 그게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균등의 원리, 남는 것을 상대에게 주어 상대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원리, 그럼으로써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생활하는 기본원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시대를 인간은 경험했고, 그것은 아름다운 선물의 전통으로 이어왔다.
그랬는데 자본주의로 접어들면서 이 구조는 완전히 뒤바뀐다. 이제는 갑이 을에게 더 많은 것을 주거나 선의로 주는 물건 나눔보다, 오히려 을이 뭔가 혜택을 받기 위해 물건을 건네는 식이다. 선물이란 단어를 낳은 시대의 선물과 비교하면 이는 선물이라기보다 일종의 반대급부를 바라는 의도가 들어 있으므로 선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뇌물인 경우가 많다.
오랜 선물의 역사에서 유추하면 진정한 선물은 더 많이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내려주는 것, 더 강한 자가 약자에게 내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갑이 을에게 내리는 물건 따위를 말한다. 당연히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 선한 의도만 있는 물건 나눔이 선물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딱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면에서는 내가 갑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나는 을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선물은 반대급부를 바라는 의도가 없이 순순하게 선한 의도로, 좋은 뜻에서 기꺼이 주는 물건을 선물로 정의하자. 주는 사람은 주어서 즐겁고 받는 사람은 받아서 좋은 그런 물건 나눔인 선물은 인간의 고유한 미덕이다.
주고 싶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다. 뭔가 주고 싶은데 줄 것이 없으면 안타깝다. 그런 마음만으로도 서로는 행복하다. 그런 선물하고 싶은 마음의 끝에는 순수한 사랑이 있다. 그런 마음을 나눔이 사랑이라면 “너는 나의 가중 소중한 선물!”이다. 서로가 서로의 그 자체로 선물로 변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