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48- 너는 나의 좋은 친구야!
100세 시대, 전과 달리 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에 으뜸에 드는 것이 있다면, 감히 친구라 말하련다. 그냥 명목상의 친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좋은 친구를 말한다. 물론 누구나에게 친구는 있다. 사람에 따라 많은 이는 아주 많다. 그냥 알고 지내는 친구, 술 같이 마셔 주는 친구, 함께 운동하는 친구, 함께 어디 다니는 친구, 이러한 친구도 좋다. 이런 친구들도 좋은 친구들이다. 그러나 이런 친구를 굳이 좋은 친구라고, 100세 시대에 꼭 필요한 친구라 말하려는 건 아니다. 이보다는 더 농도 짙은 친구를 좋은 친구라 말하련다.
그 한 예로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쓰고 이 책의 헌사를
<<레옹 베르뜨에게
나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빌어. 내가 이 세상에서 사귄 가장 훌륭한 친구가 이 어른이라는 점이 나에겐 진지한 변명이야. 또 다른 변명이 있지. 이 어른은 모든 것을, 어린이들을 위해 쓴 책까지도 이해할 줄 안다는 것이 또 다른 변명이야. 세 번째 변명은 지금 이 어른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데 거기서 굶주리며 추위에 떨고 있다는 것이야. 이 어른을 위로해 주어야 해. 이 모든 변명으로도 부족하다면, 지금 이 어른이 되어 있는 예전의 어린아이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어. 어른들도 처음엔 다 어린이였으니까(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들은 별로 없지). 그래서 나는 헌사를 이렇게 고치는 거야.
어린이였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라고 썼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생텍쥐페리에겐 많은 친구가 있지만 그는 친구들 중 유독 레옹 베르트만을 언급한다. 더구나 책의 헌사는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 바치는 글로 주로 부모님이나 아내에게 헌사를 바친다. 그런데 그는 레옹 베르트에게 자신이 심혈을 들닌 글을 바친다. 서운해 할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소중함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생각하는 인간은 모두 느낀다. 단순히 알고 지내는 정도, 가끔 함께하는 친구, 이 정도의 친구를 넘어 자신의 속내까지 숨김없이 허심탄회하게 내놓을 수 있는 친구, 그러한 친구를 좋은 친구라 말한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늘 나에게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친구, 늘 나를 보호해주는 친구, 언제나 나의 편을 들어주는 친구, 이 친구가 좋은 친구일까? 어쩌면 늘 좋은 이런 친구는 나를 보다 퇴보하게 만들거나 오만하게 만들거나 제자리에 머물게 할 것이다. 이런 친구들보다는 때로는 진정으로 내게 나의 단점을 말해주는 친구, 그런 친구가 보다 좋은 친구라 할 만하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자존심이 있는 존재들이므로 진정으로 단점을 말해주되 지혜롭게 말해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 하련다. 때문에 나는 좋은 친구란 “여럿이 있을 땐 장점을 말해주고, 단 둘이 있을 땐 진정으로 단점까지 말해줄 수 있는 친구”라고 정의하련다.
언제든 고독하거나 외로울 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속내를 탁탁 털어낼 수 있고, 그 속내를 혼자만 간직하고 보호해주면서 진심어린 조언을 주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나서주는 친구, 언제든 어디서든 불러낼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필요하다. 형제는 이미 운명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왠지 모를 작은 벽이 있어 아주 가까이 갈 수 없으나, 친구는 아무런 바탕 없이 시작한 관계라서, 백지와 같은 상태로 시작한 관계라서 잘만하면 형제보다 더 가깝고 아내보다 남편보다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으니,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는 친구일 수 있다.
너, 너는 나의 좋은 친구야. 친구야 너는 알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