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51- 넌 논리적이야. 추론과 연역

영광도서 0 507

<캉디드>의 마지막 대목에서 볼테르는 “이젠 추론을 그만두고 일할 때입니다.”라고 말한다. 추론은 앞선 무엇에는 없었던 것을 가정하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을 말한다. 이를 테면 일종의 가정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난 일인데, 지난 일에는 없었던 일, 생각지도 않은 일이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그 당시에 일어난 대로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으면 달라졌을 결과를 생각해보는 것이 추론이다. 이에 비추면 추론을 많이 한다는 것은 이미 결론은 나 있지만 새로운 생각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생산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반면에 쓸모 없는 논쟁을 부를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선 비생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발전하려면 항상 새로운 뭔가를 이끌어내야 하니 생산적인 추론은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필요하다. 추론의 습관은 새로운 생각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추론이 없이는 인문학의 자리는 없으며, 특히 문학에서의 창작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추론은 잘만 하면 자기발전에도 사회발전에도 큰 도움을 준다. 달리 말하면 추론은 새로운 생각을 낳는 사람을 만들고, 추론 없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을 만든다.

 

이 추론의 과정을 보다 체계화한 것이 논리이다. 논리에는 추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논리 없는 추론이 없다. 논리 없는 추론 없고 추론 없는 논리 없다. 위에서 인문학과 문학에서 꼭 필요한 것, 새로운 것을 가정하여 이끌어내는 방식이 추론이라 했듯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추론에서 비롯된다. 이 추론의 과정의 순서를 바로 정하여 제대로 추론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도록 정한 것이 논리이니, 그 목적은 같으나 순서를 달리하는 데 따라, 방식에 따라 연역, 귀납, 변증 논리라고 한다.

 

거창한 것 같으나 이처럼 논리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싶다’ 또는 ‘새로운 생각이 났다’란 전제, 이러한 새로운 자신의 생각이 참에 부합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시도가 추론이다. 이 시도의 방식과 과정을 잘 정리한 것이 논리이다. 그러니까 논리는 추론의 과정을 잘 정리한 고정된 방식이다.

 

이 중에서 앞서 연역적인 방식을 설명했는데, 연역적이란 이미 알려진 정보 또는 확실히 검증된 참의 명제가 있다. 쉽게 말해 옳은 말이 있다. 그 말을 근거로 삼아 내가 생각한 것이 그 말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그 말에 비추어 보니 내 말이 참이라면, 그 추론의 과정을 정리하면 연역이다.

 

에를 들어 “그 사람이 말이 무엇은 이러이러한 면이 좋다는 거야. 그 사람 말은 누구든 인정하잖아. 나에게도 이러이러한 면의 이것이 있어. 그러니까 이것은 좋다는 거잖아.”라고 말하고 밑줄 친 부분을 보면 용케도 여섯 개의 밑줄이 있고, 밑줄 친 것들은 반드시 두 번씩만 반복한다. 이것이 연역 정언삼단논법이다. 그러니까 말을 잘한다는 사람은 대부분 연역적이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주어진 정보나 전제에서 출발하여 어떤 긍정할 만한 논의 형태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법이 연역법이다. 다시 말해 전제 또는 이미 존재하는 옳은 전제를 참의 거울로 삼아 내가 생각한 전제를 그 거울에 공통점을 비추어 보아서 내가 생각한 전제가 옳음을 보여주는 방식이 연역법으로 엄밀한 증명방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 그 무엇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앞서 이런 저런 올바른 사례들이 있다, 그 사례와 내가 생각한 것은 이런 면에서 저런 면에서 그 사례들과 부합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것은 이러 저러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추론과 논리는 써 먹으라고 있는 것이니 말하기에서 글쓰기에서 자주 쓰는 것이 좋다. 가끔은 바쁜 일을 멈추고 추론하는 재미는 어떤가? 쓸 데 없는 추론인 것 같으나, 엉뚱한 생각인 것 같으나 논리적인 추론은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가져다 줄 테니, 잠깐 일을 멈추고 추론을 해보자.

 

“이왕이면 명언 하나 끄집어내고, 그 명언에 맞추어 내가 생각한 것을 써 보는 거지. 그 다음엔 명언 속의 생각과 내 생각의 부합한 점을 자랑스럽게 쓰는 거지. 그게 글이지. 내 추론을 연역적으로 증명한 거라고. 거 봐. 문학에도 논리가 있다니까. 당연하지. 논리 없는 문학은 정말 쓸 데 없는, 공허한 잡소리라고. 남이 인정하지 않는데, 남이 알아먹지 못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 그건 너만의 넋두리라고. 알아들었지? So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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