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52- 넌 논리적이야. 추론과 귀납

영광도서 0 472

이미 확정된 참, 증명된 참의 명제에다 참의 명제와 공통점이 있다고 내가 믿거나 생각하는 명제를 비추었더니 역시 공통점이 일치할 때 얻는 결론이 연역법이라면 이와는 달리 내가 생각하는 공통점을 가진 것들을 나열한 다음 참의 명제를 대입하는 것을 귀납법이라고 한다. 때문에 연역법은 전제가 참이라면 거기에 확실히 참인 명제를 대입한다면 결론은 반드시 참인 경우라면 귀납법은 전제가 참이라 할지라도 결론은 참일 가능성이지 반드시 참은 아니다. 다만 전제들, 즉 소전제들의 표본수가 많을수록 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설명하면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면 이번엔 귀납법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전제들의 참, 즉 공통적인 참을 진술하고, 그러한 참이라고 믿는 것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추론방식을 연역법이라고 한다. 때문에 연역은 일단 공통점을 확인한 전제들을 진술하고, 그 진술들만으로 결론을 낸다. 그런데 아직 미처 확인하지 못한 동류의 것은 참일 가능성만 있을 뿐 확실하게 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나는 젖소는 얼룩소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젖소는 과연 모두 얼룩소인지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강원도의 갑목장에 젖소를 확인했는데 역시나 얼룩소였습니다. 을목장에 있는 젖소도 얼룩소였습니다. 병목장도, 정목장도, 무목장도, 기목장도, 경목장도, 신목장도, 임목장도 젖소였습니다. 그러니까 강원도내의 젖소는 모두 얼룩소입니다.”

 

라고 한다면 아직 계목장은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계목장의 젖소는 분명 얼룩소일 가능성은 높으나 예외로 얼룩소가 아닐 수 없음을 배제할 수는 없다. 때문에 귀납적 사고는 결론은 참일 가능성이지 절대적인 참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귀납법은 하나하나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실들을 종합한 다음, 그것으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이끌어 내는 추론 방식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구체적인 사례들을 관찰한 현상의 공통적 측면을 모아서 결론으로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연역법은 보편 또는 일반 명제를 전제로 한 다음 거기에 맞는 개별명제 또는 특수명제를 진술하여 결론을 도출한다면 귀납법은 부분에서 시작하여 전체로, 공통적인 특수한 사례들에서 시작하여 일반 또는 보편적인 공통점을 이끌어내는 추론법을 말한다.

 

“6월이 되니 서울초등학교, 도봉초등학교, 경희초등학교, 동국초등학교, 서강초등학교가 방학에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6월엔 모든 초등학교는 방학입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이 역시 귀납적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처럼 귀납법을 많이 쓰지만 다만 그것이 귀납적 사고인지 모를 뿐이다.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면 누구나 일정한 말의 틀이 있다. 그 틀이란 그 사람의 진술방식인데, 어떤 이는 포괄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여 점차 구체적인 이야기로 내려온다. 이는 연역적이다. 반면 구체적인 사례에서 시작하면 귀납적이다.

 

“김씨네 큰딸은 짜장면을 제일 좋아한대. 작은딸은 짬뽕을 제일 좋아한대. 김씨 아저씨는 팔보채를 제일 좋아한대. 그뿐이야. 그 집 큰아들은 우동을 제일 좋아한대. 그 집은 하필 중국음식을 제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김씨네는 중국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집이야.”

 

“그래. 그런데 그 집 둘째아들하고 셋째아들도 중국음식을 제일 좋아한다는 말이지?”

 

“그야 뭐. 그 집 분위기를 보면 보나마나 틀림없을 거야.”

 

이러한 대화를 주고받았다면 이는 귀납적 추론 방식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어떤 대화를 하든 논리적이다. 논리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나는 지금 어떤 논리로 글을 쓰고 있나, 말을 하고 있나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알아듣는다면, 이해한다면 거기엔 나름의 논리가 있다고 봐도 좋다.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말하면 상대가 의이해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논리적이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럴 때면 나는 말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고치거나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너는 논리적이야. 넌 귀납적으로 말하고 있는 거라고. 알지. 너는 코도 오똑하니 예쁘지. 귀도 아담하니 예쁘지. 입술도 발그레 예쁘지. 그러니까 너는 얼굴이 참 예쁜 거라고. 마음도 예쁘면 참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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