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53- 넌 논리적이야. 변증법으로 말하는 거라고!

영광도서 0 588

“ 그 사람 많이 변했더라고. 그 전엔 그 사람 손가락질 받을 만큼 못된 일이라는 일은 골라서 했잖아. 그런데 요즘은 아주 사람이 싹 바뀌어서 싹싹하고, 또 좋은 일만 골라서 하니 사람 변하는 건 알 수 없어.”

 

“그러게 말랴. 그런데 사람 알 수 없어. 제 버릇 개 주겠어. 두고 봐야 안다고. 언제 제 속을 드러낼지 어찌 알겠어.”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은 변한 척하거나 일시적으로 그러는 거지 결국 상황이 바뀌면 도로 돌아간다 그 말이지?”

 

“도로 돌아갈 리야 있겠어. 세월이 가면 사람이 변하게 마련이지. 전과 같겠냐고. 나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니까. 지금은 참 합리적으로 살지. 그러나 모르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옛날 그 버릇대로 살지는 않겠지.”

 

위에 나눈 대화를 뜯어보면 이는 변증법적 대화이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류의 대화는 얼마든 만난다. 우리 삶의 실제 현장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 적응하려면 때로 자신의 본 모습이나 본 마음을 숨기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국 언젠가는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 개과천선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처럼 한 개인만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라는 것도, 이런 사회가 써 가는 역사라는 것도 이와 닮았다는 것을 헤겔은 깨달았던 것 같다. 변증법은 원래 헤겔이 역사의 흐름을 분석하고, 그 변화의 과정을 정리한 것이니까. 정이 있다. 정은 변하니 반이다. 그에 반한 반이 일어난다, 그 반을 보완하여 새롭게 변한 합이 일어난다. 이처럼 정-반-합으로 역사는 순환한다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여 요즘은 변증법을 실제 삶에서 유용한 논리로 받아들인다. 우선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명제가 있다. 이 명제는 아주 완벽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 저러한 모순이 있을 수 있다. 그 모순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다음, 그 모순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다면 이는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수능 시험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 매일 학원에서 두 시간 씩 영어 공부를 할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학원에서 영어공부를 하면 나머지 국어와 수학을 소홀히 하여 자칫 영어는 내가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국어와 수학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할 것을 염려한 어머니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수학과 국어 점수도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국어는 나보다 훨씬 잘하는 준석이와 수학은 우리 반 최고의 실력자 명우와 공부를 하면서 보충하기로 한 다음 예상대로 영어학원에 등록할 것이다.”

 

이 말을 정리하면

 

나의 주장.

 

나의 주장에서의 모순점

 

나의 주장에서의 모순점 해결, 나의 주장

 

이런 등식이 성립한다.

 

이처럼 변증법은 자기주장만 강하게 되풀이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있을 모순점을 미리 생각해보고, 그 모순점을 극복할 대안까지 생각한 다음 자신의 주장을 펴는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다. 이에 비추면 우리가 접하는 토론들은 토론이 아니라 줄기차게 자기주장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주입하려는 토론 아닌 말장난이라 할 수 있다. 토론에 나온 이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반론하면 아예 받아들일, 생각을 바꿀 생각은 전혀 안 하고 끝까지 자기주장을 관찰하려는 노력만 한다.

 

적어도 “내 주장은 이렇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이러 이러한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선생님의 이러한 주장은 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고, 저러한 주장은 이렇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주장한 이것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안 보다는 보다 합리적이다, 현실적이다, 생산적이다 란 주장입니다.” 이러한 구도로 말하면 변증법이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밑줄 그은 것을 바꾸어 가면서 연습하면 보다 합리적인 대화나 합리적은 글을 쓸 수 있다. 논리는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 실 생활에 필요한 것이다. 상대를 기분 안 나쁘게 말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말하기이다. 내 주장만 고집하지 않기, 상대의 말도 수용하기, 상대의 말을 인정하고 그 상대의 주장의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기이다. 이를 밑도 끝도 없이 말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말하기이다. 순서가 바르면 모든 게 형통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반하는 일을 일들을 나열한다.

 

그 반하는 일들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한다.

 

결론은 내가 하고 싶은 말로 한다.

 

이 등식은 나는 A한다. 그러나 B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B를 C로 해결한 후 A한다.

 

보다 세상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변증법이다. 상대를 기분 안 나쁘게 설득하는 방법이 변증법이다.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기보다 생각하는 게 변증법이다. 이를 실제로 생활할 때 쓰자. 글을 쓸 때도 이런 방식으로 써 보자. 글쓰기가 재미있고 보다 합리적인 생각,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논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준다.

 

“우리끼리 말이지만 준석이 걔는 믿을 만한 좋은 친구야 그러니까 걔를 우리 그룹에 들어오게 하지는 거지. 물론, 그래 알아. 네 말은 준석이가 약속시간에 조금 늦게 나타나는 걸 보면 신뢰할 수 없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번에 세 번의 모여서 공부하는 시간을 정하고 모여보자고. 그래서 준석이가 세 번 다 제 시간에 오면 준석이를 믿을 만한 친구로 인정하고, 우리 모임에 받아들이는 거야. 어때 너고 오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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