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56- 진정한 효도란?

영광도서 0 457

한자 효孝를 파자하면 ‘아들子이 아버지 대신 쟁기를 지고 흙土에 나아가 농사를 짓는 형상’이라 한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한다, 무슨 일을 한다, 밭에서 곡물을 생산한다, 아버지 대신 곡물을 생산한다, 그것이 효도다. 아버지를 대신해 생산하는 것이 곡물뿐이랴. 아버지에겐 가장 중요한 생산 활동이 곡물보다는 자식 생산 아닌가? 이런 전제로 정리하면 효도란 아버지를 대신하여 곡물을 생산하거나 아이들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말로 효도한다면 “아버지 이젠 손에서 일 놓으시고 쉬세요. 제가 대신 일할게요.” 라거나 “아버지 이젠 아이는 그만 생산하세요. 제가 대신 생산할게요.”란 말일 것이다. 이렇게 풀고 나면 이런 효도가 진정한 효도인가, 의혹을 가질 만하다. 일 그만하시고 쉬시란 말은 그럴 듯한데, 뒷말은 기분 나빠하실 것 같다. 그럼에도 원래의 의미를 따져보면 그게 그거인 것은 맞다.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는 심리적 원형이고, 인간의 무의식임엔 틀림없다.

 

예컨대 그리스신화에서 아버지 신 우라노스와 아들 신 크로노스를 만날 수 있다. 이 신화에서 호에서 크로노스는 어머니 신 가이아와 작당하여 더 이상 아버지가 자식들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생산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내친다. 물론 그 다음에 아들은 어머니와 결합하여 자식을 생산하진 않고 아내를 얻어 자식을 생산한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더 이상 자식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아들이 생산을 물려받는다.

 

한자의 효와 그리스신화의 우라노스와 크로노스 신화의 공통점은 아들이 아버지의 생산을 대신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리가 익히 효로 알고 있는 개념은 현실적인, 다시 말하면 피상적인 효,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효이지 심리적인 효, 진정한 효는 아닐 것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일을 대신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을 못하게 한다, 일을 빼앗는다는 건 오히려 부모를 위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할 일은 다 마치셨으니 어서 돌아가시지요.’란 말과 다를 게 없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것이 효란 말로 신화로 들어가 우리 마음의 원형인 무의식을 형성한다.

 

그리스신화는 한 발 더 나아가 무의식, 즉 자신은 모르고 행한 일이지만 오이디푸스는 진정한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인 줄 모르고 살해한다. 그리고는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녀 넷을 생산한다. 때문에 후일 심리학자들은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말로 설명한다. 앞서 소개한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의 관계나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의 관계는 아버지를 아들이 내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비추면 효라고 전해오는 의미는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보면 얼른 돌아가시란 의미이니, 이 점에서 진정한 효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두메산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효도한답시고 큰형이 서울로 이사를 시켜 쉬게 하셨다. 아버지는 달리 할 일이 없으셨다. 그렇다고 호의호식할 밑받침도 없었다. 가내에 가져다 조립하는 소소한 일로 푼돈만 버셨다. 농사를 잃은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으셨다. 끝내 몹쓸 병에 걸려 이른 나이에 유산 삼만 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농촌에선 무척이나 건강하셨던 아버지, 서울에 오셔서 일을 잃고 난 후 건강을 잃으셨다. 결국 신화처럼, 한자의 효처럼 일을 잃으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래, 효의 정의는 어렵다. 전제한 예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효란 오히려 부모에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시게 하기, 가능하면 자식을 더 낳게 해드리기, 그건 어렵다면 자식은 낳게 해드리지는 못해도 사랑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그게 진정한 효가 아닐까?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은 일이다. 그러니 “당신도 열심히 하고 싶은 일하고, 부모님들 하는 일 못하게 하지 말고 적극 응원해 드리라고. 난 일이 좋더라.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꼭 돈 버는 일 아니면 어때. 좋아하는 공부도 일이잖아. 그러니까 부모님 무료하게 두지 말고 하고 싶은 일, 좋아하실 일 찾아드리라고.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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