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58-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만난 아프락사스
만일 미움은 존재를 나누고 사랑은 존재를 합한다, 세상을 분열하게 하는 것은 미움이요, 세상을 통합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악마는 세상을 분열시키려하고 신은 세상을 통합하려 한다, 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대부분 그렇게 교육하고 그렇게 세뇌한다. 때문에 대부분 이걸 진리로 알고 세상의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다.
때문에 세상엔 정의와 불의가 있으니, 한쪽은 정의를 위해 싸우고 한쪽은 불의로 정의를 깨뜨린다, 한쪽은 옳고 한쪽은 그르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이 논쟁을 계속 이어진다. 우리 사회가 꼭 이 모양새다. 이를 이분법이라고 한다. 세상은 이렇게 경계를 긋고 서로 분리하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사수하려 애쓴다. 그리고 자기 편이 옳음의 세계, 밝음의 세계, 정의의 세계이고 반대에 선 이들을 불의, 어둠 곧 악의 세력으로 본다.
이처럼 세상을 둘로 나눈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인간이 국가체제를 시작한 이래로는 늘 선악이란 이분법으로 편을 나누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부족시대, 씨족시대에는 없었던, 있었다고는 해도 미미했던 선악의 이분법, 이 문제는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다. 그러니까 미래에도 여전할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선은 좋은 것, 악은 나쁜 것, 신은 선한 분, 악마는 나쁜 놈, 그러면 신과 악마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악마가 신을 만들었나, 신이 악마를 만들었나? 신이든 악마든 처음에 이들을 만든 조물주가 있다면, 조물주는 자기 안에 없는 것을 만들 수 없다는 논리를 전제하면, 결국 조물주에겐 선과 악이 있었다, 신의 속성은 선과 악을 두루 가진 존재란 설명이 가능하다. 이 논리를 전제하면 세상 또는 우주는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된다, 원래는 하나였다고 정의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책 <데미안>에서 이러한 통합의 신으로 아프락사스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한 아프락사스를 따라가 보면 이 신은 과하지도 않고 부적하지도 않은 중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헬레니즘의 중용을 넘어, 선과 악의 뿌리가 다르다는 헤브라이즘의 이분법을 넘어 통합의 신으로 등장시킨다.
몸은 인간이지만 머리는 수탉의 머리, 게다가 두 개의 다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아프락사스, 고대 그리스에선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 시민들 중 일부는 최고의 신을 부를 때 아프락사스라고 불렀다. 이들은 닭의 머리를 하고, 오른손에 방패를, 왼손에 채찍을 들고, 두 발은 뱀인 아프락사스 신은 4두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으로 상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닭은 예견과 사려 깊음을, 방패는 지혜를, 채찍은 힘을, 뱀 하나는 누스로 영성을, 뱀 또 하나는 로고스로 이해를 의미했으니, 아프락사스는 우주의 네 방향을 둘러싸고 지배하는 신으로 여겼다. ABRAXAS의 7문자는 7개의 빛을 의미했으며, 이 7개의 문자의 합은 곧 365로 365개의 속성을 의미했다.
또한 그노시스파에서 숭배하는 신이 아프락사스였는데, 이 신은 오른손에는 방패를 들고, 왼손에는 채찍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노시스파, 즉 영지주의를 모토로 한 이들은 그노시스를 영적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이를테면 기독교에선 신앙으로 구원을 얻는데 비해, 이들은 구원은 그노시스, 즉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 이들은 1년 속엔 365일의 정령이 있으며, 아프락사스는 이 365 정령을 관할하는 신으로 인식한다. 반면 기독교에선 이 신을 물질세계를 탄생시킨 존재로 악마로 여기지만, 영지주의 파는 보호를 목적으로 부를 수 있는 신으로 여겨 이 신을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주문으로 불러낸다.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성 그노시스파의 바실레이데스(Basileidēs)는 ‘우주는 365층의 하늘로 구성되어 있다, 그 최하층 신이 아브락사스다, 이 신은 지구와 인류를 창조했다, 또한 이 신은 7개의 속성 즉 ABRAXAS를 가지고 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또한 아프락사스는 불완전한 이 세상의 지배자인 동시에 365층의 하늘 위에 있는 완전한 세계에 대한 매개자로 믿었다.
헤르만 헤세는 이 신을 그의 책 <데미안>에서 중요한 신으로 등장 시켜 이 세계, 크게는 선과 악으로 갈라진 이 세계를 통합한 신으로 말한다. 대부분 카인은 악이고 아벨은 선이라는 이분법으로 받아들이지만, 카인도 신의 자식이고 아벨도 신의 자식이듯, 더구나 신은 살인자 카인에게 이마에 인을 찍어 그를 보호하셨듯이,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오른쪽 살인자를 구원으로 이끌었듯이 선과 악도 결국 하나의 뿌리이며 하나의 속성에 다름 아님을 이야기하는 데에 중요한 신으로 아프락사스를 말한다.
곧 아프락사스는 중용의 신을 넘어 통합의 신이다. 그 안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다. 추도 있고 미도 있다. 온갖 악행이라 여기는 것도 아프락사스의 품에서 나오고, 온갖 선행이라는 것도 아프락사스에서 나오니, 아프락사스는 선과 악, 미와 추를 분리하지 않는다. 모두 자신이 다스리는 대상으로 여긴다. 쉽게 이야기하면 모두 자신의 분신들이다. 이를 나누고 경계 지은 것은 인간들이다. 어쩌면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또는 자신의 편은 정의라는, 밝음이라는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나눈 발상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이를 이용하여 여전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얻으려 한다는 것을 헤세는 말하고 싶었을지, 헤세는 이렇게 분리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자들을 알 속에 들어 있는 존재로 여긴다. 그럼에도 그들은 탄탄한 자기 알 속에 있는 것도 모르고 그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안주한다고 본다. 그걸 인식하고 낡은 사고를, 낡은 틀을 깨려는 사람들, 그들이 카인과 같은 이들로 낡은 관습을 깨는 이들이며,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아 불합리한 면을 과감히 벗으려는 이들로 본다. 그들만이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으니, 이들은 아프락사스로 부활한다.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신 아프락사스, 내면의 자아인 데미안과 인류의 어머니 에바가 한 가족으로 한 공동체이듯, 이들을 넘은 주인공 싱클레어는 이름 속에 이미 죄와 악을 동시에 품고 있다. 곧 크라머를 거치고 데미안을 만나고 피스토리우스에게 교화를 받고 에바에 이른 싱클레어는 아프락사스로 부활한다.
헤르만 헤세는 묻는다. 누가 세상을 둘로 나누는가, 누가 그 경계를 짓는가, 과연 너는 악이고 나는 선인가, 나는 정의이고 너는 불의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둘로 나누어 서로 다투는가 라고 묻는다.
스스로 깨려고 하지 않으면 밖에서 먼저 깰 것이다. 그러면 곧 장애를 가진 자가 탄생하거나 사산아가 탄생할 것이다. 스스로 깨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세상은 깨지게 되어 있으니 그것 또한 전쟁 아닐까? 내게 깨뜨려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안주하는 지금, 지금의 지식으로 만족하는, 지금의 지혜로 만족하는, 나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믿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갇힌 세계조차 모르는 무지자는 아닐까? 나만 그럴 거야. 너는 그렇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