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62. 추상적이냐 구체적이냐?
서울 갔다 온 사람과 서울 안 갔다 온 사람이 서울 이야기로 아는 척을 하면 둘 중 누가 이길까?
이 물음에 답은 서울 안 갔다 온 사람이 답이라는 농담 같은 진담이 있다. 이유인 즉, 서울에 다녀온 사람은 아주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런데 자신이 본 것, 자신이 경험한 것만 상세히 말한다. 반면 서울에 안 다녀온 사람은 다녀온 사람은 다녀온 척하려니, 경험하지 않았으나 주변에서 들은 것, 어딘가에서 읽은 것을 그럭저럭 조합해서 말한다. 그러면 서울에 다녀온 사람은 실제로는 서울 안 갔다 온 사람보다 본 게 많지만 아는 게 많지만 본 것과 아는 것만 기억하기 때문에 안 갔다 온 사람이 말한 것이 설령 오류가 있다 한 들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안 갔다 오고 아는 척하는 사람의 말에 오히려 사람들은 보다 더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만일 이 둘에게 그림을 그려서 표현해 보라 하면 당연히 경험한 사람, 본 사람이 제대로 그려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엉뚱한 그림을 그려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구체적이냐 추상적이냐의 문제이다. 직접 경험한 사람은 구체적으로 그 무엇을 표현할 수 있으나 상상이나 들은 것만으로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추상적으로 윤곽만 그려낼 수밖에 없다.
그림을 예로 들면, 추상화와 정밀화가 있다고 할 때 추상화만 그리는 사람은 제대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추상화를 잘 그리려면 정밀화를 수없이 그려본 다음에 추상화를 그려야 제대로 그릴 수 있다. 때문에 피카소는 수없이 많은 정밀화를 그리고 나서 추상화를 그려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지, 남들이 추상화를 그리니까 멋져 보인다고 추상화에 손을 댄다면 흉내만 내면서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글쓰기도 이와 같은데, 잘 쓴 글은 주장만 난무하거나 추상적인 글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며 그 주장을 뒷받침한 설명이나 묘사가 충분하여 청사진처럼 펼쳐져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잘 쓴 글은 주장이 있은 후 주장을 뒷받침한 상세한 설명이나 이유 또는 예가 있는 두괄식이거나 우선 상세한 이야기를 먼저 한 후 주장으로 정리하는 미괄식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때문에 진실한 사람과 진실하지 않은 사람, 실천하려는 사람과 구호만 외치는 사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믿어도 좋을 사람과 믿어선 안 될 사람, 제대로 아는 사람과 아는 척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가 구체적으로 말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느냐와 추상적으로 말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느냐의 차이로 알 수 있다. 지식이란 아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생생한 이미지가 들어 있는 정보를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은 그럴 듯하고, 아름다울 수 있지만 머지않아 실체는 드러나고 만다. 따라서 진정한 지식을 갖추려면 무엇을 보든 상세히 관찰하고, 무엇을 기억하든 세세히 기억하고, 무엇을 표현하든 정밀화처럼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기억하고 표현하는 습관이 지식다운 지식을 갖추게 한다.
추상은 얼핏 보면 아름다우나 그건 글이나 그림이 아니라 주제에 지나지 않는다. 글이나 그림은 주제에 맞게 뒷받침하는 충분한 묘사나 설명이 따라야 한다. 주제는 그럴 듯하나 뒷받침이 없으면 그 글은 글이라기보다 캐치프레이즈에 불과하다. 실제 글에선 주제 못지않게 뒷받침하는 문장들이 감동을 준다. 추상화보다 정밀화가, 추상보다 구체가 필요한 이유이다. 주장과 같은 주제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주제나 주장보다 그걸 뒷받침한 사연에 독자는 감동을 받는다. 삶에서도 추상으로 얻는 행복은 하룻밤의 꿈과 같다면, 구체적으로 얻는 행복은 일상의 행복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추상이나 상상으로 행복을 구상하기보다 구체적인 체험을 하며 일상의 삶에서 행복을 누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