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67-이미지와 진실 사이
우리는 이미지를 사회에서 우선 많이 듣지만 문학수업에서 구체적으로 배운다. 특히 시를 배울 때 이미지를 배운다. 통상적으로 이미지를 많이 쓰지만 문학 용어로는 심상으로 굳이 순 우리말로 바꾸면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우리가 어떤 문장을 읽을 때 떠오르는 그림이나 장면이 이미지이다. 예를 들면 강물하면 이미지가 모호하나 푸른 강물하면 ‘푸른’이란 수식어 덕분에 머리에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나름의 ‘푸른 강물’이 그려진다. 이처럼 이미지는 본질은 같지만 각자의 머리에 그려지는 그림은 각기 다르다. 푸른 강물이라고 지칭할 때 어떤 이는 낙동강 푸른 물, 어떤 이는 한강의 푸른 물, 어떤 이는 금강의 푸른 물이 떠오를 것이다. ‘푸른 강물’은 같으나 각자 다른 이미지를 갖는다. 때문에 서로 같은 본질적인 그림을 갖고 있으나 서로 다른 변주를 갖는다.
이미지는 쓰임에 따라 심상(心象), 영상(映像), 표상(表象), 인상(印象)으로 각기 다르다. 물론 본질적인 모습은 같다. 마음속에 그려지는 어떤 대상의 감각적 영상으로, 눈에 보이는 듯하면 시각, 들리는 듯하면 청각, 냄새나는 듯하면 후각, 맛을 느낄 듯하면 미각, 피부에 닿는 듯하면 촉각, 심장이 뛸 듯한 기관감각이라는 육감의 심상을 문학에서 배운다.
원래 image의 어원은 라틴어 이마고imago로, 동사형인 라틴어 이미타리imitari는 '모방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 영어단어로는 imitate이다. 따라서 심상 또는 이미지는 통칭해서 대상에 대한 어떤 그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대상이 사람이라면 인상, 사물이라면 모양이나 느낌, 어떤 장면이라면 영상, 어떤 문장이라면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쉽게 말하면 글로 그리는 그림 또는 말로 하는 그림, 기호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어떤 장면이 펼쳐지는 느낌이 든다면 이미지요 심상이다. 어떤 시를 읽으면 마치 어떤 그림이나 사진 또는 풍경이 머리에 떠오른다면, 어떤 기호, 이를테면 남근석을 보면 실제의 어떤 남근이 떠오른다면 이는 이미지요 심상이다. 그러니까 발화자나 글을 쓰는 이는 심상을 만드는 제작자로 글로 그림을 그리거나, 말로 설명하거나 한다. 심상을 제작하는 사람은 때문에 묘사를 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이는 심상을 얻는다. 쉽게 말하면 작가는 묘사를 하고 독자는 그가 한 묘사를 통해 심상을 얻는다.
때문에 글을 쓰는 이는 자신이 경험하여 얻은 기억 속의 영상을 글로 그려서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려 애쓴다. 그의 노고 덕분에 독자는 심상을 얻는다. 또는 작가는 상상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역시 독자는 상상으로 작가가 한 묘사를 실감나는 그림을 머리에 얻는다. 이처럼 세상은 이미지로 모든 소통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이제 개인으로 오면 인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상을 좋게 심으려 노력한다. 그 결과 누구하면 떠오른 마음의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이 인상이다. 인상은 그 사람이 이제까지 누군가에게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심어놓은 그림이다. 때문에 대부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심으려 노력한다. 그것이 실제 삶이 배어 나와서 만들어진 인상이라면 그는 진실한 사람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위선자라고 부른다. 이처럼 이미지와 실제 또는 진실 사이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어쩜 그럴 수가 있어?”라고 한다면 이제까지 내 머리에 그려진 어떤 사람의 진실과 이미지는 다르다는 뜻이다. “그 사람 바른 말만 따박따박해서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는 한 술 더 떴더군. 지가 그러니까 그걸 숨기려고 바른 사람인 척한 위선자야.”라고 말한다면, 이는 이제까지 어떤 대상이 한 말로 이미지를 얻었다가 실체를 알았다, 진실을 알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심상이나 인상을 말하는 이미지는 실체와 진실 사이엔 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미지, 특히 대중적으로 살려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은 의도적으로 자기 묘사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삶이 배어나와 만드는 일반적은 사람들의 이미지와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인의 이미지는 인위적이라기보다 삶 자체와 결합하여 평소에 보여준 이미지라면, 전자는 인위적으로 만든 이미지라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때문에 위선자가 많은 이유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 나중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미지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실제는 그 이미지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려면 우선 자기 나름의 캐치 프레이즈를 만들고 그 안을 실제로, 삶으로 채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름다운 글은 주제만 좋은 게 아니라 그 주제를 뒷받침하는 묘사가 아름다워야 하듯이. 캐치 프레이즈는 주제나 소주제라면 이미지는 뒷받침하는 문장들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