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71- 앎이란 무엇인가?/
앎, 지식, 정보, 이 세 단어는 서로 통한다. 앎을 지식이라 하고, 지식의 상태를 정보라 한다. 나는 무엇을 안다고 할 때 이는 나는 그 무엇의 정보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 한다.
그렇다면 지식이란 무엇인가? 인류최초의 지식은 바로 창세기에서 읽을 수 있다. 아름다운 뱀, 교묘하게 말을 잘하는 뱀의 꾐에 넘어간 이브는 선악과를 먹는다. 이 열매는 다름 아닌 앎의 나무, 즉 선과 악을 아는 나무를 이른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선과 악은 분리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 이브는 이제 선악과를 먹고 나서 처음으로 하나를 알아낸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라 선과 악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앎이란 세상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의 세상을 나누어 보기, 분화시켜 보기에 다름 아니다. 고로 지식이란 지금 앞에 있는 그 무엇을 분류하거나 분석해 보기, 그렇게 분류하고 분석한 것을 다시 정의내리기라 할 수 있다.
그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을 둘로 나누었다. 둘로 나눈 것을 각각 정의하여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다면 이는 새로운 지식 또는 정보 하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란 성경 말씀이 있듯이 지식이란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나누어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의 뜻을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식이란 원래 있는 것을 일단 나눈다, 나눈 측면에 각각에 나름대로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이름에 걸맞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나누고 이름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한 다음, 누군가에게 자신이 발견한 이 정보를 설명할 수 있다면, 설득할 수 있다면 이는 새로운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이란 내 머리에 개념화한 것 또는 이미지로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도록 설명하거나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나의 지식이라고 생각하나 다른 사람이 이해하도록 설명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지식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진정한 지식을 얻으려면 나름대로 어떤 정보를 제대로 소화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 가능해야 한다.
진정한 지식을 얻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일단 그 무엇에 관심을 갖는다. 관심을 가진 것을 나름대로 물리적이든 양태든 용도이든 모양이든 나누어 생각한다. 원래는 하나였던 것을 이처럼 나눈 다음 각 측면에 나름의 이름을 붙인다. 그 다음엔 그렇게 이름 붙인 이유, 즉 의미를 더한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 공감을 얻어낸다. 이렇게 그 무엇을 끌고 왔다면 이는 지식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누구나 새로운 앎, 곧 정보이자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단계를 다른 그 무엇에든 적용하여 다른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는 지혜의 영역에 들어간다. 지식은 설명 가능한 정보를 말하고, 지혜는 그 지식을 다른 영역에 적용 가능한 정보 처리 능력을 말한다.
앎은 앎을 낳는다. 나는 너를 잘 안다는 의미는 너의 얼굴만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의 성격, 생김새, 마음씨, 하는 일, 미주알고주알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나? 진정으로 아는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게 나의 과제다. 나는 알려 한다. 고로 나는 무엇이든 나눈다. 나눈 것에 나름의 이름을 붙인다. 이름 붙인 이유를 설명한다. 나는 기 이름과 이유를 너에게 말한다. 너 역시 공감한다. 고로 나는 새로운 지식 하나를 얻는다. 곧 앎은 창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