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77- 금기와 욕망 사이
금기란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금지된 욕망을 말한다. 욕망은 앎에서 탄생하고, 탄생한 욕망은 일단 자유롭게 발현된다. 그런데 발현된 욕망은 그 무엇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이 욕망을 금지시킨다. 이를 금기라 한다.
금지된 욕망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몫으로 자리 잡으면 관습이라 한다. 때문에 관습은 한때는 자유롭게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욕망들의 발현이었으나 적어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내재한 욕망들을 이른다.
그러면 금기란 왜 존재할까? 인간은 새로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신의 섭리 또는 자연의 이치라고 알고 있는 질서들을 파괴할 수 있고, 파괴하고 싶은 감정을 가진 특별한 동물이다. 그러한 반항의 감정이 인간에게 다른 동물을 능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러한 감정들은 한없이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새롭게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의 자유로운 반항의 감정들, 자유롭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감정을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이 자유의지는 창의적이고 생산적이긴 하지만 때로 인간과 인간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문에 이를 금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금기란 관습이 생긴다.
금기와 관습, 그러면 금기와 관습은 적어도 개인의 영역을 공동체를 위해 희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개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지 않으며, 개인을 편하게 하기보다 불편하게 만든다는 전제가 성립한다. 이쯤에서 개인에게 불편한 공동체를 왜 인간은 이루며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만하다. 답인 즉,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원초적인 삶의 조건은 훨씬 미치지 못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예로부터 만일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지 않고 따로따로 살았다고 가정해보자. 갓난아이를 낳았으나 맹수들과 함께 생활했다면 갓난아이의 생명은 물론 자신의 생명조차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쯤 인간은 멸종하거나 했을 것이고 맹수들이 숲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맹수들에 비해 나약한 신체를 안고 태어난 인간, 날씨나 기온에 취약한 신체를 안고 태어난 인간은 다른 맹수들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협동을 배웠을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협동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홀로 살아남기 어려움을 공동체로 극복하는 지혜를 위해 개인의 무한한 자유의지를 적절히 금지할 필요를 깨달았을 것이다. 이렇게 금기는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할 수 있다. 고로 금기는 전에 있었던 개인의 자유의지를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것들의 목록이라 할 수 있다.
자유의지야 말로 때로 신의 섭리로 알려진 것을 파괴하거나 자연의 이치를 뒤집어 새로운 이치를 만들어내어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힘을 갖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반면 공동체의 질서를 깨거나 분란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개인의 자유의지는 어느 정도 금지시킬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질서유지를 위해 때로는 개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금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금기와 개인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건강한 개인과 건전한 공동체를 위한 조화는 우리 모두의 몫인 동시에 각자의 몫이기도 하다.
물론 전에는 금기였으나 지금은 해제된 욕망도 있고, 지금은 자유의지의 영역에 있으나 차후에 금지된 욕망으로 변할 것들도 있다. 물론 사회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개인의 양심에 반하는 금지된 욕망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다변화된 사회에서 건강한 나를 유지하기 위해선 개인 각자가 욕망과 금기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다면, 나에게는 좋은데 남에겐 최소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이란 전제라면 괜찮다. 반면 나에게는 좋으나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아니면 불쾌하게 한다면 그건 여전히 금기여야 한다. ‘
“이 소박한 기준으로 건강한 너를 살아라!”